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男수첩] ‘평균 실종’이 저출산과 관계있다고?
저출산 지속되면 인니, 필리핀에도 한국이 추월 당할 가능성 주택 가격 상승과 사교육비가 저출산 쌍끌이로 견인 평균적 사고보다 양극화된 사회 구조에 기반해 정책 입안해야
암울하기 그지 없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난 3분기 합계출산율 0.79명을 기록한 대한민국이 2050년경에는 인도네시아와 나이지리아 등 인구 대국에게 경제 규모를 추월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를 통해 나왔다. 2075년에는 필리핀에게도 한국의 경제규모가 추월당한다고 예측됐다. 인류 최악의 저출산 트렌드가 몰고 올 ‘인구 절벽’이 예기하는 우리나라의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곧 현실이 된다는 얘기다.
무려 260조 원의 예산을 지출했음에도 이러한 저출산 트렌드가 반전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은 정부의 접근 방식이 잘못됐다고 성토한다. 신생아에 대한 더 많은 재정적 지원 약속이나 문제 해결을 위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구성 이외에,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전혀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저출산 원인에 대한 제대로 된 계량 분석을 통해 문제에 접근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저출산, 크게는 주택 가격, 사교육비 때문
여러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저출산 원인으로는 부동산 가격 상승과 사교육비 상승, 결혼에 대한 가치관 변화, 여성들의 사회 진출 확대로 인한 초혼 연령 상승 등이 꼽힌다.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과 사교육비 부담의 증대가 출산율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돼 있다.
학술연구 <주택가격과 주택공급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 서울시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서울 시내 합계 출산율은 서울 시내 아파트 가격과 음의 관계로 분석되어 아파트 가격 상승이 출산율 하락과 관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아파트 가격 상승이 출산율 하락에 기여한 수준은 서울 주택가격이 지속 상승한 2014~2018년까지 감소한 합계출산율 0.222명 중 24.2%에 해당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비슷한 주제의 연구인 <주택가격 상승 충격의 저출산 심화 기여도 연구>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주거 비용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은 28.8% 정도의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의 주택가격이 결혼과 자녀 출산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수도권 거주 여부는 출산율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거주 지역의 주택가격이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단하게 말해서, 어디에 살든 집값이 오르면 사람들은 아이를 덜 낳는다.
평균적 사고는 No! 양극화된 사회 구조가 저출산 현상의 핵심
문제는 분석이 이 정도 차원에서 끝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집값은 집을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다. 한국 국민들의 주택 보유율은 통계청의 2021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56.2%에 그친다. 서울은 그 비중이 더 낮아서 48.8%다. 간단히 말해 국민의 절반은 집값이 얼마가 되든 크게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신혼부부의 혼인 연차별 주택소유 비중은 1년 차에 30.7%에서 5년 차에 51.7%로 점프하고 그 이후에는 크게 변화가 없다. 집이라는 것은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초반부터 대부분 갖고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사지 못하는 성질의 재화라는 뜻이다. 즉 주택 가격 상승이 저출산에 미치는 영향은, 평균과 분산이 유의미한 정규분포 형태가 아니라, ‘주택 소유 가능군’과 ‘주택 소유 불가능군’이라는 양극화된 형태(bimodal)로 존재한다.
즉 출산율 제고를 위해 주택 시장의 가격변동이 ‘평균 가구’의 출산율 변동에 미치는 영향을 기초로 해 정책을 수립하면 현실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최근 유행하는 말 중 ‘평균 실종’이라는 단어가 있다. ‘평균 실종’이란 정규분포가 아닌 다른 형태의 분포가 일반화된 사회를 뜻하는데, 이런 사회에서는 평균이 모집단의 대표값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평균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이다. 자산의 규모가 대표적이다. 2021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대 가구주 하위 2%자산은 11.9% 감소한 반면, 상위 20%의 평균 자산은 2.5%증가했다. MZ세대 상위 20%의 자산 규모는 하위 20%의 약 35배에 이른다. 부동산 소유에서도 이러한 격차는 명백하다. 즉, 자산이 변수인 경우 평균이 갖는 의미는 크게 없는 셈이다. 가우시안 혼합 모델(Gaussian Mixture Model)을 사용해 양극화 그래프에서 두 개의 별개의 정규분포를 추출해 내 따로 분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집을 소유하거나 소유할 전망이 있는 가구와, 그렇지 못할 가구를 따로 나눠서 정책적 목표를 각각 설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집값이 아주 비싼 곳에 거주하거나 집을 소유하거나 소유할 전망이 있는 경우, 사교육비 비중에 비해 집값이 저출산 기여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서울의 경우 소위 ‘강남 4구’의 경우 이 지역의 아파트가격 상승은 출산율을 낮추는 효과가 21개구에 비해 평균 2배 가까이인 것이 확인됐다. 반면 집값이 싸거나 집을 소유할 전망이 없는 경우 사교육비가 저출산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사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는 계층의 경우 집값 상승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만, 사교육에 신경을 덜 쓰는 계층의 경우 주택가격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집값이든 사교육비든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변수 분석에 있어선 평균을 따지기보다는 분석 대상을 두 개로 나눠서 보는 접근법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정책 결정자들인 고위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산업 사회의 산물인 평균 중심적 사고에 여전히 너무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출산의 전제가 되는 결혼이, 더 이상 평범한 것이 아닌 시대이기에 평균에 맞춰서 사고를 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음에도, 정책 결정자들이 과거의 낡은 사고를 답습하고 있다.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의 ‘나혼자산다’ 관련 발언이 청년들에게 웃음거리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결혼이 특별한 것이 된 시대, 출산은 더 특별한 것이 된 시대, 모든 측면에서 양극화가 심해진 시대에 맞춰서 정책 결정자들의 머릿속 관념의 대격변이 일어나야만 한다. 결혼이 더 이상 평범하지도, 평균적이지도 않은 사회가 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양극화된 사회 구조와 자산 소유의 격차가 있음을 인정하고, 평균 중심의 사고를 버려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정책 결정자들이 나날이 악화돼 가고 있는 저출산 트렌드를 조금이나마 반등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