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퇴직자도 노조 가입 시키겠다는 현대차 노조, ‘계속고용’ 도입에 찬물
현대차 노조, 정년 후 재고용 근로자 노조 가입 추진
고령 촉탁직 임금 인상되면 계속고용 취지 퇴색 우려
세대 갈등 및 노동시장 이중구조 악화도 불가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정년퇴직 후 재고용된 시니어 계약직(촉탁직)을 대상으로 노조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계약직으로 재고용됨에 따라 낮아진 임금과 복지 등을 이전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재고용 근로자의 노조 가입이 현실화하면 현대차의 비용 부담이 급증하는 것은 물론, 산업계 전반의 퇴직 후 재고용 확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진다. 일각에선 정부가 추진 중인 계속고용 제도 도입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현대차 노조, 정년퇴직자 노조 가입 허용 안건 투표 예정
11일 노동계에 따르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는 오는 14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숙련 재고용 직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현대차지부 규정 개정 안건’을 투표에 부칠 예정이다. 대의원 과반이 참석해 3분의 2가 찬성하면 안건이 통과된다. 대의원 대부분이 장년층인 점을 고려하면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현대차는 2019년부터 기술 및 정비직 정년 퇴직자 중 희망자에 한해 1년 더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는 ‘숙련 재고용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앞서 현대차와 기아 노조가 2016년 법에 따라 정년이 60세로 연장된 이후 지속적으로 추가 정년 연장을 요구해 왔다. 최근 노조 가입률이 40%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데다 매년 2,000명 이상이 정년퇴직하는 등 노조의 입지가 약해지는 점을 고려한 요구다.
이에 사측은 급격한 비용 증가와 청년 고용 어려움 등에 따라 난색을 표해 오다가 2019년 기술직 및 정비직 정년퇴직자가 원할 경우 더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해 노사 타협을 이뤄냈다. 올해는 단체협약을 거쳐 1년 근로한 뒤 1년 더 일할 수 있도록 기간을 늘렸다. 이렇게 도입된 시니어 촉탁직은 고용이 연장되는 대신, 연봉은 정규직 신입사원 수준으로 하향되고 노조 자격도 상실된다.
재직 때만큼의 연봉·복지 요구 전망
하지만 촉탁직의 노조 가입이 현실화할 경우 상당한 후유증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2029년까지 재고용 직원이 매년 수천명에 달하는 고려하면 내년부터 현대차 전체 노조원(약 4만3,000명)의 10%를 넘길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한 노조 관계자는 “노조 지부장 선거는 지지율 3~4%포인트 차이로 당락이 좌지우지된다”며 “노조 집행부가 촉탁직을 위한 정책을 남발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업계가 꼽는 노조의 첫 번째 타깃은 임금 인상과 복지 수준 확대다. 촉탁직 근로자 연봉은 정규직 신입 직원 수준인 8,000만원 정도로, 정년 직전 근로자의 임금은 1억4,000만원 정도로 추산된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촉탁직 노조 가입이 현실화하면 현직자 수준으로 임금을 올려달라는 요구가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정식 안건으로 올라올 수 있고 결렬되면 파업까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의 규약 개정은 같은 제도를 운영 중인 기아 등 현대차 계열사는 물론 자동차업계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도 크다. 국내 최대 규모인 현대차 노조는 덩치만 큰 것이 아니라 2012~2018년 7년 연속 파업을 벌였을 정도로 강성이다. 다른 대기업 노조가 임단협을 할 때 대표로 참고하는 회사일 정도로 상징성도 크다. 실제 KG모빌리티 노사는 현대차 노조를 따라 올해 단체협약에서 기술직 정년 퇴직자 중 희망자를 1년 더 재고용하되, 이들을 노조원으로 ‘당연 인정’하기로 했다. 올해 재고용 제도 도입에 합의한 한국GM도 이들의 노조 가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임단협 4개월 만에 또, 전문가들 “과도한 요구”
업계는 현대차 노조의 요구가 계속고용을 위한 사회적 논의 분위기에도 찬물을 끼얹을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 현재 산업계에는 퇴직 시점을 늦추되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합리적 방안을 찾자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정부도 일률적 정년연장보다는 계속고용 방식에 무게를 두고 있다. 청년 세대와 고령 세대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공서열형 중심의 낡은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 자격을 얻은 현대차 숙련 재고용 근로자들의 임금이 인상될 경우, 정부가 추진하는 계속고용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
고용 여력이 있고 근로 조건이 좋은 대기업 근로자에만 정년 연장의 혜택이 돌아가게 되면 노동시장의 불균형이 심화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별 임금 격차 등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고질적인 이중구조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청년 실업 문제와 맞물리면서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으로 비화할 우려도 크다. 앞서 한국 산업계는 2016년 60세 정년을 의무화했을 때 부작용을 겪은 바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당시 34세 이하 청년 고용이 16.6% 줄었으며 55~60세 장년층 고용 역시 감소했다. 기업이 정년 연장으로 인건비 부담이 증가하자 장년 고용까지 줄여버린 것이다. 이미 현대차 노조 내부에서도 세대 갈등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 한 30대 현대차 직원은 “회사가 부담할 수 있는 인건비는 정해져 있는데 결국 은퇴한 선배들이 후배들을 희생시켜 임금을 더 챙기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하며 촉탁직의 노조 가입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도 현대차 노조의 요구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계속고용 확대가 포함된 임단협안에 잠정 합의한 지 불과 4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데다 같은 시기 역대 최대 수준의 임금 인상도 쟁취했기 때문이다. 합의안에는 기본급 4.65% 인상과 2023년 경영성과금 400%+1,000만원, 2년 연속 최대 경영실적 달성 기념 별도 격려금 100%+280만원, 주식 25주 지급 등이 담겼다. 업계 추산 1인당 5,012만원의 인상 효과다. 컨베이어 수당도 11년 만에 인상됐는데 S급 기준 2013년 7만4,000원에서 올해 9만1,000원으로 늘었다. 이를 두고 당시에도 사측의 과도한 양보라는 목소리가 짙었지만, 생산 차질과 협력업체 및 지역 경제 타격 등을 감안할 때 무분규 타결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는 분위기였다.
한 자동차업체 임원은 “현대차 노조의 이번 움직임은 일률적 정년 연장을 거머쥐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는 현실성이 매우 떨어질 뿐 아니라 기업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역설했다. 이어 “회사의 경영실적이 좋든 나쁘든, 다른 기업보다 임금수준이 많든 적든, 현대차 노조에게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며 “내 몫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행태는 국민은 물론 업계 관계자들의 눈살까지 찌푸리게 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