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안 본회의 직회부에 의사·보건의료인들 뿔났다

간호계 숙원사업 간호법 제정안, 민주당 강행처리에 본회의 직회부 보건의료인들, 전문성 및 업무영역 침해 문제로 간호법 일제히 반대 간호사협회 “간호법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입법 체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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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재적의원 24명 중 찬성 16표 반대 7표 무효 1표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건너뛰고 본회의에 바로 9일 회부됐다.

제정되는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이 정하는 간호사 관련 조항을 따로 떼어내 법제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사는 ‘의사의 지도 하에 진료 보조’하도록 돼 있는데, 제정되는 간호법에서는 ‘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한다고 정했다. 간호사 업무 범위를 확대하고 처우와 역할을 강화하고, 재원을 따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간호계 숙원사업 간호법 제정, 민주당 강행 처리로 본회의 직회부

이러한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해 5월 간호사 출신인 최연숙 의원을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한 가운데 복지위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이후 의사협회의 반대 등 직역 간 갈등을 이유로 국민의힘이 법안 처리에 난색을 보이며 법사위에서 심사가 진척되지 않다가, 더불어민주당의 강행 처리로 법사위를 뛰어넘은 것이다.

간호법 제정은 간호계가 오래전부터 추진해 왔으나 번번히 좌절됐던 사안이다. 2005년에는 발의됐다 폐기됐고 2019년에는 입법 시도 자체가 좌초된 바 있다. 간호사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법 등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는 간호사의 역할과 권한을 하나의 법으로 모아야 하며 ▲지난 1951년 구성된 의료법이 요양·돌봄 등으로 확대된 이들의 업무 영역을 담아내기엔 너무 구시대적이기에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전통적 근무처인 의료기관뿐 아니라 장기요양기관, 노인복지시설, 장애인시설 등으로 넓어진 간호사들의 업무 스펙트럼을 담아내기엔 부족해서 이를 간호법 제정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실제로 현행 간호법은 간호사의 간호 범위를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제한하고 있는데, 간호사들은 이 법안이 의료기관 내에서만 의료행위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근무처가 확대되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기관에서 환자를 간호하게 되면 ‘불법’이 된다는 것이다. 숙련된 간호사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지적된다. 즉 안정적인 간호서비스 제공과 제대로 된 인력 수급을 위해서라도 독자적인 법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 간호계의 일관된 입장이다.

간호사 제외 보건의료인들, 전문성과 업무영역 침해한다며 간호법 전부 반대

문제는 간호사를 제외한 타 직역 보건의료인들이 간호법을 전부 반대한다는 점에 있다.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응급구조사 등 타 보건의료인들은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간호법에 전부 반대하고 있다.

간호사와 가장 비슷한 업무를 하는 간호조무사들의 경우, 간호법 자체가 자신들의 업무범위를 축소시키고 간호사의 보조인력으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간호사의 단독 간호업무 가능 기관을 의료기관으로 한정하지 않아 방문간호센터, 케어코디네이터센터 등을 개설해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행법상 장기요양기관의 경우 촉탁의 지도 하에 간호조무사 단독으로 근무할 수 있지만 간호법은 간호사 없이 간호조무사만 근무할 수 없게 돼 장기요양기관에 근무하려는 간호사가 매우 적은 현실에서 각 기관은 간호사 충원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간호조무사가 단독으로 업무를 하는 간호법 위반 사태가 속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등의 의료기사들도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현재 일부 병원에서는 방사선사나 임상병리사로서의 훈련을 받지 않아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간호사들이 의료기사 면허가 있어야 하는 행위들을 명확히 침범하는 상황인데, 간호법이 제정되면 이러한 불법행위가 더 광범위하게 행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응급구조사들 역시 고도의 숙련을 요구하는 ‘기관내삽관’ 등의 행위를 간호사들이 전문응급처치에 대한 교육도 없이 현장에서 마구잡이로 수행하고 있는데, 간호법 제정 시 간호사들이 응급구조사의 업무영역을 본격 침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 중이다.

의사협회 “간호법 본회의 통과 저지에 총력 쏟아붓겠다”

의사협회 역시 9일 간호법에 반대하는 보도자료를 통해 “의료현장에서 보건의료인 간 업무 범위 상충에 따른 반목과 갈등을 부를 수 있는 간호법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하면서 국회에 해당 법안 폐기를 요구해 왔다”면서 “그런데도 야당이 특정 직역 집단의 이익만을 반영한 요구를 수용하고 강행한 것은 대한민국 국회의 부끄러운 역사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의협은 “지금이라도 국회는 간호법안을 즉시 철회한 후 국민건강을 보호하고 보건의료인이 공생할 수 있는 보건의료인 상생 법안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면서 “앞으로 법안을 막기 위해 끝까지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간호사협회는 의협과 여타 보건의료인들의 입장에 대해 반박문을 내놓았다. 간협은 “간호법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국 중 33개국에서 시행할 정도로 제정 필요성과 효과성이 입증된 보편적 입법체계”라며 “만일 간호법이 보건의료인원팀을 무너뜨린다면 이미 시행 중인 대다수 국가의 보건의료체계는 붕괴돼야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간협은 “간호법은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간호정책을 통해 국민 누구나 지역에 상관없이 질 높은 간호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법으로, 오히려 대한민국 보건의료를 바로 세우는 법안”이라며 “간호단독법이 불법의료로 국민건강을 위협한다는 광고는 국민에게 혼란만을 주는 완벽한 가짜뉴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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