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녹색전환과 韓 녹색성장, 무엇이 다를까 – ② 한국의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정부안 발표, 장기적 녹색성장 로드맵 제시 기본계획 발표 이전 EU의 ‘ESG 규제 피하기’에 급급했던 정부, 급한 불 끄기에 바빠 한·일 유사한 시기에 장기적 탄소중립 정책 청사진 제시, 차후 추진 향방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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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사진=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선진국들이 친환경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녹색전환(Green Transformation, 이하 ‘GX’)을 중심 과제로 삼고 올 2월 ‘GX 실현을 위한 기본방침: 향후 10년을 바라본 로드맵’(이하 GX 기본방침)을 공표하며 GX 정책의 장기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우리 정부도 2022년 10월 ‘탄소중립·녹색성장 비전과 세부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지난 21일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23~’42)’ 정부안을 발표하는 등 전 세계적 친환경 흐름에 동참한 상태다. 정부는 기본계획 정책 과제가 효과적으로 추진되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향후 5년간 약 89조 9,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녹색성장 정책은 일본의 GX 정책과 ‘목적’ 자체가 다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내부 환경 개선, 국민 생활 환경 향상 등에 초점을 맞춘 일본 GX와 달리 EU의 ESG 공시 의무화로 인한 피해에 중점을 두고 단기적인 정책만을 수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일본과 한국이 유사한 시기에 탄소중립을 위한 장기적 로드맵을 제시한 가운데, 차후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30 NDC 정비해 기본계획 제시

정부는 지난 21일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23~’42)(이하 ‘기본계획’) 정부안을 발표하고,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18년 대비 40% 감축) 달성을 위한 세부 이행방안을 제시했다. 기본계획은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에 따라 최초로 수립된 탄소중립・녹색성장에 관한 최상위 법정 계획으로,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 및 녹색성장 정책 방향을 담고 있다.

정부는 △구체적·효율적인 책임감 있는 탄소중립 △민간 주도 혁신적인 탄소중립・녹색성장 △공감과 협력으로 함께하는 탄소중립 △기후 적응과 국제사회를 이끄는 능동적인 탄소중립 등 4대 국가전략을 설정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부문별 탄소 감축 정책, 이행 기반 강화 정책 등 총 82개의 세부 추진과제도 함께 제시했다.

사진=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정부는 탄소중립기본법 및 동법 시행령에 명시된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2018년 대비 40% 감축)를 달성하기 위해 부문별 탄소 감축 목표와 이행 수단을 마련했다. 부문별 감축 정책은 2021년 발표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NDC)’를 기반으로 부문별 감축 목표를 일부분 조정해 마련됐다.

먼저 전환 부문은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조화, 태양광・수소 등 청정에너지 전환 가속화를 통해 온실가스를 추가로 감축하도록 목표를 상향했다. 차후 석탄 발전을 감축하고 원전과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 전력 계통망 및 저장체계 등 기반 구축과 시장원리에 기반한 합리적인 에너지 요금체계를 마련하여 수요 효율화를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원전 발전 비중은 2021년 27.4%에서 2030년 32.4%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1년 7.5%에서 2030년 21.6%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 부문은 원료수급, 기술전망 등 현실적인 국내 여건을 고려하여 감축 목표를 완화했다. 또 기업의 감축 기술 상용화를 지원하기 위해 기술혁신펀드 조성, 보조·융자를 확대한다. 더불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배출효율기준 할당 확대 등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자발적인 감축 활동을 유도한다. 배출권거래제 배출효율기준 할당 비중은 2021년 65%에서 2030년 75%까지 증가할 예정이다.

수소 부문 정책은 수소 활용처 확장, 청정수소 기반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추진된다. 먼저 수전해 기반 그린수소 등 핵심기술 실증과 수소 액화플랜트, 수소 배관망 등 인프라 구축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더해 내연차·선박·트램·드론 등 수소 모빌리티를 다양화하고 수소 클러스터, 수소 도시를 지정하여 수소의 활용 범위를 확대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국내 수소차가 2022년 29,733대에서 2030년 300,000대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으며, 청정수소 발전 비중도 2030년 2.1%까지 향상될 것으로 전망했다.

CCUS 부문은 국내 탄소저장소 확대를 통해 온실가스 흡수량을 증가시킬 수 있는 점을 반영했다. 건축, 수송, 농축수산, 폐기물, 흡수원 등 5개 부문의 정책 추진 방향은 기존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동일하다. 이에 더해 국내 감축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국제 감축사업 발굴 및 민관협력 투자 확대 등을 통해 국제감축을 유연하게 활용하고, 이를 통해 우수한 감축 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참여를 확대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정부는 경제·사회 전 분야 및 각계각층 모두가 조화를 이루는 탄소중립 사회 구현을 위해 기후 적응, 정의로운 전환, 국제협력 등 6대 분야 45개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단, 상기 기본계획은 미확정안이며 향후 공청회 등을 통해 각계 의견 수렴 후 보완 및 수정될 예정이다.

사진=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기본계획 이전 우리나라 ESG 정책의 문제점

이번 기본계획이 제시되기 전까지 정부는 궁극적 목표 없이 ‘급한 불 끄기’에 바빴다. 최근 정부의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은 기업의 ESG 경영 공시 의무화였다. 유럽연합(EU)이 비EU 기업을 대상으로 ESG 공시 의무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을 도입하면서 EU 내 법인 매출이 4천만 유로를 초과하는 기업은 EU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 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에 따라 지속가능성 정보를 공시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이 같은 흐름에 따라 국내에서도 차후 ESG 공시가 의무화될 예정이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TCFD나 GRI, SASB와 같은 다양한 국제 ESG 공시기준을 활용해 자율적으로 ESG 공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는 2025년부터는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2030년부터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가 ESG 관련 사항에 대한 공시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문제는 ESG 공시 의무화 시 다수의 국내 기업이 비용 부담·인력 부족 등 위기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최근 ESG 동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발표에 따르면 EU의 ESG 공시 의무화에 대한 단기적 대응 수준과 관련한 질문에 원청기업의 48.2%, 협력업체의 47.0%가 ‘별다른 대응 조치 없다’고 응답했다. 2025년부터 시행되는 ‘국내 ESG 의무 공시’와 관련해서 별다른 대응 계획이 없다고 응답한 기업도 36.7%에 달했다. 이에 산업계에서는 중소기업의 ESG 경영 전환에 대한 정부 지원 및 기업의 ESG 경영 활동을 독려할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금융위원회

수출 중소기업이 ESG 공시 의무화로 인해 흔들릴 경우 실질 국내총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37.9%(2021년 기준)에 달하는 우리나라는 자연히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관련 문제를 해결할 단기적 정책을 내놓는 데 힘을 쏟고 있었다.

일례로 지난 2월 지난 기획재정부는 올해 수출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ESG 공급망 실사 관련 진단평가 및 컨설팅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업들이 공급망 실사와 같은 새로운 제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직접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ESG 평가의 투명성·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평가기관 가이던스도 마련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민간의 사회적 채권 발행 활성화를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 특성화 대학원 ESG 교육 과정 등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정책이 쏟아져나왔다.

금융위원회 역시 글로벌 ESG 규제 강화 기조에 대비한 적극적인 정책 지원을 선언했다. 2025년부터 적용될 국내 ESG 공시 단계적 의무화에 대비해 공시 의무 대상 기업과 공시 항목, 기준 등을 구체화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ESG 경영을 돕기 위해 ESG 금융추진단을 구성, 향후 운영계획과 ESG 공시 국내외 동향, 지속 가능 금융 이슈와 과제 등을 논의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SG의 ‘근본적 목표’ 잊지 않아야

전 세계적 ESG 경영 확산의 근본적 원인은 극심해진 기후 위기에 있다. UN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10년 후에 지구 온도가 산업화 시기보다 1.5도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로 한 2015년 파리기후협정을 뒤흔드는 수준이다.

대부분 국가의 ESG 정책은 이 같은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등장했다. EU는 강도 높은 ESG 규제를 시행하는 한편, 기업의 상여금(인센티브) 분배 기준에 ‘환경과 인권에 대한 영향’ 조항을 포함하는 등 환경 보호를 위한 다수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일본 역시 장기적인 탄소 감축 계획을 제시하며 향후 5년 동안 150조 엔 이상의 민관 GX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닌 환경 문제를 개선하고, 국민 생활 환경을 향상하기 위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ESG 정책을 내세워왔다. 환경을 위해 규제를 실시하는 것이 아닌, 규제가 등장하니 부랴부랴 환경 정책을 내놓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EU가 수출을 위해 요구하는 조건들에 맞춰 등장한 다수의 정책이 이를 방증한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그조차도 ‘한 박자 늦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시중 은행권이 정부보다 최소 1년 일찍 중소기업의 ESG 공시 의무화로 인한 위기를 인지하고 지원책을 제시한 바 있다.

국가 경제 성장을 고려해 EU의 규제에 대응한 정부의 판단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규제 회피를 위한 정책보다는 우리만의 본질적 목표 실현을 위한 정책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면에서 장기적 녹색성장 목표를 제시한 이번 기본계획 발표는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일본과 한국은 유사한 시기, 유사한 내용을 담은 녹색성장 장기 로드맵을 발표했다. 하지만 자금 투자 규모, 구체적 미래 목표와 시행 방안, 산업계의 반응 등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차후 두 나라가 원활하게 정책을 추진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각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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