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지원체계, 민간주도 혁신성장 촉진 방향으로 재편, ‘초기 창업기업’ 여건은 악화될 수도

중기부, 중소기업 지원체계 개편 방향 제시, ‘팁스’ 등 VC가 발굴한 기업들 우선 지원 ‘초기 창업기업 돕겠다’던 정부의 지난 계획과는 사뭇 다른 지원 방향 초기 스타트업 천국으로 불리는 파리, 정부가 투자회수 집중하는 한국과는 달라

160X600_GIAI_AIDSNote
사진=중기부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중소기업 정책을 ‘민간주도 혁신성장’의 관점에서 재설계한다. 초기 스타트업 등 태동기에 있는 기업보단 팁스(TIPS) 프로그램 또는 투자형 R&D와 같이 벤처캐피털(VC)등이 참여해 발굴한 기업을 우선으로 지원할 계획으로, 벤처시장 생태계를 민간이 주도하도록 이끌겠다던 중기부의 계획이 지속적으로 이행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소기업 지원체계 재편, 투자형 R&D 벤치마킹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30일 중소기업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중소기업 지원체계 개편 방향’을 발표했다. 이번에 재편된 5대 정책 방향은 ‘민간이 끌고 정부가 밀어주는 혁신성장 지향 중소벤처기업 지원체계 확립’이라는 목표 아래 설정됐다.

우선 중기부는 민간과 함께 잠재적인 혁신기업을 발굴하기 위해 팁스, 투자형 R&D 등을 벤치마킹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지원할 유망기업을 결정할 때 민간 추천이나 선투자 연계 시장의 선별역량을 최대한 활용하고, 선정 기업의 혁신성·시장성을 평가할 때도 학계나 연구계 중심의 평가위원들을 VC나 MD 등 시장 참여자 위주로 구성할 방침이다.

또 중기부는 한정된 정책자원을 선택과 집중 원칙에 따라 집행하기로 했다. 특히 ‘초격차 스타트업 1,000개 사’ 등 우수혁신기업에 정책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세심한 관리를 위해 지원기업에 대한 ‘성장 마일스톤’ 관리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기업은 제시한 성장계획과 단계별 목표에 대해 달성 여부를 지속 점검하고 이와 병행해 정책금융 등 분야별 지원사업 졸업제 관리도 지속해야 한다.

아울러 최대한 민간과 협력하고, 민간을 활용한 공공서비스 제공 확대를 통해 정책품질 개선도 도모한다. 교육·컨설팅·마케팅 등 공공이 하던 지원 중 민간(영리) 사업자의 서비스를 활용 가능한 분야는 최대한 민간과 협력하되, 글로벌 기업 등 시장 선도기업도 서비스 공급자로 참여하도록 해 정책지원 품질을 극대화하겠다는 취지다. 이렇게 민간을 활용한 공공서비스가 확대되면 현장의 수요와 성과에 따라 지원사업을 재편할 계획이다.

초기 창업기업 돕겠다더니, 내실·혁신성보단 외형 우선시하는 정책

정책자금의 관리와 감독을 강화하고 기업 선별을 통해 자금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이번 방안의 주요 내용이다. 다만 이에 따라 VC 등 업계로부터 투자받지 못한 초기 창업기업들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중기부가 지난해 제시한 정책 방향성과 다르지 않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중기부는 2023년 예산안을 발표할 당시, 예산안 편성의 중심이 된 3대 주요사항 중 하나인 ‘벤처‧초기 창업기업(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돕고, 이들 기업의 스케일업과 혁신성장’에 정책을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중기부는 초기 스타트업을 위해선 글로벌 기업 협업 프로그램 확대, 해외진출 지원, 창업중심대학 지정 등과 같은 세부적인 정책 내용까지 제시했다.

이처럼 사뭇 달라진 정책 방향에 벤처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산에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 스타트업을 시작한 회사 대표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이제는 더더욱 한국에서 스타트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면서 “기존의 사업 정체성이 변형될 우려가 있어 VC로부터 투자를 꺼리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들은 초기 사업 확장을 위해 정부의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마저 이들에 대한 지원에 소극적이면 향후 이들 기업의 존속 여부가 매우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벤처업계 관계자도 “초기 창업기업이 인프라 교육 자금 등의 지원을 받기 위해 정부과제를 신청하면 정부 심사기관은 사업의 경쟁력이나 기술의 혁신성보단 매출, 직원 수, 학력 등 실적을 위한 지표에 관심을 두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면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양적 성장은 이루어 냈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 생태계가 자생력을 가지고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선 질적 성장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 평가했다.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과 VC 및 규제당국이 모인 프랑스 파리의 Station F/사진=스타시옹 F 홈페이지

투자금 회수 집중하는 한국과는 다른 해외 스타트업 생태계

지난해부터 이어온 고금리 등 글로벌 대내외적 경제여건의 악화로 벤처투자 시장의 혹한기가 찾아왔다. 같은 기간 ‘역대급’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받은 해외 벤처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창업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 나라가 있다. 바로 프랑스다.

프랑스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빠른 스타트업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2019년 기준 프랑스 창업기업 수는 81만 개를 넘었고, 35세 미만의 청년 창업 비율이 무려 57%에 달한다. 약 1,000개가 넘는 스타트업과 대기업, VC, 학계, 규제당국 등이 한 공간에 모여 생활하는 스타트업 생활권 ‘스타시옹 F’는 이제 프랑스 파리를 넘어 유럽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육성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프랑스가 국가 차원의 대전환을 시도한 결과다. 현재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방식으로 스타트업을 육성해온 프랑스 정부는 15년 전부터 정권의 색깔과 관계없이 꾸준히 스타트업을 지원해왔다. 특히 기업의 빠른 성장을 촉진해 IPO나 매각 등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엑시트(Exit)에 초점을 둔 미국과 우리 벤처투자 시장의 형태와는 대조적으로, 특정 기업의 성장이 전체 스타트업 생태계에 환원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국내 벤처업계에선 ‘다시는 한국서 창업 안 한다’는 하소연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실적을 통해 시장에서 인정받은 기업에 한해 지원금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비용의 회수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은 시장의 퇴보를 가속할 뿐이다. 그보다는 앞선 선진 사례가 증명하듯, 일부 기업의 성장과 성공이 생태계 전반에 이바지하는 선순환을 만드는 인프라 구축에 아낌없이 비용을 지원하는 전략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중기부 등 관련 부처의 관점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