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걸린 ‘우주항공청’ 설립, 연봉 상한 없애는 등 유연성·인력 확보에 집중
과기정통부 ‘우주항공청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입법 예고, 연내 개청 예정 인력·유연성 확보 위해 채용 권한 이관, 연봉 상한 삭제 등 파격적인 내용 담았다 야당 등 일각에서 특별법 제정안 반대하는 상황, 내달 국회 충돌 있을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우주항공청 설립의 근거가 되는 ‘우주항공청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 제정안을 2일부터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상반기 중 국회 제출 및 의결 절차를 거쳐 연내에 우주항공청을 개청할 계획이다.
이번 특별법에는 우주항공 분야의 정책과 연구개발·산업육성 등을 총괄하는 중앙행정기관으로 우주항공청을 설치하고, 전문적이고 유연한 조직으로 운영하기 위한 원칙과 기능·특례 등이 담겼다. 우주항공청은 과연 정부가 제시한 청사진대로 연내에 무사 설립될 수 있을까.
우주항공청 설립 청사진 제시
정부는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을 국무총리에서 대통령으로 격상해 위상과 기능을 강화할 예정이다. 또한 우주항공 정책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해 과기정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부처가 개별적으로 수행하던 우주항공 관련 기술 개발, 산업 육성 지원, 인재 양성, 우주 위험 대비 등의 기능을 우주항공청에 이관한다. 이에 우주항공청은 과기정통부 장관 소속이지만, 전문성을 갖춰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우주항공청장에게도 다수의 권한이 이관된다. 우선 기존 과기정통부 장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소관하던 우주항공 관련 법률인 우주개발 진흥법, 항공우주산업촉진법, 천문법 등을 우주항공청장이 담당하게 된다. 또한 우주항공청장을 실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해 우주항공청이 우주경제 시대를 여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탄력적인 조직 운영을 위한 특례도 마련됐다. 우주항공청은 기술 및 산업 현황의 변화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 ‘과’ 단위의 프로젝트성 조직을 훈령에 따라 신속하고 유연하게 구성·해체할 수 있다. 조직의 설치에 소요되는 기간은 기존 3개월 이상에서 1주일 이하까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연구개발 목표나 방법을 변경해야 하는 경우 기획재정부 장관과 사전에 협의한 바에 따라 예산의 자체 전용해 쓸 수 있도록 재정 자율성도 부여했다. 우주항공청이 소관 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우주경제 시대를 견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밖에도 우주항공 기술 개발 및 산업 진흥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기금의 설치 근거도 마련됐다. 단, 기금 설치는 우주항공 산업의 발전에 따른 기금 수입원 마련 등을 위해 2년의 유예 기간을 두고 추진할 예정이다.
‘한국판 NASA’ 위한 인력 채용 방안
정부는 우주항공청으로 국내외 최고의 전문가가 활발히 유입될 수 있도록 다양한 혜택을 특례로 담았다. 먼저 국내외 전문가의 채용 권한을 우주항공청장에게 위임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연구개발 경력자 및 관련 전공자 등 민간의 인재를 경쟁 또는 비경쟁으로 신속하게 채용할 수 있도록 하고, 계약에 따라 임용 및 면직함으로써 유연하게 인력을 운영하겠다는 구상이다.
한 부처 전문임기제 공무원 수가 전체 인원의 20%를 넘지 못하게 돼 있는 정부조직법의 임기제 공무원 임용 제한 범위도 적용하지 않는다. 1급 이상 임기제 공무원의 경우에는 주식백지신탁에 대한 예외를 허용하고 외국인과 복수국적자도 임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기존의 장벽을 최대한 허물어 한국의 우주 기술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인재에 대한 적정한 보상을 위해 현행 공무원 보수 수준을 초과해 급여를 책정할 수 있도록 하고, 기술적 성과의 이전으로 기술료가 발생하는 경우 이를 연구자에게 보상금으로 지급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우수 인재 유치의 걸림돌인 연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파격적인 시도다. 이 같은 계획대로 채용이 진행될 경우 연봉이 10억원 안팎에 달하는 ‘스타 과학자’가 정부 부처에서 근무하는 사례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우수한 민간 전문가의 유입 및 민간 복귀를 위해 근무 형태, 퇴직 후 취업에도 유연성을 부여할 예정이다. 필요시 외부 기관으로의 파견 및 겸직을 일부 허용하며, 민간 전문가의 업무 취급 심사도 우주항공청장 담당하에 두도록 했다. 민간의 전문성 활용을 위해 재취업 제한도 삭제했다. 우주항공청 퇴직 이후 인사처의 공직자윤리위원회를 거치는 대신, 청장이 자체 기준에 따라 유관 분야 취업을 승인하는 방식이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특별법을 통해 우주항공청에 최고의 인재가 유입되고 이들이 전문성을 주도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혁신적인 공무원 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과기정통부는 오는 17일까지 진행되는 입법예고 기간 동안 제출받은 의견을 반영해 법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상충하는 이해관계, 일각에서는 ‘밥그릇 싸움’
우주항공청 개청이 마냥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우주항공청 설립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부딪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은 성명을 내고 과기정통부 산하에 우주항공청이 설립될 경우 다른 부처의 목소리가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우주 산업 육성과 우주력 건설을 위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국방부가 우주 전담 부서의 건설에 함께 참여해야 하며, 각 부서의 자원과 인력을 통합해 범부처적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우주 업무를 전담해 온 항공우주연구원 실무진들 역시 정부의 특별법 제정안에 반대 의견을 드러냈다. 대통령 산하 범부처 차원의 우주 전략본부가 필요한 상황에서, 과기부 산하 외청인 우주항공청은 국방부와 산업부, 국정원 등을 아우르는 ‘우주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사실상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과 유사한 의견을 내놓은 셈이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과방위 간사·대전 유성 갑)은 미 항공우주국인 나사(NASA)를 표방하는 것이 후발주자인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부처가 담당하는 업무는 미국의 나사와 유사한데 반해 형식은 과기부의 외청 수준에 머무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우주항공청 대신 장관급 직속 기관으로 우주 전략본부를 신설하는 안이 더 적합하다는 내용을 담은 우주개발 진흥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120대 국정과제에 항공우주청 경남 사천 설립이 명시된 만큼, 경남 지역에서는 “대전·충남 지역 국회의원들이 우주청을 본부급으로 격하시키려 한다”는 반발이 제기됐다. 이해관계 상충으로 인해 우주항공청 설립 관련 논의가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정부의 우주항공청 특별법과 민주당의 우주개발 진흥법 개정안이 다음 달 국회에서 충돌하고 개청 계획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