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의 ‘건설 현장 불법타파’ 3월부터 월례비 받으면 자격정지
3월부터 월례비 받을 경우 단계적 자격정지한다 월례비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 주장에 국토부 “계약 없이는 인정 안 돼” 척박한 노동환경, 타워크레인 기사 기본급여 너무 적은 것은 문제
지난 2일 국토교통부는 이달부터 타워크레인 등 건설기계 조종사의 불법·부당행위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21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건설 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의 일환으로 보인다. 건설업체 대부분은 국토부 발표에 환영의 목소리를 보냈으나 일각에서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집단적 반발로 인한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더불어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실제로 척박한 환경에서 장시간 식사, 용변 등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하는 만큼, 월례비가 정당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월례비 지급받는 타워크레인 기사, 정부 “완전 타파할 것” 초강수 제시
현행 ‘국가기술자격법’은 타워크레인 등 건설기계 운전 자격 취득자가 성실히 업무를 하지 않거나 품위를 손상시켜 공익을 해치거나 타인에 손해를 입힌 경우 국토부가 자격 취소 또는 일정 기간 자격 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월례비 명목으로 추가금을 주는 일은 이미 건설 현장의 관례처럼 돼 있다.
전남 여수의 한 아파트 현장에서 철근콘크리트 공정을 맡은 A업체 대표는 2021년 8월부터 2022년 8월까지 약 13개월간 타워크레인 조종사에 월례비로 2억1,700만원을 지급했다. 한 달 평균 1700만원에 이른다. 월례비를 주지 않으면 기사들의 태업으로 인해 공사 기간이 늘어나 더 큰 손해를 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지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산의 한 공사 현장 업체 역시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급여와 월례비, ‘추가작업비(OT 비용)’ 등을 합해 매달 1,000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이 현장의 타워크레인 작업자는 본인 명의 통장으로 받으면 소득세가 늘어날 것을 염려해 가족이나 친지를 ‘유령 근로자’로 등록한 뒤 우회해서 입금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최근 2~3년간 월례비를 받아온 전국의 타워크레인 기사는 438명가량이다. 이들이 수령한 총액은 총 243억원으로 1인 평균 5,560만원이며 상위 20%는 9,470만원을 받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증빙자료가 있는 신고 건수만 취합한 액수이기 때문에 실제 월례비 지급 액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를 강력히 대응하기 위해 지난 21일 국토교통부·법무부·고용노동부·경찰청 등 관계부처에서 ‘건설 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을 발표하고 부당한 월례비를 요구하는 타워크레인 기사는 면허 정지·취소 등 조치를 할 것이며, 노조 전임비와 채용 강요 등 행위에 대해서는 형법상 강요·협박·공갈죄를 적용해 처벌할 계획을 전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 2일 국토부는 자격정지 대상이 되는 불법·부당행위 유형을 ▲월례비 등 부당한 금품수수 ▲건설기계를 사용한 현장 점거 등 공사방해 ▲부당한 태업의 3개 유형으로 구분해 조종사의 불법·부당행위에 엄정 대응하기 위해 법원 확정판결 없이도 행정처분에 착수할 수 있도록 유형별 처분 근거·증빙자료·사례, 처분 수준 및 처분절차 등을 발표했다.
특히 월례비 수수는 품위 손상의 주요 사례로 보고, 입출금 내역을 토대로 면허정지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또 급박한 상황이 아님에도 조종사의 일방적 판단 하에 작업효율을 고의로 감소시켜 사용자를 압박하거나 사용자, 관리자의 정당한 작업지시를 거부하는 행위도 성실의무 위반으로 간주하고 면허정지 처분을 내릴 방침이다. 한편 국가기술자격 처분 수준은 불법·부당행위 횟수별로 차등화해 1차 위반 때는 자격정지 3개월, 2차 위반은 6개월, 3차 위반은 12개월 처분이 내려질 예정이다. 부당·불법행위 신고를 접수한 뒤에는 증빙서류를 확보하고 현장 조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행정처분 심의위원회와 청문을 거쳐 자격정지 처분을 내리게 된다.
이번 발표는 지난 1일 이후에 발생한 조종사의 부당행위부터 적용되며 아울러 건설기계 조종사가 부당금품을 요구하는 경우 면허취소도 가능하도록 건설기계관리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부당행위는 건설업체의 비용을 증가시키고 공기를 연장하며 이는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국민에게 피해가 전가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번 가이드라인 마련을 계기로 타워크레인 등 건설기계를 활용한 뿌리 깊은 불법행위와 악성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월례비 요구는 건설폭력인가, 정당한 대가인가?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이참에 월례비 문제가 정리되면 좋겠다”고 말하며 “월례비를 안 내거나 적게 내면 준법 운영을 한다며 천천히 올리거나 안전고리 체결 확인을 기다리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괴롭히기에 어쩔 수 없이 주는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고 밝혔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대책을 통해서 먼저 건설 현장의 투명성 확보를 기대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소비자에게 건축물 품질까지 보장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건설업계 대다수는 건설 현장 내 만연한 노조의 불법행위 근절 대책에 환영의 목소리를 낸 반면, 정부의 월례비에 대한 처벌 강화는 찬성하지만, 대책 없이 강압적으로 처벌만 할 경우 피해는 현장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는 것을 우려해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업무태만 등에 대비할 방안도 강구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번 발표로 타워크레인 노조원의 단체 태업 등 저항이 불가피한 만큼, 이에 따른 공사 차질을 걱정하는 것이다. A 건설사 대표는 “이번에 정부가 타워크레인 노조의 순번제 등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추진 과정에서 생길 노조와의 갈등이 불가피하고 원 장관이 장관직에서 물러난 다음에는 더 큰 후유증이 생길 수 있어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건설사에서 수고비 명목으로 지급하는 월례비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하는 일의 강도에 비해 월례비가 부당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16일 광주고등법원은 관례로 지급되던 월례비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이며 월례비가 ‘공사 기간 단축’을 노리는 업체에 분명한 이득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건설노조는 지난 25일 성명을 통해 “월례비는 타워크레인 노동자의 일방적 강요로 지급받는 것이 아니라 건설회사가 안전하지 않고 무리한 작업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밝힌 바 있다”며 “정부는 월례비 발생과 관련해 건설사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후 27일 각 건설사에 월례비를 대가로 요구되던 초과근무와 위험작업을 노동자에게 요구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건설 현장 특유의 문제, 해결 의지 좋지만 후속조치도 중요할 듯
정부는 월례비가 일종의 성과급이라고 주장하는 의견에 대해 “정당한 계약이 없었으므로 성과급으로 볼 수 없다”고 답했다. 원 장관은 광주고법의 판결은 기존의 월례비가 암묵적 합의로 지급됐다는 의미이지, 월례비 자체가 임금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정리했다. 즉 건설 현장에 만연한 노조의 강요 및 협박을 근절하고, 건설사들이 암묵적 합의나 계약서 작성 등을 하지 않으면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국토부 대책에 원청사 책임도 커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현장에서 하도급사에 공기 준수를 강요하고 건설노조의 부당한 요구 수용을 종용하는 행위는 원도급사의 일명 ‘강 건너 불구경’에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 밖에 월례비 지급 관행을 근절하려면 신규 인력 수급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에 대해 박실로 노무사는 “월례비 1,000만원이 가능했던 이유는 노조가 신규 기사를 막고 있기 때문”이라며 “비정상적인 임금구조를 바꾸려면 비노조원 신규 기사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현재 정부의 강경한 대책에 건설 현장은 숨죽이고 있다. 건설경기가 죽은 탓도 있겠지만, 파업할 경우 이번 정부의 특성상 어떤 유화책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정부에서도 건설경기가 회복돼 호황에 이를 경우 크레인 기사들의 숫자가 부족해질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 등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나아가 타워크레인 기사의 노동강도 대비 급여 수준이 너무 낮았다는 게 월례비 지급의 본질적인 이유였던 만큼, 기본 급여를 올려 노조에서 불법을 자행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근본적인 해결책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