[동아시아포럼] 이탈리아의 대중국 관계 재정립, ‘유럽연합 차원 전략’ 틀에서 이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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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일대일로’ 탈퇴 후 ‘경제 협력’ 위주 대중국 관계 재정립 노력 중
전기차 포함 양자 간 협력, ‘EU 차원 대중국 규제 틀’ 벗어나기 어려워
자국 이익 추구와 EU 대중국 전략 사이 합의점 찾아야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Belt and Road Initiative, BRI, 중국의 다국적 협력 프로젝트 중심 장기 국가 발전 전략 구상) 탈퇴는 경제적 득실과 우방국 압력을 함께 고려한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탈퇴 이후 중국과의 ‘3개년 실행 계획’(three-year action plan)에 서명하며 관계 재정립에 대한 희망을 쏘아 올렸지만 중국-이탈리아 양국 관계를 더 크게 규정하는 것은 유럽연합(EU)-중국 관계의 향방이 될 것이다. EU가 대중국 관계를 놓고 무역과 안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만큼 이탈리아는 자국 이익 추구가 EU의 대중국 전략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도록 조율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이탈리아의 대중국 관계 재정립은 오히려 EU 내에서의 설득과 영향력 확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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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동아시아포럼

이탈리아,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탈퇴 후 대중국 관계 재정립 시도 중

이탈리아가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2019년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 합류한 것은 G7 국가로서의 위상과 EU 창립 멤버로서의 역할을 고려할 때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후 기대했던 경제적 효과가 실현되지 못하고 EU와 미국의 압박까지 더해지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작년에 ‘이니셔티브’를 탈퇴한 것은 매우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졌다. 탈퇴 이후 조르지아 멜로니(Giorgia Meloni) 이탈리아 총리의 중국 방문과 세르히오 마타렐라(Sergio Mattarella) 대통령의 예정된 방문은 이탈리아가 중국과의 관계 재정립에 있어 EU, 중국, 미국 간 존재하는 지정학적 역학관계를 신중히 고려해 보다 전략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가입은 중국의 외교적 승리로 보여졌다. 하지만 2019년 당시 양국 간 조인된 양해 각서(memorandum of understanding, MoU)는 상징적이고 광범위한 협력 목표는 설정했지만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하면서 구속력 있는 내용이 부족해 실질적인 경제적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고, 이 점은 일대일로 가입 기간 내내 이탈리아를 힘들게 했다. 예를 들어 양국 간 양해 각서 체결 후 중국 시진핑 주석은 프랑스를 방문해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독일 총리, 장 클로드 융커(Jean-Claude Juncker) 유럽연합 집행위원장(European Commission president)을 차례로 만나고 프랑스 기업들과 3백40억 유로(약 50조원)에 달하는 거래를 성사시켰는데, 이는 이탈리아와 체결한 양해 각서상 금액의 3배를 넘는 규모였고 중국이 프랑스, 독일 등 ‘이니셔티브’ 비가입국과 더 실질적인 거래를 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싱거운 경제적 성과와 함께 이탈리아를 부담스럽게 한 것은 정치적 비판이었는데 EU와 미국은 한목소리로 이탈리아가 중국의 확대되는 영향력에 대한 서구 국가들의 견제 대열에서 이탈했다고 비난함으로써 이탈리아를 고립에 빠지게 했다. 양해 각서 이후 4년간 중국과의 양자 간 교역 규모가 50%나 성장했음에도 이는 ‘이니셔티브’에 참여하지 않은 EU 국가들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성과로 드러나기도 했다. 게다가 증가하는 교역 규모만큼 늘어나는 무역 적자에다, 독일, 프랑스 대비 낮은 중국의 대이탈리아 투자 규모는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새 정부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중국 봉쇄 전략에 발맞춰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탈퇴를 결정하는 계기가 됐다.

올해 7월 멜로니 총리의 중국 방문은 탈퇴 이후 중국과의 관계 재정립을 위한 신호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중국의 국경 개방 이후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이 이룬 중국 방문 러시 중 하나이기도 했다. 또한 상대적으로 뒤늦은 방문은 탈퇴 이후 중국과의 관계 재정립을 위해 고민한 흔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탈리아-중국 전기차 협력, EU의 ‘중국 리스크 경감’ 전략과 충돌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탈퇴는 중국을 도발하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조심스럽게 진행됐고 중국 역시 유쾌한 감정을 비치지는 않았지만 미국, EU와의 미묘한 관계를 감안해 보복에 나서지 않았다. 중국은 여전히 유럽 국가 중 최대 교역 상대방이면서 EU 내에서 주도적인 목소리를 내는 독일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과의 관계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탈퇴 역시 심각한 외교적 균열 없이 마무리됐고 양국은 여전히 긍정적인 관계 유지를 위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멜로니 총리의 중국 방문 기간에 체결된 이탈리아, 중국 간 ‘3개년 실행 계획’은 향후 양국이 도모할 협력의 토대인 셈인데 이전보다 훨씬 실용적이고 무역 및 투자를 포함한 경제 문제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계획이 포함하고 있는 무역 규제와 상호 투자 등의 사안들이 모두 EU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탈리아로서는 EU의 최근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중국 리스크 경감’(de-risking from China)을 포함한 EU 차원의 전략과 보조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실행 계획’을 마음껏 펼쳐나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EU의 ‘중국 리스크 경감’ 전략은 첨단 제조업과 전기차를 포함한 핵심 산업에서 중국 공급망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탈리아가 새로운 ‘실행 계획’ 하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통한 가장 큰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분야는 전기차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가 상당량의 지분을 보유한 프랑스 자동차 생산업체 스텔란티스(Stellantis)는 최근 중국 전기차 생산업체 리프모터 인터내셔널(Leapmotor International)과 유럽 내 전기차 판매를 위한 조인트벤처를 출범시킨 바 있고 이탈리아 정부는 중국 동펑 자동차 그룹(Dongfeng Motor Group)과 이탈리아 내 전기차 생산 공장 신설을 위한 논의를 진전시키고 있기도 하다.

이탈리아-중국 ‘3개년 실행 계획’, EU 차원 대중국 규제 틀 벗어나기 어려워

하지만 이탈리아가 중국 업체와의 협력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 EU의 규제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EU는 최근 중국과의 경쟁을 의식해 중국산 배터리 전기차(battery electric vehicles)에 대한 임시 상계 관세(countervailing duties, 수출국의 부당 가격에 대응해 매기는 수입국의 차별 관세) 부과를 시행했는데 이 조치야말로 중국의 팽창으로부터 유럽 산업을 보호하려는 EU 정책에 보조를 맞추면서 동시에 중국과 양자 간 협력 관계를 도모해야 하는 이탈리아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준다.

결국 이탈리아-중국 관계는 EU, 중국, 미국 간 지정학적 역학 관계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탈퇴와 신중한 대중국 관계 정립 노력도 대다수 유럽 국가가 서구권과 중국 간 대립 구도 속에서 중국과의 경제적, 정치적 관계를 재평가하고 있는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따라서 이탈리아가 중국과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핵심은 오히려 EU 내에서 영향력을 증대시키려는 노력에 있다. EU 국가들이 교역 증진과 안보 문제를 놓고 중국과의 관계를 저울질하는 상황에서 이탈리아는 EU 차원의 전략에 국익을 일치시키기 위해 EU 수뇌부와 끊임없이 협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더욱이 EU의 ‘중국 리스크 경감’ 전략이 EU-중국 관계에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탈리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신중하게 대중국 관계 정립에 나서야 한다.

원문의 저자는 조르지오 프로디(Giorgio Prodi) 페라라대학교(University of Ferrara) 부교수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Italy’s soft reset with China after dropping the Belt and Road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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