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장 4.0] 정부 ‘미래의료 기술’ 분야 개척, 업계 반응은 “글쎄” ②
희귀·난치 등 질환 극복 위해 첨단재생 의료 치료제 개발 추진 감염병 관련해서도 신종 감염병 및 예방 대응체계 구축 위한 전략 제시 의료계, ‘부족한 인력·인프라의 부재’ 등 국내 의료환경 현실 밝히며 정책 현실성 지적
정부는 지난 20일 미래기술 확보 및 디지털 전환, 전략산업 초격차 확대 등 초일류국가 도약을 위한 ‘신성장 4.0 전략’을 내놨다. 이번 전략의 15대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미래의료 핵심기술’과 관련해 디지털 치료·재활기기 제품화와 감염병 대응 체계 및 바이오 인프라 구축, 보건의료 데이터 활성화, 전문 인력 양성 등의 계획이 담겼다.
하지만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선 정부 추진 정책의 현실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감염병 백신 개발과 첨단재생의료에 대한 핵심 연구 인력 등이 부재한 한국 의료계의 현실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2030년까지 첨단재생 의료 치료제 3건 이상 개발 목표, 업계 반응은?
첨단재생의료는 살아있는 세포 등을 사람에게 이식해 손상된 인체조직을 대체하거나 재생함으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차세대 의료기술이다. 특히 현재 치료법이 없는 희귀·난치질환자 등에 새로운 치료대안이 될 수 있고, 성공할 경우 한 번의 치료로도 효과가 지속되는 등 다양한 확장 가능성을 통해 미래 의료 핵심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정부는 이번 ‘신성장 4.0 전략’의 15대 프로젝트 중 첨단재생 의료 관련 분야와 관련해 희귀·난치 등 질환 치료제 개발을 주요 과제로 선정했다. 구체적으로 2030년까지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등 첨단재생 의료 치료제를 3건 이상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의료 전문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국내 의료 환경에서 해당 개발을 주도할 인력 및 인프라의 부재와 구태의연한 제도 등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게 이유다. 제약 및 의료 업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희귀질환 연구는 일부 관심 있는 학회의 의사들을 통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나아가 아직 식약처에 등재되지 않은 신약이나 치료제 등의 약제의 경우 우리나라 환자들이 치료를 받으려면 족히 10년이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의 업계의 중론이다. 현재 신약 임상 연구가 의료 선진국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그러한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국가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센터 소아내분비대사과 이범희 교수는 “문제는 설령 제약사로부터 승낙을 받더라도 국내 허가 미승인 의약품을 투약하기 위한 식약처의 임상 연구 관련 승인 절차가 굉장히 복잡하고 행정적으로 처리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제도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감염병 백신 개발?
정부는 감염병 대응 체계 구축을 위한 전략도 제시했다. K-바이오백신 펀드 5,000억원을 조성해 핵심 기술 개발에 지원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때 감염병 대응 핵심기술은 RNA나 mRNA 등의 핵산 백신에 집중하기로 했다. 핵산 백신은 인공적으로 만든 mRNA를 이용해 면역계통의 후천 면역을 강화하는 백신의 일종으로, 최근 코로나 백신 개발에 사용되며 신종감염병에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응 가능한 기술로 잘 알려졌다.
이렇듯 신종감염병 대응에 대한 취지는 좋으나 정책의 추진 시기가 다소 늦은 점은 아쉬움으로 평가된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의료 선진국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mRNA 백신 개발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코로나 백신 개발로 mRNA가 백신 업계의 화두가 되기 이전인 2019년, 이미 국내에서도 핵산 백신에 대한 중요성이 회자된 바 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해외에서 성공 사례가 나오지 않으면 우선적으로 개발에 뛰어들지 않는 매우 소극적인 정책 입안자의 태도에 아쉬움은 더욱 크게 남는다.
원대한 목표들, 정작 한국 의료계 현실은?
그간 대학병원이나 의학교수 등이 지적한 한국 의료계 현실에 따르면 미래의료 기술 분야 혁신을 위한 정부의 원대한 목표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이화의대 권복규 교수는 지난해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임상 영역과 달리 교육과 연구는 뒷전이 된 국내 의료계의 현실을 바로잡아야 할 때가 됐다”는 지적과 함께 “환자 진료는 물론이고, 학술 의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같은 자리에서 발언한 이화의대 권복규 교수도 “이상적인 학술 의학은 교육·연구가 중심이 되고 진료가 이를 지원하는 형식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진료 비중이 가장 크다”며 “그나마 승진에 필요하니 교수들이 연구에 대한 압박은 느끼지만 결과적으로 교육이 가장 희생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의료 연구와 개발 분야에 정부나 공적 기금 등의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두 교수의 제언이다.
학계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국내 의료계의 교육과 연구는 후진국 수준이다. 상황이 이런 마당에 정부가 무작정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연구 역량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장에 아까운 세금만 들이붓는 꼴이다. 국내 한 의료업계 종사자는 “무턱대고 목표부터 제시하는 정책적 시도보다는 해외에서 관련 개발의 중심이 되는 의료 인력을 영입해 관련 분야에 집중한 개발에 나서는 방식의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이를 위해 정부는 그러한 해외 연구 인력에 대한 영입과 지원에 대한 역량이 있는지부터 고민하며 단계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