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과 격차 벌리는 中 조선업, ‘해양굴기’ 앞세워 고부가가치 선박까지 빠르게 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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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세계 1위 오른 中 조선업, 2030년 세계 시장 장악 목표
2000년대 '해양굴기' 선언 후 전략적인 정책 지원으로 韓 추격
선반 수주량에서 밀린 韓, 조선업 가치사슬 경쟁력 1위도 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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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해양굴기’를 앞세워 2030년 세계 조선 시장을 장악하겠다고 선언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중국은 낮은 임금과 원자재 가격을 기반으로 저가 공세에 나섰고 2019년 신규 선박 수주량에서 세계 1위에 오른 후에는 2위 한국과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이에 한국은 세계 조선시장이 슈퍼 사이클에 진입하면서 이미 3년 치 일감을 확보한 상황에서 친환경 선박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선별 수주하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도 중국이 한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어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中 조선업 3분기 점유율 70%로 韓과의 격차 벌려

16일(현지시간)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중국은 표준선 환산톤수(CGT) 기준으로 3,467만 CGT(1,222척)를 수주해 전 세계 점유율 70%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자국의 발주 물량에 더해 저가 공세로 세계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수주 물량을 확대하면서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반면 2위에 오른 한국은 같은 기간 872만 CGT(201척)를 수주하며 점유율 18%를 기록했다. 지난 2019년 글로벌 신규 선박 수주량에서 중국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준 후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내 ‘빅3’인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선별적으로 수주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과의 가격 경쟁을 피하는 대신 수익성이 강한 친환경 선박의 비중을 높이면서 질적인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더욱이 글로벌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이미 3년 치 일감을 확보한 터라 한정된 생산능력(CAPA) 안에서 고부가가치 선박을 선별해 생산하는 전략이 나을 것이란 판단도 작용했다. 실제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경우 지난해 전 세계 발주의 80%를 점유했고, 암모니아 운반선 역시 70% 이상을 차지해 전략 선종으로 부상했다.

문제는 중국이 친환경 선박 부문에서도 한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17일 중국 언론들은 올해 중국 조선업계가 전 세계 친환경 선박 주문량의 70% 이상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중국 내 조선 건조량은 3,634만 재화중량톤수(DWT)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8.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규 선박 수주량은 8,711만 DWT로 51.9% 급증했고, 수주잔량도 1억9,330만 DWT로 44.3% 증가했다. 이에 따라 중국의 건조량, 신규 선박 수주량, 수주잔량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각각 55.1%, 74.7%, 61.4%를 달성했다.

이를 두고 중국중앙TV(CCTV)는 “중국이 조선업의 주요 3대 지표에서 모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점유율 1위를 지켰다”며 “환경친화적 기술, 고급 선박, 독점적 혁신 등이 중국 조선업계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도 “중국이 18개 주요 선박 유형 가운데 14개의 신규 주문에서 세계 선두 자리를 지켰다”고 전했다. 친환경 선박이 한국 조선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하는 가운데, 중국이 빠른 속도로 한국을 추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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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국영 조선사 기반의 안정된 산업 생태계 위협적

이렇게 중국 조선업이 세계 1위로 올라선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해양굴기가 있다. 지난 2002년 중국 공산당은 제16차 당대회에서 조선산업에 대한 해양굴기를 선언했다. 10년 후인 2012년 제18차 당대회에서도 ‘해양 강국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해양산업 발전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중국 조선업의 청사진인 ‘조선산업 친환경 발전 개요’에서는 오는 2025년까지 조선업의 친환경 발전 체계 구축과 기자재 공급 역량 강화를 중점 추진하고 2030년에는 중국 선박 공급망과 기술력을 토대로 세계 조선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은 중국 조선 산업의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중국 정부는 조선업계의 법인세를 감면해 주고, 정책적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조선업 불황기에는 정부와 국영기업이 선(先) 발주에 나서면서 업계를 도왔다. 그동안은 수익성이 낮은 벌크선·컨테이너선·유조선 수주량의 비중이 큰 것이 한계로 지적됐지만 최근에는 친환경·대체 연료 선박인 LNG선, 메탄올 연료 선박, 크루즈선, 대형 컨테이너선, 심해·원양 풍력 발전 설치 선박 등 다양한 선박 유형을 성공적으로 건조하며 고부가가치 선박의 건조 경험도 쌓아가고 있다.

국영 조선소를 기반으로 형성된 안정된 산업 생태계도 글로벌 조선업계에 있어 다분히 위협적이다. 더욱이 한국보다 임금이 낮은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철강 후판 등 조선 원자재의 가격이 덤핑 수준으로 하락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중국 1, 2위 조선사인 중국선박공업그룹(CSSC)과 중국선박중공업그룹(CSIC)이 본격적인 합병 절차에 돌입했다. 합병이 성사되면 자산 규모가 4,000억 위안(약 75조원)으로 세계 1위 HD현대중공업(약 17조원)의 4배를 넘고 매출, 영업이익, 선박 수주량에서도 독보적인 초대형 공룡 조선사가 탄생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향후 한국과 중국의 경쟁이 더욱 심화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이미 조선산업 가치사슬 종합경쟁력 1위를 중국에 내줬다. 가치사슬 경쟁력은 △연구개발(R&D)·설계 △조달 △생산 △유지보수(AM)·서비스 △수요 등 5개 부문을 평가해 종합하는데 한국은 R&D·설계와 조달 부문에서만 우위를 보였을 뿐 생산과 유지보수·서비스, 수요 부문에서는 중국의 경쟁력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종별로는 한국은 가스운반선과 컨테이너선에서만 중국을 앞섰고 유조선은 중국이 2022년부터 한국의 경쟁력을 뛰어넘었다.

韓 숙련 인력 부족·높은 해외 기술 의존도 한계 지적

이런 가운데 국내 조선업계는 인력 부족이라는 이중고까지 안고 있다. 조선업 수퍼 사이클로 일감이 몰리고 있지만 이를 수행할 전문 인력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선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조선사들이 고부가가치 선박을 선별 수주하는 전략으로 선회한 것도 내막을 살펴보면 배를 만들 수 있는 숙련공이 부족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수주를 못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현재 부족한 인력은 대부분 기간제·외국인 근로자로 채워지고 있지만 대부분 짧은 기간 교육을 받고 생산 현장에 투입되다 보니 숙련공보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비등하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조선업계를 떠난 숙련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내 조선업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넘게 극심한 침체를 겪었고 이 시기 구조조정으로 숙련 인력이 대거 현장을 떠났다. 현재 조선업계가 이들을 다시 불러오려 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이미 원전이나 반도체 공장 건설 부문에서 일을 하고 있어 이마저도 여의찮은 상황이다. 업계는 앞으로 인력난이 더 심화할 것이라 보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조선업계 인력 부족이 올해부터 연평균 1만2,000명 이상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고, 2027년부터는 약 13만 명의 인력이 더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핵심 기자재 분야에서 해외 기술 의존도가 높은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기술 특허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서 로열티 부담이 늘어나 수익성을 갉아먹는 고질적인 문제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에 따르면 해외 유명 조선 업체가 2001년부터 올해까지 특허를 출원한 국가별 비중은 미국 29.6%, 일본 21.7%, 유럽 20.6% 등으로 특정 국가에 쏠리지 않았다. 스위스 ABB와 미국의 허니웰은 같은 기간 출원한 조선 관련 특허만 4만5,000개가 넘는다. 해외 조선사들이 적극적으로 지식재산권에 투자하며 기술 권리 보호에 집중한다는 방증이다.

반면 한국 조선 업체들은 특허의 76.3%를 한국에 출원하고 있다. 미국(3.6%)이나 일본(1.9%) 등 주요국에 특허를 출원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 이렇다 보니 국제적으로 기술 권리 보호를 받을 여지가 적고 해외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글로벌 기업에 기술료를 낼 수밖에 없다. 일례로 국내 조선사들은 LNG 화물창 기술의 원천 특허를 보유한 프랑스 기업 GTT에 수주 금액의 5%를 로열티로 지급한다. LNG선 1척을 건조할 때마다 GTT에 지불하는 로열티는 100억원으로 현재까지 국내 업체들이 GTT에 지불한 로열티만 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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