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안 해도 월 170만원, ‘퍼주기 정책’에 고용기금 고갈 위기
10월 구직급여 신규 신청 8.9만 명 '역대 최다'
평균 지급액 월 170만원 돌파, 최저 생계비의 2배
판치는 부정수급에 구직급여 줄줄, 기금 고갈 목전
실업자에게 지원하는 구직급여(실업급여) 금액이 170만원까지 치솟았다. 전반적인 임금 상승과 함께 가파르게 오른 최저임금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일부 근로자들 사이에서 눈먼 돈으로 활용되는 등 부정수급 문제도 구직급여 상승을 부추겼다. 높은 구직급여 하한액이 근로 의욕을 상실케 하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유발한 것으로, 재정건전성 악화를 막기 위해선 근본적인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직급여 지급액, 10월에만 1조 넘어 ‘사상 최대’
1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1인당 평균 구직급여 지급액은 170만4,000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9만6,000원(6%) 늘었다. 매달 구직급여만 받아도 1인 가구 최저 생계비(71만원)의 2배에 달한다. 지난달 구직급여 신규 신청자도 8만9,000명으로 역대 10월 중 가장 많았다. 전년 동기 대비 12.4% 급증한 수치다. 같은 달 전체 구직급여 지급자 또한 58만7,000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2만1,000명(3.7%) 많았다.
월 단위 구직급여 지급액도 2개월 만에 다시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달 기준 구직급여 지급액은 1조6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03억원(9.9%) 늘었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누적 구직급여 지급액은 총 10조706억원으로, 올해까지 5년째 10조원 돌파가 유력하다. 월평균 63만 명에게 1조원씩 지급됨에 따라 연말까지 총 지급규모는 12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이는 코로나19로 실업자가 늘었던 2021년 12조576억원 이후 최대 규모다.
반복수급자 4년간 2만4,000명 증가
전문가들은 구직급여 증가세의 이유 중 하나로 부정수급을 지목한다. 실제 구직급여 반복수급자(5년간 3회 이상) 증가세와 부정수급 사례는 최근 5년간 우상향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의힘 김위상 의원실이 발표한 ‘최근 5년간(2019년~2024년 7월) 구직급여 수급현황’에 따르면, 구직급여 반복수급자는 지난 2019년 8만6,000명에서 지난해 11만 명으로 4년간 2만4,000명 늘었다. 지난 7월까지만 8만1,000명을 기록해 올해 최고치를 또다시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반복수급자 중 동일사업장 반복수급 사례가 늘고 있는데, 최근 5년간 반복수급자 중 동일사업장 반복수급자 비중을 따져보면 2019년 10.9%에서 지난해 18.8%로 7.9%포인트(p) 늘었다. 7월 기준 19.1%까지 뛴 만큼 올해 2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구직급여 수령액 상위 10명이 무려 207회에 걸쳐 9억500만원을 수령한 것으로 나타냈다. 동일사업장에서 구직급여를 받아 간 경우도 166회에 달했다. 구직급여 수령액 상위 4명은 수령회차와 동일사업장에서 받은 횟수가 같아 수령액 전부를 한 곳에서 받아 간 것으로 파악됐다.
산업계에서는 최근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15~29세)이 늘어나는 이유도 구직급여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그냥 쉬고 있는 청년은 지난 9월 기준으로 41만6,000명에 달한다. 한 업계 전문가는 “그냥 쉬는 청년들 중 구직급여를 받고 있는 청년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현행 제도상 수급 자격 취득 기준으로 반복수급 횟수 제한이 없다 보니 쉬었음 청년이 줄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줄줄 새는 혈세, 고용기금 누적 적립금 ‘마이너스’ 4조
구직급여는 일시적인 실업 상황에서 생계 유지를 위해 급여를 지원하고 재취업을 위한 시간과 자원을 제공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사회안전망이다. 그러나 구직급여 재원인 고용보험기금은 현재 적자 상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고용기금의 누적 적립금은 마이너스 4조원에 달한다. 예정처는 공자기금 차입분을 제외하면 올해 적립금도 2조675억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전임 정부의 포퓰리즘이 초래한 과실이 크다. 고용기금은 2017년 말까지만 해도 10조2,544억원이 쌓여 있었으나 2018년 고용기금 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이후 계속 적자 폭이 커지면서 누적 적립금도 빠른 속도로 소진돼 5년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고용보험기금은 1995년 고용보험 제도가 도입된 이래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고갈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전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일자리를 잃은 저임금 근로자들이 늘면서 지출이 폭증했다.
또 급등한 최저임금은 기금 고갈을 더욱 부추겼다. 구직급여의 하한액이 최저임금의 80%로 연동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구직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에 연동돼 기금 재정건전성을 해치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을 정도다. 이 때문에 하한액 수급자가 전체의 80%가 넘는 비정상적 구조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구직급여 제도도 큰 변화를 겪었다. 2019년 10월 비자발적으로 퇴사한 실직자에 대한 구직급여 금액이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인상됐고, 구직급여 기간도 90~240일에서 120~270일로 한 달 연장됐다. 실직자에게 ‘더 많이, 더 오래’ 지급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 그 자체다.
이에 정부는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구직급여 부정 수급자를 막기 위해 5년간 6회 이상 받으면 최대 50%까지 감액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전 정부도 추진하려다 노동계의 반발에 부딪쳐 21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던 법안이다. 하지만 현재도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여야가 모럴해저드를 방지하면서도 청년·취약계층 등 노동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합리적인 실업급여 개편안을 마련해 22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반복수급이 집중되는 배경으로 실업급여 수급을 위한 근로 기간(180일)이 짧다는 점이 꼽히는 만큼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와 함께 보험 가입자 간 형평성을 제고하고 고용기금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려면 실업급여 하한선을 낮추는 등 제도 전반을 수술해야 한다는 제언도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