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경제, 대규모 부양책에도 ‘잃어버린 30년’ 우려 나오는 이유
류상시 재정과학연구원장 "4분기 성장률 급락 위험"
"수요 촉진 위한 조치로 '10조 위안' 부양책 내놔야"
최악 경기에도 소극적, 日 ‘잃어버린 30년’ 전철 밟을 수도
중국 경제가 회복하려면 2,000조원에 달하는 경기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같은 발언은 중국 경제계획 총괄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재정부가 연이어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중국 정부는 올해 5% 경제 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채 발행 확대 등 잇따라 부양책을 발표하고 있으나, 디플레이션(deflation, 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압력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 상태다.
中 4분기 성장률 급락 위험, 비상조치 시급
18일 중국 재정부 싱크탱크인 재정과학연구원의 류상시(刘尚希) 원장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인터뷰에서 “중국 경제가 절벽에서 떨어질 위험에 처했다”며 “중국 당국이 2008년엔 4조 위안(약 77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으로 산업의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했다면 이번에는 내수 확대에 중점을 둔 10조 위안(약 1,920조원) 이상의 부양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로선 중국 내 수요를 촉진하기 위한 비상조치가 필요하다”며 “10조 위안 경기부양책이 실현되려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류 원장은 “중국 당국이 그동안 부채 증가를 우려한 신중한 정책을 펴왔지만, 이젠 국내 수요 확대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부채를 늘리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몇 년 새 부채와 적자 증가를 우려한 재정억제 정책을 펴왔던 중국 지도부가 경기 부양에 초점을 맞춘 적자재정 정책으로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짚은 대목이다.
실제 중국 경제 성장률은 1분기엔 5.3%로 출발했으나 부동산 시장 침체와 내수·투자·외국인직접투자(FDI) 위축으로 2분기 4.7%로 꺾이더니 3분기 성장률은 그보다도 낮은 4.6%를 기록하며 비상이 걸렸다. 이에 중국 지도부는 올해 목표인 ‘5% 내외’의 성장률 달성을 위해 이전과는 달리 부채 증가를 허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앞서 란포안 중국 재정부장도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중앙 정부는 부채를 늘릴 수 있는 상대적으로 큰 여지를 갖고 있다”며 “경기 부양책 마련에 동원된 국유은행 지원용 특별 국채와 지방 정부 유휴 토지와 미분양 주택 매입용 특별채권 발행을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류 원장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의 경우 미국과 일본은 각각 130%와 260%고 중국은 100% 수준”이라며 “중국 당국이 재정 적자율의 경우 3%를 경고선으로 간주했지만, 이제는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더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아프면 약을 먹어야 하고 증상이 심각하면 고용량의 약을 먹어야 낫는다”고 꼬집었다. 류 원장은 또 “장기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 중국 내 중소기업 어려움은 커지고 상장기업들의 재정적 손실이 불어나고 있으며 수출기업들은 매출 증가 속 이익 감소라는 난관에 직면해 있다”며 “중국 경제성장률이 4분기에 급락할 위험도 있다”고 우려했다.
2008년보다 인프라 등 투자 규모 더 커야
류 원장의 분석은 다른 경제 전문가의 전망과도 일맥상통한다. 지난 16일 중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이자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전 고문 위융딩(余永定)도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 효과 극대화를 위해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투입한 4조 위안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출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 경제 규모가 과거에 비해 큰 만큼 재정 지출 규모도 2008년 수준을 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위 전 고문은 이어 “경제에 단번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정부가 가능한 한 빨리 경기 부양 계획을 세우고 자세한 일정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도 중국 당국의 부양책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단적인 예가 부동산 시장 활성화 및 국유은행 자본확충 등을 위한 국채발행, 지방정부 지원 방안이다. 중국 정부는 대대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국채 발행을 대폭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규모를 공개하지 않아 실망감을 키우고 있다.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중국 정부는 소비자에 대한 세금 감면과 바우처 지급 등 직접적인 지원책을 통해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높이고 내수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이 정도 정책만으로 얼어붙은 소비 심리가 되살아날지 의문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불안을 해소할 만한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서 주택 구매를 망설이는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이 회복되지 않는 한 소비 심리 개선으로 연결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경제 상황, 30년 전 일본보다 더 심각
이런 가운데 월가에서는 중국이 1990년대 일본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헤지 펀드의 대부’로 통하는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설립자 레이 달리오(Ray Dalio)는 최근 중국 경제를 ‘잃어버린 30년’의 초입에 섰던 일본과 비교했다. 달리오는 월가에서 대표적인 중국 투자 옹호파로 통하는 인물로, 4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제국은 생산적이고, 재정적으로 건전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과 미국을 비교해 볼 때 원칙적으로 중국이 더 유리하다”며 중국 투자를 권했다. 하지만 최근 달리오는 중국 부동산 등 자산 가격 하락, 고용·임금 감소 등을 언급하며 “중국의 많은 기업과 지방정부가 부채 문제를 겪고 있으며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를 거듭 날리고 있다.
실제 중국과 30년 전 일본의 경제 사이클은 상당 부분 닮아있다. 일본은 1980년대 폭등한 부동산과 주식 등이 1990년대 초에 붕괴하면서 장기 불황에 빠져들었는데, 중국 역시 매년 두 자릿수 경제성장률을 거듭한 끝에 부동산 거품이 발생하자 중국 가계와 기업은 금리 인하에도 소비와 투자를 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는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중국 통화당국에 따르면 중국 유동성 지표의 상징 격인 M1(현금+요구불예금) 증가율은 올해 7월 -6.6%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어도 미래가 불확실한 탓에 즉시 벽장 속으로 퇴장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같은 경제 사이클 유사성을 넘 공공부채 확대, 인구 감소, 미국과의 갈등 등으로 인해 오히려 30년 전 일본보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공공부채의 경우 지난해 중국의 GDP 대비 총 공공부채는 95%로 1991년 당시 일본(62%)보다 크게 높다. 공공부채 비율이 높을수록 정부 재정 부담이 늘어나 적극적인 부양책을 펼치기 어렵게 되고 결국 침체가 장기화될 수 있다. 또한 중국은 일본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지난해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했다. 일본은 거품이 붕괴되고 거의 20년 후인 2008년까지 인구 감소를 겪지 않았다.
미국과의 갈등 관계 역시 일본 대비 중국에 더 큰 과제다. 미국은 최근 중국에 첨단 기술에 대한 접근을 막고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등 경제적으로 고립을 추진할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대결하고 있다.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첨단 분야를 육성해 생산성을 대폭 끌어올려야 하는데, 미중 간 기술 분쟁이 본격화하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