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공론화한다고 핵무기 보유할 수 있는게 아닌데, 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북한 핵위협 노출에 핵무기 보유 필요 역설 서울대 서균렬 교수, 핵무기 보유,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 아니야 ‘이준석’과 ‘윤핵관’, 심지어 ‘김건희’ 이슈가 언론에서 사라졌다 여의도 일각, 정략 대신 정책으로 이슈몰이에 성공한 것?
지난 11일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핵무기 보유에 대한 언급을 한 이래, 이번 주 내내 정가가 핵무기 관련 이슈로 뜨겁다. 덕분에 이준석 전 대표와의 분쟁, 김건희 여사의 이력 논쟁은 빅데이터 인터넷 여론에서 보이지 않게 됐다.
북한 노동신문이 지난 10일 미사일 발사 장면을 보도하며 사실상 전술핵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정 위원장의 당시 논조는 우리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반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국내 우파들의 시선과 맞닿아있는 시각이다. 우파는 소련 붕괴 이후 핵무기 상당수를 물려받았던 우크라이나가 핵무기 반환 이후 약소국으로 전락했다며,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건 핵무기를 보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핵무기 보유,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일까?
전 서울대 원자력핵공학과 서균렬 교수는 현실적으로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미국 대통령과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국제기구로부터도 핵무기 보유에 대해 인정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자칫하다가는 북한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겪어온 것처럼, 핵무기 보유만으로 국제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이 핵무기 보유 시도 때문이라는 소설이 유명세를 탔을 만큼, 수십 년간 한국의 핵무기 보유는 지상과제 중 하나였다. 노태우 대통령 들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남북한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지속적인 핵실험 끝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자, 한국에서도 최소한 전술핵 무기를 통해 북한을 위협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외교 전문가들은 한국의 핵무기 보유가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를 억제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제 발전으로 이뤄놓은 것이 많은 한국과 달리, 북한 입장에서는 양측이 핵미사일을 발사한다고 해도 크게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핵미사일 발사를 통해 한국을 점령하겠다는 목표가 아닌, 자국 보호에 초점이 맞춰진 만큼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방식의 대응으로 핵무기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전문가들은 부정적이다. 서균렬 교수는 “북핵 폐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핵화는 이젠 안 된다. 개수가 너무 많다. 그 정도면 가히 ‘연탄 찍기’ 수준이다. 지하에서 찍으면 어떻게 막겠는가? 비핵화를 한다고 해도, 북한은 보유 핵탄두 50~60기 중에 겨우 10% 수준인 5기 정도를 없애거나 내놓을 텐데, 나머지 40~50여 기는 어쩌지 못한다. 게다가 북한에는 1만 명에 달하는 핵 개발 전문 인력이 있다”는 인터뷰를 한 바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 왜 이야기했나?
지난 12일 윤석열 행정부는 미국에 전술핵 공유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라는 조건이 걸려있기는 했지만, 북한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는 만큼 사실상 전술핵 보유를 요청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직접적인 핵무기 공여보다는 핵무기를 탑재한 미 항공모함 전단이나 원자력 추진 잠수함 등의 전략자산을 주변 해역에 상시 배치하는 방안이라고 밝혔다. 이는 윤상현 의원이 지난 2019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시절에 요청했던 내용과 일치한다. 당시 윤 의원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쉽지 않다”며, “대안으로 나오는 미국의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도 한반도 비핵화라는 명분에 사로잡혀 한동안 북미협상을 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줄 리가 없다”고 했었다.
우파 정권인 만큼 핵보유에 대한 욕심이 정치인들 입에서 나올 수는 있는 사안이나, 외교 전문가들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안건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려는 시도에 의문을 품고 있다. 한국의 핵무기 보유는 즉각적인 동북아 긴장 상태를 이끌어, 일본에 이어 심지어 대만의 핵무기 보유까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비록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전 세계적으로 호전적인 분위기가 외교가를 휩쓸고 있는 상황은 맞으나, 현실적인 가능성이 낮은 안건인 만큼 의도에 대해 다른 의문을 품게 한다.
여의도 한 관계자는 이번 핵무기 보유 관련 이슈가 터지자마자 윤석열 대통령 집권 초반 내내 괴롭혔던 ‘이준석 이슈’와 ‘윤핵관 이슈’, 심지어 ‘김건희 이슈’가 모두 언론상에서 사라졌다는 의견을 내놨다. 빅데이터 여론에서도 마찬가지다. ‘핵무기’가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윤석열 대통령을 불편하게 했던 주제들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13일 무고죄로 기소당한 상태다.
국방·외교적인 전략을 담은 도전이었는지, 이슈 환기를 통해 국정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도였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결과적으로는 정략적인 주제보다 정책적인 주제가 여의도의 화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정진석 위원장의 이슈몰이는 작은 성공을 거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