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대상 SIAI 3년 교육을 정리하면서 (3)
대학을 설립해서라도 제대로 된 AI/Data Science 교육을 해야지, 이렇게 황당한 코딩 교육 수준의 학위 과정만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시절, 식견 있는 선배님들은 어지간하면 무리하지 말고 차라리 미국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거나, 한국에서 정부 프로젝트나 따며 조용히 살아라고 충고하셨다. 저렇게 심각한 통계문맹이면서 코드 몇 줄로 인공지능 전문가라고 현혹하고 정부 및 기업 프로젝트들을 갖고가고 있던데,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어서 만든 포장을 아무리 벗기려고 노력해도 정부나 기업에게 전달이 안 되더라고 불평을 늘어놨더니, 그래서 선배님들도 한국에서 사업 안 하셨단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국내 기초 교육 수준은 엉망이고, 제대로 교육 시키면 따라오질 못하는게 한국 사회 현실이라는걸 이미 수십년간 겪으셨기 때문에 그렇게 날 말리셨을 것이다. 그 때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젠 더 뼈저리게 공감한다.
‘잘 가르치면 학생들이 안 오죠’
한국 교육 시장을 이렇게 잘 정리한 표현이 또 어디 있을까?
지난 2021년 초, SIAI 설립 전에 내가 만든 학위 프로그램을 운영해주는 걸로 제휴를 맺었다가 파기한 모 대학의 교수가 당시 내게 했던 말들을 정리해보면
- 아시아 학생들이 논문을 못 쓰던데, 학비 아낀다고 논문에 그렇게 학점 많이 배정하면 졸업하는 애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 영어 실력이 엉망이어서 우리 수업을 못 알아들을텐데, 그건 어떻게 대응해줄려고 그러냐?
- 자꾸 수업 숫자 줄이려고 하지말고, 쓸 비용은 써야 된다. 우리도 운영비 나와야 되는데, 학비 더 깎아주면 운영비 안 나와서 안 할거다.
- 학교도 교육 수준을 유지해야 하지만, 돈 벌이도 해야되니까 적당히 밸런스를 맞추자
였고, 그러다 계약을 파기하면서 들었던 표현이
- You may have little more knowledge in tech, but you know nothing about running a university
였는데, 3년이 지난 지금와서 보면 틀린 말들이 하나도 없었다. 사실 SIAI는 수익성을 따졌으면 설립이 안 됐어야 하는 기관이고, 순전히 내 욕심 때문에 지난 몇 년간 운영되었다고 지적해도 딱히 할 말이 없다. 다 맞는 말이니까.
내가 잘못한 부분은 크게 아래의 5가지다.
- 잘 가르치면 학생들이 안 오는 걸 알면서도 잘 가르쳐야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적당한 수준의 교육 과정 / 학위 명칭과 타협하지 않았다
- MBA AI/BigData (Biz track)을 처음부터 만들고, 이걸 Default로 삼아야 했다
- 프로그램 수준에 맞지 않는 학생들을 받아줬다가 학생도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고, 너무 많은 학생들이 F를 받으니 나 자신도 학교 존속과 EduQua 심사 사이에서 너무 많이 시간을 빼앗겨 버렸다
- 인터넷 여러 곳에 황당한 논란이 생기는걸 관리할 역량이 부족했다
아마 일반인들에게 AI/Data Science 전문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었으면,
- 적당히 시장 수준에 맞춰 코딩 교육으로 강의 내용을 채워넣고
- 코딩 못해도 학위 딸 수 있다며 자칭 AI 전문가라는 기업 대표들 불러서 초청 강의나 넣고
- 논문 없이 수업만 다 들으면 졸업하도록
학위 과정을 만들었을 것이다.
전문 지식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분들이 내 타겟이었다면 인터넷 여러 곳에 올라온 각종 논란들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예산을 쓰기도 했겠지만, 계속 손해보며 운영하고 교육 품질에 신경쓰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에 금전적인 여유나 시간적인 여유도 부족했다. 쉬운 교육 과정이었다면 1명의 학생을 더 받는데 집중했을테니 학생 1명 데리고 오는데 얼마씩 지급하는 인센티브 계약을 맺으면서 세일즈용 마케팅 업무를 그 분들께 아예 넘겼을 것이고, 마케팅 전문가 분들이 나섰으면 지금만큼 회사가 어이없는 공격을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Fancy한 스위스(라는 부자 나라 + 기술력 좋은 나라) 학위를 받는다는 걸 자랑으로 삼을만한 나라들인 인도 문화권, 아랍 문화권, 아프리카 문화권에 브로커를 두고 학생 1명당 얼마씩 나눠갖는 구조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강의했다고 자랑하고 싶은 기업 대표들한테 뒷 돈까지 챙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이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최소한 돈 벌고 싶으면 저렇게 해야된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다. 적당히 투자금을 어디서 유치한 다음에 영미권 주요 언론사들에 학교 랭킹을 만들어달라고 광고비를 붓고, 이름이 좀 알려졌지만 연구와는 담을 쌓은 교수들을 고액 연봉으로 유혹했으면 이 시스템이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학교를 운영한다고 자랑하고 싶을 누군가에게 적당한 가격에 매각하고 나오게 됐을 것이다.
왜 안 했냐, 무능해서 못 한거 아니냐고 묻겠지만, 저런 거짓말로 만든 상아탑을 온 몸으로 거부하면서 만든 대학을 똑같은 수준으로 전락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변명이 공감이 안 된다면 무능을 인정할 수밖에.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떤 사업이건 저렇게 거짓말이 몸에 배인 사람들, 여론을 선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해야지, 나처럼 순진하게 틀린 것을 배척하기만 하는 사람은 사업을 하면 안 되는 것 같다.
당시부터, 앞으로도 내가 밀고 나가고 싶은 학교의 성장은, 좋은 논문을 쓸 수 있는 학생들에서 시작한다. 논문을 잘 써 내면, 그걸 좋은 저널에 Publish 시켜주고, 그런 기록이 쌓이면서 학교의 학문적인 명성과 내실을 키우는 것이 내 목표였다. 수익성을 내고 싶으면 나중에 학교가 내실이 탄탄하게 갖춰졌을 때나 Executive MBA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하자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미 이런 Organic growth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굳이 내 입장에서 불평을 털어놓으면 논문 못 쓸 줄은 알았지만, 수업도 못 따라오는 애들이 많을 줄은 알았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 심한거 아니냐는 불평 정도 일까? 그런데, 이렇게 한국에서 보기 드물게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의지를 갖춘 학생들 더러 부족하다고 채찍질을 하고 있으니 더더욱 대중들과 멀어지는 교육이 됐고, 교육 수준을 이해하는 대중이 없으니 몇 마디 음해 공격에 더 취약한 기관이 되어버렸다.
어느 공대 출신 학생이, 평생 살면서 한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전공 주제로 논문을 갖고와도 내가 지도를 다 해주는게 신기하다면서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기초 학문 훈련이 잘 되면 어느 주제나 가릴 것 없이 응용되는 구조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고 답을 해 줬었다. 아마 자기 전공에서 그런 방법론을 더 깊게 판 교수들이라면 더 도움을 많이 줄 수 있을텐데, 내가 워낙 지식이 없다보니 잘 몰라서 미안하다고 그랬었는데, 위에서 말했던 그 ‘타협’을 했었더라면 실력파 교수님들을 학교 안에 1명이라도 더 받아서 그 학생들을 도와줄 수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더 미안할 뿐이다.
EduQua 관계자한테는 그간 한국에서 받은 학생들을 ‘Flush’ 시키고 난 다음에는 좀 다른 관점으로 SIAI를 운영해 볼 생각이라고 그랬었는데, 그 날도 그랬고, 지금도 저 위의 ‘타협형’ 사업 모델이 머리 속을 뱅뱅 맴돈다. 하라면 못할 것도 없는데 말이지.
작년부터 SIAI 관리, 운영 관련해서 여러 부분들을 조금씩 스위스 팀에 넘겨주는 중인데, 저런 ‘타협형’ 모델을 그 분들이 하고 싶어하면 도와주는 걸로 타협하지, 저걸 내가 직접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불편해진다. 돈 없는 작은 조직이 말하는 AI/Data Science가 가짜고, 돈 많은 대기업에서 한다고 말하는 AI가 진짜라고 끝까지 고집 피우던 몇몇 악플러들이 SIAI를 그렇게 무시하고 놀리는 걸 봐놓고도 고고한 학이고 싶은 마음을 못 버리고 양심의 정언명령이 발동하는 걸 보면, 확실히 이건 내가 입을 옷은 아닌 것 같다. 애당초 나는 교육 사업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이것저것 넘겨주던 중에 지난 3년간 한국에서 SIAI하면서 얻은게 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 스위스 팀, 유럽 팀들이 앞으로 계속 쓸 교육 자료가 남았고
- 한국에서 교육한 학생 중 (아주) 일부가 남았고
- 한국 대학에서 교육 받은 인재는 뽑지 말아야겠다는 경험치가 남았다
라고 말하면 될까? 교육 사업과 별개로, 그 전에 그 어떤 사업에도 앞으로 어지간히 대체 불가능한 기능직이 아니라면 한국에서 정규직 채용은 안… 아니 못 할 것 같다. 내가 믿고 일을 줄 수 있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걸 내가 교육 사업을 해 보면서 알게 됐고, 한국에서 사업하려면 저런 어이없는 음해 공격에 하나하나 대응하는데 막대한 홍보 비용을 써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준비해왔던대로 비교육 부분에서 B2B나 B2G를 할 수 있다면 한국에 사업체를 남겨두는 것을 더 고민해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한국 시장에서 사업을 해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예전에 어느 학생이 날더러 왜 남들이 다 하는 좀 쉬운 사업을 안 하냐, 그래서 자기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안 되냐고 질문하던데, 그런 사업들은 이미 대기업들이 다 하고 있고, 내 입장에서는 ‘Red Ocean’이다. 내가 시장에서 ‘Blue Ocean’을 제공할 수 있는 사업들은 경쟁자가 없는 사업이지만, 그 학생 기준으로 매우 어려운 사업이다. 몸이 열 개라도 남아나질 않은만큼 바쁘니 채용하고 싶지만, 채용할 방법도 없고, 그런 인재에게 나만 믿고 우리 회사에 취직해라고 하고 싶지도 않다. 오겠다고 해도 대기업의 따뜻한 복지를 누리도록 밀어내는 게 맞지 않을까?
2025년 여름까지 그간 SIAI에 받은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는 것을 끝으로 한국 AI/DS 교육 사업을 정리한다. 모쪼록 내가 뿌린 씨앗이 국내 대학들에 자극제가 되어서 글로벌 수준의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기를, 눈이 열린 인재 분들이 한국 AI/DS 업계 수준을 끌어올려주시길 바란다. 역량이 부족해 한국에서 더 길게 AI/DS 교육 사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점이 누군가에게 피해가 된다면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