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 논리적 사고 ② 학교의 수학 교육부터 바뀌어야
수학 교육이 논리적 사고 길러준다는 TFD와 그렇지는 않다는 FH가 대립 인과관계, 상관관계는 논쟁 중, 수학 잘하는 사람이 논리적이라는 것은 공감대 형성 한국 수학 교육은 논리력 없이 문제 풀이 기계 양산 시스템으로 전락
논리적 사고를 기르기 위해 수학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인과적 사고’ 대신 ‘응보적 사고’에 휩쓸린다는 지적을 한 진중권 전 교수의 지적대로, 한국인의 논리적 사고가 약하다면 그 원인은 수학 교육이 부실해서일까? 한국의 수학은 학습량이 너무 많아서 수포자를 양산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할 만큼 학생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과목이 아니었나?
수학 교육과 논리적 사고력의 연관성 : TFD와 FH의 대결
수학 공부가 논리적 사고력을 길러준다는 관점을 영어권에서는 TFD(Theory of Formal Discipline)라고 부른다. 수학 공부를 해서 실력이 쌓이다 보면 논리적 사고력의 깊이도 깊어진다는 원인과 결과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반면 수학이 논리력에 도움을 주는 관계를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관관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수학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전반적으로 머리가 좋기 때문에 논리력도 알아서 좋다는 주장으로 이를 FH(Filtering Hypothesis)라고 부른다. 두 이론의 가부(可不)는 여전히 학계의 치열한 논쟁거리 중 하나다.
두 이론 중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으나, 양측이 모두 동의하는 공통 가설은 실제로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논리적 사고력도 좋다는 것이다. 수학을 잘하기 위해 시간을 쏟아부었는지, 논리력이 매우 좋아 매우 쉽게 수학을 잘하게 되었는지가 논의의 대상일 뿐이다. 양측의 공통 가설대로라면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같이 논리적 사고력을 크게 요구하는 직업의 경우 수학 실력을 토대로 장래 퍼포먼스를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즉 수학 시험을 통해 노동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우수한 학생들을 변별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타당하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사교육 시스템이다. 대부분의 수학 학원들에서는 본질적인 수학적 사고력을 키워주기보다는 빠른 시간 안에 문제를 풀어내는 테크닉을 중심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수학 시험을 통해 우수한 장래 인력을 선발하고자 하는 생각은 대한민국 한정으로는 현실성이 없는 얘기에 해당한다.
TFD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거론되는 것 중에는 수학자들과 비수학자들의 성향 차이가 있다. 비슷한 지능 수준의 수학자 그룹 A와 비수학자 그룹 B를 비교했을 때, 수학자 그룹이 좀 더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원래부터 똑똑하기 때문에 논리력과 수학적 능력이 다 좋은 것도 물론 있지만, 같은 지능이라도 수학적 탐구를 많이 한 사람이 더 논리적으로 변화한다는 뜻이 된다.
한국 수학교육, 겉핥기식이라 논리력과 거리 멀어
문제는 한국 수학교육의 현실이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한글 문해력 수준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해 수학 문제 그 자체보다 문제를 서술한 글이 어려워서 문제를 못 푸는 초등학생들이 넘쳐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고등학생 이후에도 비슷하다. OECD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인 PISA 2018에서 대한민국 학생들은 참가 79개국 중 7위를 차지했다. 그렇지만 비슷한 수준의 성취도를 보인 핀란드, 일본, 싱가포르, 에스토니아와 비교해 보면 실생활 맥락에서의 수학적 해석에서는 어려움을 겪는다고 분석했다. 대한민국의 수학 대중 교육이 논리적 사고력의 증대에는 실패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고교생의 학업 성적 저하는 취학연령의 어린 학생들에게서부터 관찰된다. 사교육을 통해 깊은 사고 없이 바로바로 지식을 습득하고 있기 때문에 사고력, 논리력이 길러지지 않은 상태로 고교까지 학력만 쌓이는 상태인 것이다. 지난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초등학교 4~6학년 1,841명을 대상으로 사교육 실태에 대한 설문을 진행한 결과, 무려 88.1%의 학생들이 사교육을 1개 이상 받고 있었다. 그중 2개 이상의 비중은 무려 65.1%에 달했다. 이른바 ‘사교육 공화국’이 된 상태인데, 정작 실생활 맥락에서의 수학적 해석은 매우 초보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수학을 세상을 이해하는 원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는 데 아무 필요도 없는 점수’라고 인식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수학이 논리의 학문이 아니라 암기의 학문이 된 학교 현실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최상위권의 엘리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학 교육의 상황은 다를 수 있다는 반론이 나온다. 특히 인공지능을 비롯한 4차산업 시대의 주요 학문이 대부분 고급 수학을 기반으로 구성된 만큼 엘리트 계층의 수학 실력이 탄탄하게 갖춰져 있어야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학습량 많아서 수포자 양산’이라는, 일반 대중의 표를 의식한 교육감들이 한국 고교의 수학 교육을 몇십 년 뒤로 후퇴시켜 놓은 상황이다.
90년대에 최상위권 명문대 본고사 입시를 치른 학생들이 풀었던 수학 문제집을 놓고, 이런 문제를 풀 수 있는 학생이 전무할 것이라는 한 대치동 10년 경력의 수학 강사는 “대치, 압구정, 잠실 쪽에서 자사고, 특목고 학생들을 많이 대했지만, (이 정도 수준의 책은) 처음 봤다. 현재 고등학교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않는 내용이다.”고 답변했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나중에 사회에 진출해서 논리적 사고력을 극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데 한국의 공교육이 그것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청소년기 초입인 만 12세부터 논리적인 사고력을 본격적으로 발달시키기 시작하는데, 이때 제대로 된 수학 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공교육의 의무다. 공교육의 의무를 넘어,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장차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력으로 청소년 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필수인 시대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고, 수학적 능력이 모든 업무역량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에 부합하는 생산성을 키워주지 못한다면 이미 저출산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은 더욱 큰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학 교육 바로 세우기가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