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푸틴이 만들어낸 대체에너지 시대
러-우 전쟁이 부른 에너지난(亂), 스위스는 함께 샤워해서 에너지 절감하자 캠페인 이야기까지 천연가스 가격 10배 이상 상승, 대체에너지에 대한 관심도 증가, 에너지 효율화 고민도 전쟁 여파, 결국 푸틴이 의도치 않았던 천연가스 의존도 축소로 이어져
지난 9월 18일(현지 시각) 시모네타 소마루가 스위스 환경부 장관이 ‘여럿이 샤워하면 에너지 절약할 수 있다’는 표현을 써 화제가 됐다. 이를 두고 영국 더타임즈는 유럽 에너지난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 수 있는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스위스 정부는 올겨울 에너지 부족에 따른 대규모 정전을 방지하기 위해 전력 사용량을 15%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묻는 질문에 소마루가 장관이 공동 샤워를 제안한 것이다. 공동 샤워 외에도 사용하지 않는 컴퓨터와 전깃불 끄기, 예열하지 않은 오븐에 케이크 굽기, 찬물로 입속 헹구기 등도 권고했다.
이러한 발언에 더타임즈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언론은 실효성 없는 대안으로 일상생활을 전쟁 수준으로 제한하는 정책만 내놓는 스위스 정부를 질타하기도 했다.
러-우 전쟁이 부른 에너지 부족, 부(副)국 모임인 서유럽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상생활 제한
수 많은 고가 상품이 스위스산(産)인 경우가 많은 탓에 부(副)국으로 알려져 있으나,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스위스의 사정도 다른 유럽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전기 요금을 비롯한 각종 공과금이 최소 2배 이상 인상됐다. 러시아에서 직접 가스를 구매하지는 않지만, 독일 등을 통해 러시아산 가스를 공급받아 왔기 때문에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가스 저장 용량이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12% 수준인 점도 에너지 대란 심화 요인으로 꼽힌다.
스위스는 국가 설립 초기만 해도 주변국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산악지형인 알프스산맥에 모여 사는 약소국이었다. 용병 사업과 은행업으로 18세기를 지나며 부자 국가 대열에 들어가기는 했으나, 여전히 국민성은 검소한 편이다. 1985년에도 ‘낭비는 줄이고 기쁨은 두 배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여럿이 함께 샤워할 것을 권고하는 책자를 발간했던 사실이 더타임즈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슬로건은 세계 1차, 2차 대전 중 유럽 타국을 통한 수입 길이 막혔던 상황에도 종종 등장했던 내용으로 스위스 내부적으로는 국가적 위기 대응을 위한 높은 국민성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환경부 장관이 할 수 있었던 발언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대란이 일어나면서 올겨울 에너지 부족으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전력 사용량을 가구당 15%씩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대규모 정전을 피할 수 없다는 보고가 나오면서 환경부 장관이 오래 묵혀뒀던 스위스 방식의 근검절약을 다시 꺼내 든 것이다.
에너지 가격 폭등에 따른 대체에너지 관심 확산
군사·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사실상 에너지 전(戰)이라고 평가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쟁 발발과 함께 천연가스 공급량을 조절하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판매 단위당 20유로대 박스권에서 200유로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 전쟁 종료 기미가 보이면서 100유로까지 하락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전쟁 발발 직전 대비 매우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천연가스 및 원자재 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독일을 비롯한 대체에너지 강국들은 에너지 수급 다양화에 뛰어들었다. 전 세계가 원전·태양광·풍력·수소 같은 청정에너지로 눈을 돌렸고, EU(유럽연합) 국가들은 러시아의 석탄·석유·가스 수입을 줄이기 위해 파이프를 통하지 않은 LNG(액화천연가스)로 수입 경로를 돌리며 단기간 석탄 발전을 크게 늘렸다.
자칫 석탄 에너지 시대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으나 유럽과 미국은 청정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효율 상승을 위한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은 ‘리파워 EU(REPowerEU)’ 패키지를 통해 에너지 소비 감축 의무를 확대하고 2025년까지 청정에너지 발전 설비를 2배 이상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미국도 2030년까지 태양광·풍력 발전 용량을 지금보다 2.5배, 전기차는 7배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푸틴이 쏘아올린 작은 공, 결국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에 한 걸음 더 다가가
전쟁이 길어지며 대체에너지 투자는 계속됐다. 올해 태양·풍력 발전량은 사상 최대다. 폴란드의 경우 태양광·풍력 발전량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48.5% 급증했다. 27개 EU 회원국 가운데 19개국이 태양광·풍력 발전 신기록을 세웠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ssociation, IEA)는 지난 10월 27일 발표한 ‘세계 에너지 전망 2022 보고서(World Energy Outlook 2022)’에서 올해 화석연료 사용으로 발생한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이 1% 미만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만 해도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정점이 언제일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발표했지만, 이번엔 2025년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두 전쟁 때문이다.
심지어 IEA는 이번 보고서에서 ‘역사적인 전환점(Historic turning point)’라는 표현까지 썼다. 전쟁 탓에 발생한 원자재 가격 대란이 얼마나 크게 에너지 소비 패턴과 생산 구조를 바꿨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 빅데이터 여론도 비슷한 맥락이다. 국내 에너지 정책과 관련된 키워드는 에너지 가격 등의 국제 시장 이슈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더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각 하늘색 키워드 그룹, 붉은색 키워드 그룹, 보라색 키워드 그룹은 국제시장 원자재 가격 관련 키워드 및 이태원 참사 키워드가 결합된 기준 키워드인 ‘에너지’와 관련도가 낮은 키워드들의 모임)
전쟁 종료가 임박했다는 설이 나오는 가운데, 천연가스 가격이 회복될 경우 대체에너지 투자가 향후 어떻게 바뀔지 알 수는 없는 만큼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유럽 국가들이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기존 정책에 수정을 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