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세계적으로 긴 육아휴직 기간, “육아휴직 사용권 보장이 먼저”

올해로 36년 차 육아휴직 제도, 실제로 쓰는 부모는 얼마나 되나 육아휴직 사용 편중 현상, 공무원·공공기관·대기업만 유용한 제도? 쓰지도 못하는 육아휴직, 기간만 늘려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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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국회입법조사처는 ‘육아휴직 사용권 보장을 위한 입법과제’라는 제목의 ‘이슈와 논점’ 보고서를 발간했다. 우리나라의 육아휴직 제도는 도입된 지 올해로 36년 차다. 과거에 비해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도 증가했고, 기업의 인식도 많이 개선됐다. 그러나 육아휴직이 모든 근로자의 보편적 권리로 향유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육아휴직 사용의 편중 현상이 관찰되고 있으며, 공무원·공공기관·대기업에 소속되지 않은 근로자에게는 사용조차 용이하지 않은 제도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육아휴직을 사용한 부(父)의 71.0%가 종사자 규모 300명 이상인 기업에 소속되어 있고, 모(母)의 경우에도 62.4%가 대기업 소속이다. 반면 육아휴직 사용 부(父) 중 4명 이하 기업에 소속된 비율은 3.2%, 모(母)의 경우에도 4.9%에 그쳤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육아휴직 신청을 받은 사업주는 육아휴직 사용을 승인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사업주가 명시적으로 의사표시를 하지 않거나 무대응 등에는 근로자의 사용권이 제한될 수 있다. 이에 법률에 육아휴직 자동 개시에 관한 규정을 신설해 근로자의 육아휴직 사용권을 두텁게 보장해야 하는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육아휴직 제도, 어떻게 쓰이고 있나

육아휴직 사용 근로자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0년 72,967명이었던 육아휴직자 수는 2021년 17만 3,631명으로 증가했다. 성별 사용 현황에도 변화가 있다. 2010년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2.7%에 불과했으나, 2021년 24.1%로 상승했다. 그에 비례해 여성의 사용률은 2010년 97.3%에서 2021년 75.9%로 감소했다. 그러나 육아휴직 사용의 성별 편중 현상과 함께 육아휴직을 사용한 근로자 대부분이 종사자 규모 300명 이상의 기업체 소속인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300인 이상의 사업체에서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응답이 95.5%지만, 5~9인의 사업체는 3.8%에 불과했다. 한편, 실제 사용신청 시 근로자가 느끼는 부담 정도를 확인한 결과, ‘부담 없이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사업체’는 65.6%였으나, 16.3%는 “신청을 할 수 있는데,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사용할 수 없는 직장 분위기나 문화 때문에”라는 응답이 49.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는 근로자의 육아휴직 사용권리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려는 근로자는 휴직 개시예정일의 30일 전까지 신청서를 작성해서 사업주에게 제출해야 한다. 한편, 법률은 육아휴직 신청을 받은 사업주는 해당 사업에 계속 근로한 기간이 6개월 미만인 근로자를 제외하고는 육아휴직 사용을 승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주가 신청서를 받고도 승인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부를 하는 것도 아닌 ‘무반응’의 경우, 승인을 기다리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 동부권직장맘지원센터의 2022년도 상담 사례를 보면, 근로자 A씨는 자녀의 질병으로 육아휴직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해, 육아휴직 30일 이전에 신청서를 작성해서 사업주에게 제출했지만, 사업주는 인력 부족을 이유로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에 따르면, 이런 경우 사업주의 명시적인 거부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육아휴직이 자동 개시되지 않는다. 사업주가 근로자의 신청에 대해 반응하지 않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자동 개시할 수 있는 권한이 법적으로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A씨는 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사업주가 승인해주지 않던 기간 동안 불안감에 시달렸다. 이처럼 적절한 때에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는 근로자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해외의 육아휴직 제도에서 배울 점은?

육아휴직 사용권 보장이 우리나라보다 앞선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면, 육아휴직 자동 개시 규정을 명시함으로써 근로자의 육아휴직 사용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육아휴직 규정에 따르면 사업주에게 최소 13주 이상 고용된 근로자는 육아휴직 신청 자격이 있다. 육아휴직을 신청하려는 근로자는 육아휴직 시작을 원하는 날짜에 앞서 최소 2주 전에 사업주에게 서면으로 육아휴직 개시를 고지해야 한다. 이때 사업주의 승인은 별도로 요구되지 않는다. 스웨덴에서는 육아휴직을 사용하려는 근로자는 최소 2개월 이전에 사업주에게 휴직 개시일을 고지해야 한다. 육아휴직 관련 사안에 대해 근로자는 사업주와 상의할 것을 권하고 있으며, 근로자에게 불편을 초래하지 않도록 사업주의 승인 없이 근로자의 요청만으로 휴직이 사용될 수 있음을 규정해 근로자의 자유로운 사용권을 보장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경우 육아휴직을 사용하고자 하는 근로자는 사용일 3개월 전에 사업주에게 서면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한, 법률은 육아휴직 사용신청을 받은 사업주가 근로자의 신청에 대해 서면으로 통지할 의무를 함께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주의 무반응 등으로 인해 원하는 때에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사업주의 눈치를 살피는 일은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남녀고용평등법」은 근로자의 육아휴직 신청을 사업주가 허용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으나, 사업주의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없는 경우에 대해서는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근로 현장에서는 사업주가 허용 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반응하지 않으면서, 근로자의 육아휴직 사용을 막거나, 육아휴직 시기를 변경 또는 연기하는 편법으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 관련 문제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무반응은 육아휴직의 자동 개시를 인정하는 것으로 행정해석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법령으로 명확히 “명시적인 허용의 의사표시가 없는 경우에는 사업주가 근로자의 신청에 따라 육아휴직을 허용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해, 현장에서의 혼란을 줄일 필요가 있다. 또는 뉴질랜드의 사례처럼 근로자로부터 육아휴직 신청을 받은 사업주가 서면으로 답변을 작성해 근로자에게 통보할 의무를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도 있다.

맞벌이 육아휴직 늘려주는 정부, 제도의 실효성은 어디에

한편 정부는 맞돌봄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맞벌이 부부의 육아휴직 기간을 부부 한 명당 기존 1년에서 1년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제도 대상 자녀의 연령 상한을 ‘만 8세’에서 ‘만 12세’로 확대하고, 육아휴직을 근로 시간 단축으로 전환해서 사용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해주는 등 맞벌이 부부에 대한 여러 제도를 실행할 계획이다.

이렇듯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 육아휴직에 대해 각종 추가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를 두고 현장에선 노동 현실에 맞게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직장에서 육아휴직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탓에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부모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애초에 기존의 육아휴직 제도도 제대로 이용을 못 하고 있는데, 육아휴직 기간만 연장해서는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육아휴직 기간은 이미 세계적으로 긴 편이다. 캘리포니아대 세계정책분석연구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세계 각국이 법으로 보장하는 육아휴직 기간은 여성, 남성 각각 평균 18주와 16주다. 한국 여성은 세계 평균의 1.8배, 남성은 3.3배 긴 휴직 기간을 이미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2020년 고용노동부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41.4%가 육아휴직 제도 자체는 ‘잘 알고 있다’고 답변했지만, 제도의 활용 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절반 이상인 52.7%가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거나 전혀 활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육아휴직을 실제로 쓸 수 있게 하는 것에 제도의 방향을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직장 내 분위기상, 육아휴직을 못 쓰게 압박하는 등 기업 갑질 근절을 위해 처벌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육아휴직을 이유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준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육아휴직을 이유로 불이익을 줬다고 증명할 방법이 없어 처벌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근로자당 1년의 육아휴직을 허용하고 있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긴 육아휴직 기간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자의 34.5%가 육아휴직 신청에 부담을 느끼거나, 신청하기 어려운 여건에 놓여 있다고 응답한 것은 육아휴직 사용이 근로자의 권리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의 육아휴직 제도가 공공기관, 공무원, 또는 대기업 근로자에게만 유용한 제도로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근로자의 권리를 폭넓게 보장하는 방안이 무엇보다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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