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산 달걀 121만 개 수입, 선제적 AI 대응 차원
전 세계적인 고병원성 조류독감 창궐 15일부터 홈플러스 등 식자재 업체에 스페인산 달걀 공급 설 성수기엔 1,500만 개 비축물량 공급 예정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등으로 국내 수급 상황이 악화할 경우를 대비해 시범적으로 수입한 신선란이 10일부터 국내에 순차적으로 도착한다고 밝혔다. 수입 물량은 121만 개로 국내 일일 달걀 생산량(약 4천500만 개)의 2.7% 정도다. 농식품부는 이르면 오는 15일부터 소비자가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홈플러스와 식자재 업체에 수입 달걀을 공급한다.
전 세계가 비상… 한국은 선제적 대응으로 수급 안정세
국내에서는 지난해 10월 17일 이후 고병원성 AI가 61건 확인됐다. 이 가운데 산란계 농장 발생 사례는 21건. 농식품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체 산란계(7,586만 마리)의 3.6%인 272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다만 살처분 농장의 재입식 등을 감안하면 실제 순감량은 180만 마리(2%) 정도라고 농식품부는 추산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이하 중수본) 관계자는 “올해 전 세계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AI가 발생하는 중”이라며 “인근 국가인 일본도 유례없이 일찍 AI가 발생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AI는 겨울 철새가 국내로 유입되는 늦가을에 주로 발생한다. 미국 농무부(USDA) 발표에 따르면 작년 미국이 AI로 살처분한 가금류는 최소 5,054만 마리다. 이는 지난 2015년 역대 최대 기록 5,050만 마리를 넘어선 기록이다. 유럽 지역에서도 사상 최대규모의 AI로 비상이 걸렸다. 유럽질병통제예방센터(ECDPC)에 따르면 올해 유럽에서 가금류 5,000만 마리가 AI로 살처분됐다. 최근 1년간 네덜란드에서는 600만 마리가 AI로 폐사하기도 했다. 특히 작년 1월 영국에서는 사람이 감염되는 드문 사례가 발견됐다. 작년 1월 6일 영국 보건안보청(UKHSA)은 잉글랜드 남서부 지역에서 AI 확진자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AI는 사람과 동물을 모두 감염시킬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많은 수의 감염된 조류와 가깝고 정기적인 접촉을 통해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
인수공통감염병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포스트 코로나19를 대비하는 시점에서 현안 감염병에 대한 공동 대응체계를 점검하고 기관 간 협력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제2의 코로나19가 될 수 있는 신종 인수공통감염병이 발생할 시, 신속한 원인 규명 및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달걀 수급은 안정적이나 이달까지 철새 유입이 계속돼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수입 공급망을 점검하고 향후 본격 수입 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를 통해 스페인에서 신선란 121만 개를 시범적으로 수입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 현재 달걀 특란 30구의 평균 소비자 판매 가격은 이달 9일 기준 6,627원. 정부는 이보다 저렴한 특란 30구당 5천원대 중반에 스페인산 달걀을 공급할 계획이다. 손해를 감수하고 수입 가격보다 싸게 되팔겠다는 것이다.
3% 물량에도… 정부 개입은 시장 교란이라는 협회
산란계 관련 협회들은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다. 사료비, 인건비 등 부자잿값 폭등에도 힘겹게 방역 지침을 지키고 있는 와중에, 정부가 달걀 수급 및 가격 안정세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농식품부는 AI에 대비해 비축했던 달걀 1,500만 개의 유통기한이 다가오자 이 계란들을 시장가격보다 싸게 내놓고 있다. 여기에 스페인산 달걀까지 추가로 공급하는 건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하소연이다. 현재 달걀 가격(특란 30구 기준)은 1년 전보다 소폭 올랐지만, 한 달 전에 비해서는 2% 남짓 하락한 수준이다.
앞서 대한양계협회는 작년 12월 성명서를 통해 대책 없는 달걀 수입을 절대 반대한다며 산란계 산업 안정화를 위한 양질의 정책을 촉구한다는 견해를 발표한 바 있다. 국내 산지 달걀 가격의 4배 이상의 금액으로 수입한다는 것은 예산 낭비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안두영 대한산란계협회 회장은 “국내 달걀 공급이 충분한 데도 수입 달걀을 들여오는 건 농민만 잡는 조처”라며 “달걀을 팔수록 적자인 상황이 되면 결국 농가들이 산란계 사육 마릿수를 줄여 달걀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번에 들여온 스페인산 달걀 121만 개는 국내산 달걀 하루 공급물량의 3% 정도로 적은 편”이라며 “협회가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초기에 산지 달걀 가격을 올려 현재 달걀값이 평년 대비 높은 수준인데, 자기들 입장만 주장하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국내산과 쉽게 구분 가능
수입하는 달걀은 수출국의 위생 검사를 거치고 국내에서도 검역과 서류, 현물·정밀검사 등 위생 검사를 시행해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경우에만 통관된다. 또 식용 달걀 선별 포장업체를 통해 물 세척 및 소독, 난각표시 등을 거친 후 시중에 유통될 예정이다. 스페인산 달걀은 시중에서 주로 유통되는 국내산 달걀과 같은 황색란이다. 국내산 달걀은 껍데기(난각)에 10자리(산란 일자+농장 고유번호+사육환경)로 표시하는 반면, 수입산은 농장 고유번호 없이 5자리(산란 일자+사육환경)로 표기된다. 포장재에도 원산지가 표시돼 수입 달걀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달걀 수급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달걀 수급 안정 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고병원성 AI 확산 등에 따라 스페인뿐 아니라 미국 내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지 않은 주 등으로부터 부족한 신선란 물량 수입을 검토한다. 고병원성 AI가 확산할 경우 내년 2월부터 병아리를 필요한 만큼 수입해 살처분한 산란종계 농가 등에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과거에도 스페인에서 47만 마리의 병아리를 수입해 산란계 농가에 보급했었다. 또 달걀 비축물량 1,500만 개도 설 성수기 동안 집중적으로 방출한다. 김정욱 농식품부 축산정책관은 “농가에서도 고병원성 AI 발생에 따른 수급 불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농장 방역수칙을 철저히 이행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