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장애인 콘텐츠 접근성 높이자”…실시간 방송-자막이면 충분한가
장애인방송 관련 규정, OTT는 ‘해당 없음’ 늘어나는 이용자…OTT는 자비로 자막 제작 방통위 ‘장애인미디어접근기본법’ 구상 기업-정부의 장애인 접근성 제고, ‘자막’에 한정
팬데믹과 함께 가속화된 디지털 변환과 OTT 서비스의 생활화, 모든 사람이 충분히 누리고 있을까?
11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OTT와 주문형비디오(VOD) 등 서비스에서 시청각 장애인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됨에 따라 음성·자막·수어 변환 시스템 개발에 나서는 등 개선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실시간 방송에 한정된 장애인 방송 관련 규정
현행 방송법은 실시간 TV 방송에 한해 자막·화면해설·수어 등 장애인 방송 제공 의무편성비율을 규정하고 있다. 다만 OTT는 방송법이 아닌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의 적용을 받는바, 해당 조항을 지킬 의무가 없다. 권고조항으로 “방송사업자는 실시간 방송이 아닌 서비스에 대해서도 장애인 방송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을 뿐이다.
해외의 경우, 미국은 2010년 「21세기통신영상접근법」에 따라 TV 방영 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 다시보기할 때 자막을 제공하도록 의무화했으며, 영국은 2017년 「디지털 경제법 2017」에 근거해 VOD에서 자막·수어·화면해설 제공하도록 했다. 독일은 2019년 「방송과 텔레미디어에 관한 주간협약」에서 VOD에 대한 장벽 없는 접근 서비스 제공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미국농아인협회가 글로벌 OTT 넷플릭스를 상대로 한 장애인 인권 소송에서 승소한 바 있다. 이후 넷플릭스는 모든 콘텐츠에 폐쇄형 자막 제공을 비롯해 오리지널 콘텐츠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화면 음성해설(AD), 텍스트 음성변환 기술(TTS) 등을 지원한다.
국내는 지상파 TV를 중심으로 자사 홈페이지 및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장애인방송 제공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2020년부터 VOD 콘텐츠에 대해 제작 예산이 지원된 영향에 따른 것이다. 방통위는 2020년부터 올해까지 연 7억1,400만원의 관련 예산을 방송사들에 지원해왔으며, 당초 지상파로 한정되었던 지원 대상 역시 2021년에는 EBS, 2022년에는 JTBC와 TV조선으로 확대했다. 2023년에는 예산을 추가 확보해 MBN과 채널A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앱을 이용해 소리를 자막 및 수어로 변환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다양한 동영상 콘텐츠에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한다. 2023년에는 스마트폰용 아바타 수어 시범서비스 및 UHD 기반 재난통보 아바타 수어 시범서비스, 음성-자막-수어 변환 시스템 등을 시범 운영하고, 2024년에는 직접 청각장애인들이 음성-자막 변환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다. 또 개별 방송사마다 흩어져있는 시각 장애인용 방송프로그램을 단일 채널에서 접할 수 있는 ‘화면해설방송통합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한 예산도 내년에 반영했다.
시청자들은 실시간 방송 떠나 OTT 行
실시간 방송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 OTT가 활성화되면서다. 방통위는 이런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예산 지원을 통해 제작된 장애인 방송 VOD가 OTT와 IPTV 등에 원활히 유통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TV 콘텐츠 ‘다시 보기’를 제외한 OTT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지원 계획은 찾아볼 수 없다.
지금까지 국내 OTT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 없이 관련 사업을 진행했던 탓에 오리지널 콘텐츠를 중심으로 장애인 방송을 제공했다. 티빙의 자막 적용 콘텐츠는 에피소드 기준 약 1,500편, 왓챠는 240여 편의 한글 자막 콘텐츠를 지원한다. 웨이브는 청각 장애인을 지원하는 자막 서비스 34개를 제공 중이다.
국내 OTT 업계에서는 장애인 접근성 제고 기술 개발 및 확대를 위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OTT 시장은 철저히 자본에 따라 판가름 나는 경쟁시장이다. 자본을 투입하는 만큼 서비스가 고도화되고 이를 통해 이용자들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다. 사업자의 자율적인 부분을 인정해주되, 장애인 접근성 제고 등에 있어서는 정부 차원의 사업 지원책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청각장애인 위한 자막 확대, 시각장애인 위해서는?
방통위는 장기적으로 「장애인미디어접근기본법」을 구상 중이다. 장애인 방송 품질 점건단을 구성, 정기적으로 품질 평가를 거쳐 그 결과를 토대로 품질 평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해외 사례를 비롯해 국제논의 동향, 기술적 가능성, 장애인 방송 제작 여건 등 다양한 사례를 수집하고 연구해 소외계층의 미디어 접근을 강화하고 체계적인 지원을 위한 장애인 접근 기본법 제정안 마련을 추진 중이다. 현재 정책 연구 중이다”고 밝혔다.
OTT 기업들의 노력과 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 모색에도 불구, 여전히 많은 지원과 기술 개발이 ‘자막’에 한정되어 있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시각장애인 역시 콘텐츠 소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말이다. 올해 8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한시련) 산하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가 실시한 4개 OTT(넷플릭스·웨이브·티빙·왓챠) 모바일 앱 시각장애인 접근성 조사에서 시각장애인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사용 가능한 기능은 넷플릭스의 ‘앱 설정변경’이 유일했다. 티빙과 왓챠 앱은 안드로이드와 iOS 모두에서, 웨이브는 iOS 앱에서 동영상 재생 버튼을 누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최선호 한시련 정책팀장은 “국내 OTT는 동영상 재생 버튼을 설명해주는 대체 텍스트가 제공되지 않아 시각장애인들이 혼자 재생 버튼은 조작할 수 없었으며, 콘텐츠 시청 중에는 일시 정지, 음량 조절 등 버튼이 모두 화면에서 사라져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일하게 재생 버튼에 대한 대체 텍스트가 제공되는 넷플릭스 역시 앞으로 가기, 뒤로 가기 등 기능은 이용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삶에 편안함과 함께 커다란 숙제를 안겼다. 계층과 세대는 물론 장애 유무에 따라 새로운 기술을 흡수하는 정도가 달라지며 불평등이 심화하면서다. 팬데믹으로 가속된 디지털 전환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기업들의 노력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이 단순 예산 확보에서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