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전략과 이에 적극 대처하는 유럽
러시아 가스프롬, 독일로 연결되는 노르드스트림-1 가스관의 터빈 잠갔다 EU, 수입된 천연가스 중 38.2%를 러시아에 의존 에너지 가격 하락에 EU 안도, 푸틴은 상황 달라진다며 의기양양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이 러시아에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러시아는 에너지를 무기화해 대러 제재나 우크라이나 지원을 실행하는 유럽 국가들을 위협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4월에 폴란드·불가리아에 대한 가스 공급을 일시 중단했으며, 9월에는 프랑스와 독일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이외에도 보수공사 및 사고 등을 핑계로 대며 가스와 원유 공급을 수시로 중단하는 행태를 보인다. 이에 유럽은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할 액화천연가스를 미국, 중동 등지에서 수입한다든지, 전력소비량을 감축해 가스 소비량을 통제하는 등의 시도를 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의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독일로 연결되는 노르드스트림-1 가스관의 터빈을 7월 26일 잠갔다. 에너지 공급이 줄어든 독일 측은 러시아의 공급 중단에 근거가 없다고 반발했지만, 러시아는 캐나다에 수리를 맡긴 가스관 터빈이 반환되지 않고 있다고 변명했다. 독일이 ‘푸틴이 사기를 친다’고 비난했지만, 러시아 측은 눈 하나 깜짝 않는 모양새다.
EU, 대러시아 에너지 의존 줄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 중
현재 유럽 국가들의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2020년 EU 회원국은 수입된 천연가스 중 38.2%, 원유 중 25.7%, 석탄 등 화석연료 중 49%를 러시아에서 들여왔다. 물론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도는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라트비아, 북마케도니아, 몰도바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 비중은 100%이며, 헝가리와 체코도 천연가스의 95.7%, 98.5%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반면 덴마크와 아일랜드, 크로아티아 등은 러시아 천연가스를 전혀 수입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종합한 결과 블룸버그는 러시아의 가스 공습 전면 중단으로 간다면 유럽연합(EU)의 국내총생산(GDP)은 최대 1.5% 감소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대한 유럽의 대응 방안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대체할 액화천연가스(Liquefied natural gas, 이하 LNG)를 미국, 중동 등지에서 도입하고 있으며, 동시에 가스 소비량을 통제하기 위해 ‘에너지 가격 상승에 관한 규칙’에도 합의했다. 이는 회원국들에 총 전력소비량의 10% 감축을 권고하고, 피크타임에는 5% 감축을 의무화하는 규칙이다. 다만 유럽은 에너지 가격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인플레이션과 경제침체에 대비해야 하며,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해 EU 회원국 간의 합의가 어렵다는 문제점에 봉착해 있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정치의 불안정에 시달릴 가능성도 커진다.
에너지 가격 하락 추세에 유럽 웃지만, 푸틴 생각은 다르다
유럽에 희소식도 물론 존재한다. 최근 각국의 에너지 전문가들과 경제학자들은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전략이 유럽 각지에서 큰 어려움을 초래하겠지만, 이번 겨울이 지나면 유럽의 에너지 공급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영향력이 크게 축소되리라 전망한다. 이유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치솟던 에너지값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등에서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할 공급 루트를 확보한 것도 안도가 되는 대목이다.
그리스에서 불가리아로 이어지는 천연가스관이 1일(현지시각) 가동을 시작한 것도 유럽에 웃어주는 대목이다. 러시아산 대신 아제르바이잔 천연가스를 불가리아가 공급받기 시작한 것인데, 이를 두고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불가리아-그리스 가스관의 개통을 “게임 체인저”라고 부르며,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다만, 다가오는 겨울철에 예상보다 에너지 소비가 증가한다면 이런 낙관론이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겨울철 에너지 가격 폭등과 소비 증가로 인한 공급 부족 사태를 예상한다고 전해진다. 이런 상황이 오면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휴전을 설득할 것을 장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이미 국내적으로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서 “모스크바는 서방의 단결에 놀랐다. 미국을 과소평가했다. 우리의 목표는 특별 군사 작전을 마무리하는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듣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올리가르히라 불리는 러시아 재벌 일부가 러시아 국적마저 공공연히 포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푸틴의 도박이 성공해 정말로 유럽이 이번 겨울을 버텨내지 못할지, 아니면 정작 겨울바람에 얼어버리는 것이 러시아가 될지는 지켜 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