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농 육성하겠다는 정부, 정작 농업인은 FTA에 ‘몸살’
‘농업혁신 및 경영안정 대책’ 발표, 스마트농업 확대·청년농 육성 강화 文 정부 답습 우려, 실패하면 재도약 기회 없는 점도 아쉬워 FTA, 쌀값 하락 등 농업 부진 상황, 구체적인 방안 있어야 청년층 관심 가질 것
정부가 스마트농업을 확대하고 청년농을 육성하겠다는 내용의 ‘농업혁신 및 경영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청년농 육성으로 농촌 고령화를 해소하고, 스마트농업 확대를 통해 자연재해와 노동력 감소 등에 대응 및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우리 농업은 고령화 심화에 따른 인력 구조 불균형 상태에 놓였다. 실제로 40세 미만 청년 농업경영주 규모는 2020년 기준 12만4,000명으로 전체 농업 경영주의 1.2%에 불과하다. 반면 65세 이상 고령농은 1990년 18% 수준에서 2020년 56%까지 늘었다.
농지 구매부터 농촌 공간 조성까지, 청년 마음 사로잡나
이번에 마련된 대책은 청년농의 진입 장벽으로 지적된 초기 투자 부담, 취약한 농촌 인프라 등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우선 농지 확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농 대상 농지 공급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청년농이 원하는 농지를 30년간 장기 임차해 농사를 지은 후 매입할 수 있는 ‘선임대-후매도’ 제도를 내년부터 새롭게 도입한다. 첫 농지 구매 시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 단가와 규모는 확대하기로 했다. 지원 규모는 올해 100ha에서 내년에는 140ha까지 확대하고, 융자 지원도 ha당 1억5,4000만원에서 2억5,400만원으로 인상했다. 실거래가, 임차료 등 농지 거래 정보와 청년농이 사용할 수 있는 유휴농지 등에 관한 정보는 농지은행 포털을 통해 제공한다.
‘청년농스타트업단지’도 신규 조성한다. 유휴농지를 매입해 시설 농업이 가능한 수준으로 정비한 후 이를 청년농이 원하는 스마트팜 시설 등을 설치하도록 장기 임대·매도하겠단 것이다. 정부는 우선 내년에 6ha 규모의 스타트업단지를 조성했다.
영농정착지원사업 선정 규모는 올해 2,000명에서 내년 4,000명까지 2배 늘리기로 했다. 정착지원금 지급단가도 월 100만원에서 110만원으로 인상했다. 영농정착지원사업은 만 40세 미만, 영농경력 3년 이하 청년농에게 매월 일정 금액의 정착지원금을 최장 3년 동안 지급하는 사업이다. 후계농에게 지원하는 융자금의 상환기간은 현행 15년에서 내년부터는 25년으로 늘어나고 금리도 2%에서 1.5%로 인하했다. 지원 한도도 3억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됐다. 청년농 전용 펀드인 ‘영파머스펀드’는 현재 310억원에서 2027년까지 1,000억원을 추가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농업의 미래성장산업화를 위해 청년농이 스마트농업에 적극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는 △청년창업보육센터 통한 교육 프로그램 다양화 △청년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 △스마트팜 혁실밸리 추가 확대 등이 거론됐다. 이외에도 △청년이 살고 싶어 할 만한 농촌 공간 조성 △’농촌에서 살아보기’ 등 프로그램 확대 △’농업창업플랫폼’ 구축 통한 원활한 정보 제공 등을 함께 진행했다.
청년농 정책 실패 이력 있어, 文 정부 답습 안돼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2027년까지 청년농 3만 명을 육성하고 오는 2040년까지 청년농의 비중을 1.2%에서 10%까지 늘릴 계획이다. 정부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우리나라 농업의 지속가능성이 확보되는 것은 물론 식량 자급률이 개선되면서 식량 안보를 더욱 두텁게 보호할 수 있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와 비슷한 청년농 및 스마트농업 육성 계획을 내놓았던 바 있어, 청년농 육성 계획이 정부의 뜻대로 될지 여부엔 의심의 여지가 많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스마트팜 창업 보육센터 교육을 수료한 청년농에게 월 최대 100만원의 영농정착지원금을 지급하고 저렴한 임대료의 임대형 스마트팜 입주 기회를 부여하는 등 청년농에게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까지 창업 보육센터에서 총 600명의 청년 스마트팜 전문가를 배출해내겠단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지난 2020년 1기 수료생부터 올해 3기까지 창업 보육센터 수료생은 총 284명에 불과했다. 이는 초기 목표의 47.3%였다. 이전 정부 정책을 거의 답습하듯 이어 나간다면 그 결과 또한 답습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내놓은 청년농 3만 명 육성·청년농 비중 10%까지 증대 등 목표가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다.
‘진입’만을 위한 정책, 실패하면 그대로 끝?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대부분 청년농의 ‘진입’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도 아쉽다. 청년농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는 대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청년농은 초기 진입 이후에도 생활비나 소득 측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농업에 뛰어든 뒤 즉시 안정적인 수입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결과를 단시간에 확인하기도 어렵고, 자연재해 같은 불가항력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 청년농업인연합회에 따르면 청년농이 농업을 포기해야겠다 생각하는 시기는 △ 안정적인 생활비 확보가 되지 않을 때 △지속 투자에도 소득 창출이 되지 않을 때 △ 실패 후 재기가 어려울 때 △지역사회 정착이 쉽지 않을 때 등으로 나타났다. 성공적인 귀농 정착을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전체 응답자의 49%인 과반에 가까운 청년농이 ‘추가적인 자금 지원’을 꼽기도 했다.
청년농의 재도약을 지지하는 정책도 부족하다. 이전 정부의 청년농 정책에서 지적된 바 있는 △부족한 자금 지원 제도 △짧은 상환기간 △낮은 대출금 한도 등 문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다. 이전부터 경영회생지원사업 등 농지를 매입해 부채를 갚을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 있었지만, 농지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청년농에겐 이 역시 제대로 지원받을 수 없다.
FTA 아래 희생되던 농업, 청년들이 눈길 줄까
FTA 등 국제 무역 이슈에서 항상 소외된 농업에 청년들이 미래를 걸 수 있을까? 미지수지만, 부정적인 이슈가 가득한 질문이다. 지난 2014년 9월 쌀 관세화 선언으로 인해 국내 농산물 시장이 완전 개방됨에 따라 우리나라도 수입자유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는 기업에 여러 방면으로 접근성을 늘리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58개국과 맺어 온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수출경쟁력이 약한 농업은 반도체 등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졌다. 경쟁력이 약해진 만큼 이들의 목소리도 줄어들고, 목소리가 줄어드니 이들을 대변해 줄 사람도 적어졌다. 대변인이 적어지니 자연스레 농업인의 힘도 약해졌다.
이전까지 정부는 농업 부진을 자연스러운 결과로 인식했다. 윤석열 정부도 큰 그림에 있어서는 차이점을 보이진 않았다. 최근 한·페루 FTA에 따른 농업 피해 예측에 실패한 것 또한 정부의 안일한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특히 페루산 녹두·팥의 우회 수출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단 점은 질타받을 만한 문제다. FTA 체결국을 이용한 우회 수출 가능성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에 사전 분석에서 이를 충분히 검토했어야 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농업인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 메가FTA 가입을 위한 기싸움을 이어졌다. 청년농 육성, 식량 자급률 제고, 농업의 지속가능성 확보, 식량 안보 등을 부르짖던 정부의 뒷면이다. 이 때문에 청년농 정책은 청년들에게 사실상 눈먼 지원으로 보일 수밖에 없단 뜻이다.
게다가 올해 쌀값은 45년 만에 최대 폭으로 하락했다. 농업의 부진이 눈으로 직접 보이는 것인데, 이런 와중 농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이가 있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9월 기준 쌀값은 20kg당 4만725원으로 1년 동기 대비 24.9%나 떨어졌다. 지난해 쌀값이 높게 형성된 탓에 여유를 부리던 정부는, 농민들의 분노 아래 부랴부랴 초과 생산량을 격리하기 시작했다.
한창 사회생활을 시작할 나이의 청년들에게 농업이라는 분야는 도전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농촌에 사람이 부족하니 청년들을 끌어들이겠단 생각으로 안일한 정책을 내놓아선 청년들이 걸려들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식량 안보에 관심 있음을 어필하기 위한 깃발 꽂기식 정책보단 청년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짜 정책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