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통신업계 만연한 지배적 행태에 전면 개선 요구한 정부

고금리로 서민 죽어 나가는데 역대급 실적 기록? 높아지는 은행권 과점 문제 금융위, 은행권 전반 혁신과 경쟁력 향상 위해 대대로 뜯어고칠 것 대형은행·통신기업과의 한판 전쟁, 정부의 시도는 공정거래 공교히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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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민간전문가·금융업권 협회·연구기관과 함께 김소영 부위원장 주재로 제1차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TF 회의 개최했다/사진=금융위원회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과점 문제와 관행 및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TF는 5대 은행 중심의 과점 문제와 함께 금융회사의 성과급 잔치 등의 현안을 모두 다룰 것으로 예상되며, 향후 은행의 영업·경영 개편 방향과 절차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동안 제기된 바 있던 스몰라이센스·챌린저 뱅크 도입 등 은행업 경쟁 촉진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금융위 TF 첫 회의 은행 관련 업계 모두 참석

지난 22일 금융위원회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 첫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는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제13차 비상경제민생안전회의의 후속 조치로, 은행 산업의 과점 폐해가 커 금융당국 수장들에게 실질적인 경쟁 시스템 강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서 기인했다. 이례적으로 이번 회의에는 대형 은행연합회 관계자뿐만 아니라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금융투자협회 등 다른 업계의 협회 관계자들도 모두 회의에 참석해 성과 보수 체계 등 공통 사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다. 카드·캐피탈 등 여전업계, 보험업계도 대출 상품을 취급하는 ‘경쟁 대상’인 만큼 전 업무 권역이 참여해야 한다며 참석인원을 확대한 것이다.

회의에서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최근 각계각층에서 은행권에 대한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고금리 등으로 어려운 경제 여건이 지속되고 대출이자 부담 등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은행권은 막대한 이자수익으로 역대 최고의 성과를 거두고 고액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따가운 질책을 받고 있다”고 질타했다. 또 은행이 이자수익에만 치중해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 금리차)를 기반으로 과도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며 6개 검토 과제를 제시했다. 과제로는 ▲은행권 경쟁 촉진 및 구조개선 ▲성과급·퇴직금 등 보수체계 ▲손실 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고정금리 비중 확대 등 금리체계 개선 ▲사회공헌 활성화 등이 있다.

김 부위원장은 해당 과제들에 대해 “은행권 경쟁 촉진을 위해 은행권과 비은행권 간 경쟁, 스몰라이센스·챌린저 뱅크 등 은행권 진입 정책, 금융과 IT 간 영업장벽을 허물어 실질적인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 등 다양한 경쟁 촉진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며 “가계부채 질적 구조개선과 예대금리차 공시제도 개편 등 금리체계 개선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보수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경영진 보수에 대한 주주 투표권(Say-On-Pay) 도입 여부, 금융사 수익 변동 시 임직원 성과급 환수·삭감(Claw-back) 강화 등을 살펴보고 배당·자사주 매입 등 주주 환원 정책도 점검하겠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손실 흡수능력 제고 차원에서 스트레스 완충 자본을 도입하고 경기대응완충자본 적립 및 금융회사의 비금융업 영위 허용, 사회공헌활동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한 실적 공시 등의 방안도 고려할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향후 TF 및 실무작업반 운영을 통해 검토과제별 현황 파악 및 해외사례 연구 등 개선작업을 거쳐 6월 말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채용 확대·금리인하·사회공헌 내놓은 은행권, “이제 무얼 더 내놓아야 하나?”

이미 연초부터 지적되던 은행권 돈 잔치 논란과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은 공공재”라는 언급에 국내 은행들은 금융소비자가 직접적으로 혜택을 체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대출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금리 인하를 방안으로 내세웠다. KB국민은행은 오는 28일부터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 대출 금리를 최대 0.55%포인트 낮추기로 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도 21일부터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대출의 금리를 최대 0.70%포인트 인하해 카카오뱅크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대출 상품의 최저금리는 모두 4%대(연 4.286~4.547%)로 내려왔다. 우리은행은 21일부터 우대금리를 늘리는 방식으로 사실상 실질 금리를 낮췄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채용 규모 확대도 있다. 은행권은 지난 20일 올해 상반기 전년 대비 48% 증가한 2,288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금리 인상으로 사상 최대 이익을 달성했지만, 청년층 신규 채용엔 인색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은행권의 신규 채용 규모는 2018년 무렵까지만 해도 연간 3,000명 수준에 육박했으나, 2020~2021년에는 1,000여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외에도 사회공헌기금을 마련해 취약계층에 지원하겠다는 방안도 나왔다. 지난 19일 하나은행이 노사 공동기금을 조성해 금융 취약계층에 난방비 등 에너지 생활비 3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나은행은 서민 금융상품 이용자, 고금리 취약 차주 등 금융 취약계층 고객 15만 명을 선정해 현금으로 에너지 생활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이 계속 불만을 표하자 은행권은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추가 대책은 내놓겠지만, 지금까지 해 온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아 속상하다”면서 “내부에선 이젠 무엇을 더 내놓아야 하나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권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본질과 어긋나 있다는 측면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TF 회의 내용 중 임원 보수지급계획 주주 설명 의무화나 고액 연봉자에 대한 공시 강화도 전 금융권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데 과한 면이 있다고 본다”고 토로했다.

금융위 발표에 환호한 국내 핀테크 기업, 예상보다 효과 없을 거란 지적도

한편 이번 금융위 발표에 환호를 보내는 기업도 있다. 금융위에서 “핀테크 산업 지원을 위한 금융권의 노력과 함께 정부 또한 핀테크 금융혁신을 지속 추진할 예정”이라며 “샌드박스를 통한 규제 특례가 근본적인 규제 완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스몰라이센스와 챌린저 뱅크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윤 대통령이 지적한 대형은행 과점 현상을 해소하고 경쟁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스몰라이센스는 은행업, 보험업, 증권업 등 인허가 조건이 까다로운 금융 분야의 인허가 단위를 업무 단위로 쪼개어 인가를 하는 개념이다. 새로운 형태의 시장 참가자를 대상으로 제한된 업무 범위 내에서 최소 자본금 규제 등 진입장벽을 낮추고 금융 소비자의 편의성 및 혜택을 확대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챌린저 뱅크는 2013년 영국이 대형은행이 과점하고 있는 소매 은행 부문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한 소규모 특화 은행으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외화 환전·중소기업 대출 등에 특화한 은행들이 운영되고 있다. 두 제도 모두 규제 완화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핀테크나 비금융사 등 전통 금융사가 아닌 곳에서 금융업을 시작할 때 필수적이다. 금융업 자체가 범위가 넓고, 자본금(은행 설립 최소 1,000억원), 조직 규모 등 일정 요건을 반드시 갖춰야 하는 만큼 비금융사가 진입하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핀테크 산업은 역동성 회복을 위해 지정업체 투명성 부족 등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에 내재한 한계, 기존 대형 금융권의 카르텔 해소를 위한 대응책으로 정부의 스몰라이센스 도입을 요구해왔다. 즉 이번 금융당국의 발표는 제도적 기반을 통해 금융의 진입장벽이 낮춰 핀테크, 빅테크 등 비금융사의 금융권 진입을 더욱 용이하게 하고, 투자의 활성화를 통해 핀테크 사업 육성에 적극적 협력을 제안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스몰라이센스나 챌린저 뱅크를 허용해도 은행권 과점 체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들어선 지 수년이 흘렀으나 4대 금융지주 실적이 지난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은행권 과점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토스뱅크도 2021년 설립 초기에는 금융소외 계층을 위한 ‘챌린저 뱅크’를 표방한 바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역시 “챌린저 뱅크는 초대형은행 속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새마을금고, 수협, 저축은행 등이 이미 이를 메우고 있다”며 “(이 같은 경쟁 체제가) 제대로 안 되고 있으면 왜 제대로 안 되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전했다.

자유시장경제체제의 핵심은 공정성, 독과점에 전쟁 선포한 정부

정부는 은행권 독과점을 넘어 통신 3사의 시장 지배적 구조 해소를 위해서도 칼을 빼 들었다. 정부에서 통신 3사가 지배하고 있는 통신 시장에 대해 “전체 시장 점유율이 50% 이상은 아니지만 개별 사업별로 고려했을 때 50%가 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며 독점 혹은 과점적 행태 해소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독과점은 소위 공정거래법으로 불리는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사안이다. 공정거래법은 제2장에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 금지를 명시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독과점적 시장 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는 한 곳의 점유율이 50% 이상, 셋 이하의 사업자 점유율을 75%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관련 법에 따라 공정위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지위를 남용하면 매출액의 6%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정부는 통신 과점 해소를 위해 아예 제4 이동통신으로 표현되는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위해 진입장벽을 낮추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KT와 LG유플러스로부터 회수한 28기가헤르츠(㎓) 5세대(5G) 통신 주파수 대역의 800메가헤르츠(㎒)를 신규 사업자에게 헐값에 공급하기로 했다. 제4 이동통신사 출범을 위한 특단의 지원책이지만 현실적으로 제4 이동통신의 출범은 어렵다. 정부는 일종의 핫스팟 형태로 28㎓ 기지국을 세우고 나머지 지역에선 통신 3사의 망을 빌려 쓸 경우 3,000억원 정도면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분석했지만, 기반 시설 구축 이외에도 기존 가입자를 새로 유치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마케팅 비용이 꾸준히 발생한다는 점에서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조차 이동통신 시장 진입을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이기 때문이다.

은행, 통신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압박에 숨죽이면서도 “이익 개선을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한 부분까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반시장적 정책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전문가는 정부의 이번 발표가 현실화 될 경우 이미 진행 중인 핀테크 스타트업들의 사업영역이 더 넓어질 것이라며 긍정적인 분석을 내놨다. 실제로 네이버 파이낸셜이 최근 3년간 은행 없이 은행 사업만을 개시하기 위해 기다리는 상황을 감안해볼 때 이번에야말로 은행권의 판도가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정거래 및 공정경쟁을 위한 이번 노력이 시장의 자정능력을 향상할지, 하락시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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