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러시아 파병 북한군’ 추정 영상 공개, ‘북러 혈맹’에 세계 긴장 고조
우크라 SPRAVDI , 북군 러시아 보급품 수령 장면 공개
장비 받으며 “나오라 야” 北 말투, 한글로 군복 치수 설문도
"실전 경험 없어 역할 한계" vs "전쟁 단축에 기여"
국가정보원이 북한의 러시아 파병 결정과 일부 병력의 러시아 이동을 확인했다고 밝힌 가운데, 북한군 파병 정황을 담은 듯한 영상 및 사진이 우크라이나 당국과 외신을 통해 나오고 있다.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는 ‘3차 대전’까지 언급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영국·프랑스 등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전 위험이 커질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속속 드러나는 북한군 러 파병 증거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문화부 소속 전략소통 및 정보보안센터(SPRAVDI)는 북한 군인들이 이미 러시아 영토에 있으며, 러시아 군복을 지급받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영상을 공개했다. SPRAVDI는 “이 영상은 72시간 이내 촬영된 것으로, 러시아 극동 지역인 연해주 세르게예프스키 훈련장”이라고 설명했다. 영상에는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러시아군으로 보이는 군인으로부터 장비를 지급받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군인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선 “나오라(나와라), 야” 등의 북한 억양의 음성도 확인된다.
이날 미국 CNN 방송도 SPRAVDI를 통해 러시아군이 북한군을 위해 마련한 설문지를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CNN이 공개한 설문지엔 “모자 크기(둘레), 체복·군복 치수와 구두 문서를 작성해 주세요” 등의 한글 문구가 러시아어와 함께 적혀 있다. 설문지에서 모자와 군복은 각각 ‘여름용’이라고 분류됐다. 매체는 이 설문지가 북한 군인에게 보급품을 지급하기 위해 제작됐고, 러시아에 도착한 북한 군인은 이 설문지에 답해 제출해야 한다고 전했다.
같은 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도 텔레그램의 친(親)러시아군 채널인 파라팩스(ParaPax)에 ‘러시아의 훈련장 중 한 곳에 있는 북한 군인들’이라는 설명과 함께 군인들이 줄지어 기지에 들어가는 모습을 촬영한 1분 분량의 영상이 올라왔다고 보도했다. RFA는 전문가의 분석을 인용해 영상을 촬영했던 군인의 군복엔 러시아 동부 군사 지구의 부대 상징이 부착돼 있고, 영상 촬영 장소는 연해주 세르게예프스키 훈련소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북한군 격전지 투입 가능성, 사상자 90% 될 수도
이런 가운데 김수경 통일부 차관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군이 투입될 지역이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해당 북한군들은 특수부대원으로 공격에 특화됐기 때문에 후방보다는 격전지에 배치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차관은 “도네츠크는 상대적으로 지금 전선이 정체돼 있는 반면 쿠르스크 지역은 러시아가 굉장히 애를 먹고 있고 다시 뺏어오려고 애를 쓰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차관은 “우려스러운 부분은 북한이 과연 파견 대가로 무엇을 받았냐”라며 “군사 기술 같은 경우에는 한반도의 안보 상황에도 대단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굉장히 예의주시해서 지켜봐야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정예 부대원 1만2,000명을 다른 나라 전쟁에 보내면 북한 군 입장에서는 자기의 영토를 지키는 데 그만큼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최근 북한이 경의선·동해선 남북연결도로를 폭파하고 요새화 작업을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9~2020년 우크라이나 젤렌스키정부의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안드리 자고로드니우크 전 장관도 “북한군은 현재 러시라군이 대부분 맡고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그 역할은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 진지를 돌파하고 점령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병사들에겐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사상자 비율이 90%에 이를 수도 있다”고 봤다.
자고로드니우크 전 장관은 또 지난 8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 일부를 장악했을 당시 그곳은 거의 비어 있었고 러시아 병력을 전혀 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거의 모든 전력은 남동부 돈바스 지역에 배치됐다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군은 (돈바스 지역에) 돌격대를 보내고 있다”며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나 사용된 전술로, 특정 진지를 점령하는 전술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큰 인명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영국 국방부에 따르면 러시아군 하루 사상자는 1,300명에 이르는데, 바로 이 지역에 북한군이 배치될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극도로 심각한 전개”, 우크라이나 ‘3차 세계대전’ 우려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될 북한군의 기여도에 대한 분석도 속속 나오고 있다.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파병으로 우크라이나 전황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바뀔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베넷 연구원은 “북한군이 전투 경험이 없을 수도 있으나 그들은 신병이 대다수인 러시아군과는 다르다”며 “그들은 오랫동안 군에 있었고 결속력까지 갖추고 있는 만큼 우크라이나에서 상당히 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러시아가 약간의 우위에 있는 교착 상태지만 북한의 파병은 전쟁을 아마 단축시킬 수도 있다”면서 “러시아가 중대한 돌파구를 마련한다면 1년 정도면 전쟁이 끝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군의 러시아군 지원이 ‘게임 체인저’가 될지는 미지수지만 우크라이나군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영국 포츠머스대 전쟁학 부교수이자 군사 전문가인 프랭크 레드위지는 우크라이나가 이미 엄청난 압박을 받으며 전쟁에서 지고 있는 국면에서 북한이 가세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레드위지는 “현 상황은 우크라이나에 매우 위험하다. 향후 몇 달에 걸쳐, 그리고 앞으로도 진짜 나아갈 방법이 없다”며 “어떤 분야나 역할에서든 러시아군의 증강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불리한 것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군이 전장에서 어떤 활동으로 어떤 기여를 하게 될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글로벌 안보에 해악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만큼은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먼저 우크라이나는 3차 세계대전을 운운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7일 북한이 1만 명 파병을 준비한다는 정보가 있다고 밝히면서 “세계대전을 향한 첫 단계”라고 주장했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북한이 무기와 인력으로 러시아의 침략을 돕고 있다”며 “러시아가 북한을 전쟁 당사자급으로 참여시켜 침략을 심각하게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당장은 러시아와 군사적 직접 충돌을 우려해 대응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예상되나 북한군 가세에 따른 상황 변화 때문에 한때 파장이 일었던 나토군의 우크라이나 파병론이 다시 고개를 들 수도 있다는 관측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18일 북한의 파병 결정에 대해 “현재까지의 우리의 공식 입장은 ‘확인 불가’지만, 이 입장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프 르모안 프랑스 외무부 대변인도 같은 날 “만약 해당 정보가 사실로 확인되면, 이는 극도로 우려스럽고 심각한 전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