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성정체성 장애’ 비병리화의 득과 실
성별 불일치, 2031년부터 장애 아니다 장혜영 “한시라도 빨리 비병리화해야” 청년들이 트랜지션에 대해 신중하도록 제도적 장치 필요
트랜스젠더가 성별 정체성에 맞게 사회적 성별을 변화시키는 과정의 1차 관문으로 꼽히는 ‘성 주체성 장애’로 진단받은 사람이 지난 5년간 1만여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은 트랜지션을 고려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줄이기 위해 ‘성 주체성 장애’를 정신장애로 분류한 현행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의 개정을 통해 해당 장애를 비병리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랜지션이란 트렌스젠더가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맞게 사회적 성별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하지만 성 주체성 장애를 갖고 있더라도 트랜지션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많기에 법의 사각지대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민국 ‘성별 불일치’ 9천여 명, 아직은 정신 장애인
대한민국에서 ‘성 주체성 장애’로 병원을 찾은 인구는 2017년부터 2022년 8월까지 9,828명으로 나타났다. ‘장애’라는 낙인이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을 통해 ‘성별 불일치’를 정신장애 항목에서 삭제하고 ‘성건강 관련 상태’로 신설한 뒤 각국에 2022년 개정을 권고했다.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도 정책 권고를 통해 ‘성별 불일치’를 정신장애로 분류한 현행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의 개정을 권고했다. 하지만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 및 시행은 2031년에나 이뤄질 전망이다. 통계청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사항은 2026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의 9차 개정이 아닌 2031년 10차 개정에 반영될 예정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9차 개정에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사항을 포함해 한시라도 빨리 성 주체성 장애의 비병리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장 의원의 주장은 한 가지 측면만 고려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코드 F64에 해당하는 성 주체성 장애를 앓는다고 해서, 전부 트랜지션을 통해 트랜스젠더가 되고 싶어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트랜지션의 허들을 낮추는 것, 과연 바람직한가?
일례로 온라인상에 올라온 40대 남성 A씨의 사연을 살펴보면 성 주체성 장애의 전면 비병리화가 상당히 위험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성 주체성 장애를 앓고 있는 A씨는 자신이 여성이 되고 싶다는 충동 등을 자주 느끼고, 자신이 남성인 것에 불만족하지만, 가정을 꾸리고 있는 가장이기에 남성으로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싶다고 밝혔다. 만약 성 주체성 장애가 전면 비병리화된다면 이런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대처는 매우 어려워진다.
그리고 성 주체성 장애가 비병리화된다면 성전환 수술의 허들이 매우 낮아지는 현상을 초래할 것이다. 현재 법원은 성별 정정 허가 조건으로 정신과 진단과 불임, 외부 성기 성형수술을 요구한다. 해당 정신과 진단이 바로 성 주체성 장애 진단이며 호르몬 요법 등의 의료적 조치와 법적 성별 정정, 병역 판정 등을 위해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만약 정신과 진단의 허들이 낮아진다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단에 해당하는 성전환 수술을 신중한 고려 없이 선택할 수 있다.
트랜스젠더가 되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차별받는 존재’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자발적으로 차별화하는 것에 가깝다. 인권위가 지난해 실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의 85%(500명)가 월 평균 임금 200만 원 미만으로 조사됐다. ‘현재 소득 없음’에 응답한 비율은 55.4%(326명)에 달했다. 정규직 직장을 가지는 비율은 14.6%였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도 12.2%에 그쳤다. 경제적 빈곤을 겪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유는 구직 과정에서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실제로 트랜스젠더의 57.1%가 정체성 때문에 채용에 지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랜스젠더로의 전환을 결심하는 나이는 우리나라의 경우 평균 20세 근방이다. 그러나 20세의 성인이 자신의 인생 전체를 고려해 성전환을 결심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성 정체성 장애를 비병리화한다면 아주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선뜻 트랜스젠더의 길을 선택하는 젊은 청년들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비병리화를 통해 ‘질병’의 낙인을 찍는 게 인권침해라고 얘기하기에는 성전환 과정, 트랜지션이 가져다주는 여파가 너무 불가역적이고 거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