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혼잡도우미’ 고용한 서울교통공사, 낡은 ‘푸셔’ 그대로?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혼잡도우미’ 45명 고용 다른 나라에도 있는 ‘푸셔’, 실질적인 해결책 될 수 있을까? 서울교통공사, 전문가 제언에도 매뉴얼 수정 안 했다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 혼잡도 안전도우미(이하 혼잡도우미) 45명을 모집했다. 출근 시간대 승객들의 안전한 이동을 돕겠단 취지다. 혼잡도우미는 출근 시간대 주요 승객이 많이 몰리는 13개 역에 우선 배치된다. 구체적인 배치 구역은 ▲서울역 시청 ▲신도림 ▲사당 ▲교대 종로3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충무로 ▲서울역 ▲사당 군자 건대 입구 ▲가산디지털단지 등이다.
혼잡도우미의 주 업무는 안전한 이동 동선 안내, 계산과 승강 시설 안전사고 방지 업무 등이며, 위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역 직원을 돕는 업무도 맡는다. 공사는 혼잡도우미 배치를 통해 출·퇴근 시 승객들의 안전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태림 서울교통공사 영업계획처장은 “승객 여러분께선 안전한 출근길 지하철 이용을 위해 혼잡도우미의 안내에 철저히 따라주시기 바란다”며 “대중교통 마스크 의무화 해제 등으로 이용객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안전 인력을 추가 모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혼잡도우미, 낡은 ‘푸셔’ 그대로 들고 와
출·퇴근길 지하철은 혼란 그 자체다. 사람들은 빠르게 직장 혹은 집에 도착하기 위해 몸을 밀어 넣고, 지하철에 있던 이들은 턱에, 손잡이에, 창문에 짓눌리며 고통을 겪는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혼잡도우미’를 고용한 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 뉴욕, 일본, 중국도 비슷한 업무를 맡는 이들을 이미 고용해왔다.
뉴욕시는 1900년대 ‘passenger pusher’들을 고용함으로써 승객들의 일정과 편의를 위해 역 체류 시간을 최소화했다. 일본은 ‘오시야(押し屋)’라는 푸셔를 고용해 모든 승객이 탑승했는지 확인하고 승객들이 문에 걸리지 않도록 안전을 관리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베이징 지하철, 상하이 지하철, 충칭 지하철 등 3개 도시에서 전문 열차 푸셔를 고용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승객의 승선을 돕고 인파가 몰리면 이를 중재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이번에 서울교통공사가 발표한 혼잡도우미와 이들 ‘푸셔’의 의의는 같다. 지하철 승객 정체를 방지하잔 것이다. 이에 혹자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교통공사의 혼잡도우미 모집은 글로벌 추세를 따라간 것이냐고 말이다. 사실 그렇지 않다. 타국의 ‘푸셔’는 예전부터 이어져 오거나 이미 없어진 정책이다. 특히 일본에선 푸셔의 존재 자체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다른 나라의 낡은 정책을 가져와서 새로운 것인 양 꺼내 보인 셈이다.
필요한 건 ‘기준’, 압사 사고가 남긴 상흔 기억해야
우리에게 혼잡도우미보다 필요한 건 ‘기준’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지하철 탑승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의 관련 행정규칙엔 지하철 승차 인원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일절 담겨 있지 않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서울교통공사(서울메트로)의 내부 지침이나 세칙에도 승객 수나 인원 과밀에 대한 조항은 없다. 우리나라에 지하철 정원 관련 법 규정이 전무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안일함이다. 지난 1960년 1월 26일, 한국은 이 같은 안일함의 결과로 치명적인 고통을 맛봐야만 했다. 설날을 이틀 앞둔 당시 서울역 승강장엔 3,900여 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역 직원이 ‘열차 출발 5분 전’이란 사인을 보내자 사람들은 일제히 승강장 계단 쪽으로 달려갔고, 그 결과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미끄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이 사고로 31명의 사망자와 4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60여 년을 거슬러 갈 필요도 없다. 지난해 10월에만 해도 이태원 압사 사고가 있었다. 할로윈 축제에 따른 인원 과밀과 안전불감증, 그리고 경찰 및 행정당국의 안일함이 빚어낸 참사였다. 당시 이태원 압사 사고로 발생한 사망자는 159명에 달했다. 이태원 도심 한가운데서 테러가 일어난 수준이다. 단순한 안일함이 얼마나 큰 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지하철 혼잡도 최대 ‘185%’, 또 다른 참사 우려돼
지난해 말 서울교통공사가 발표한 ‘도시철도 수송 실적’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9개 노선 중 2021년 출·퇴근 시간대 최대혼잡도 100%를 넘어선 노선은 무려 7개에 달했다. 혼잡도란 지하철 한 대당 표준 탑승 인원인 160명을 기준으로 실제 탑승 인원을 백분율로 나타낸 것이다. 즉 혼잡도가 100%를 넘어가면 기본적인 지하철 탑승 인원을 넘어선다는 뜻이다.
자료에 따르면 9호선의 ‘노량진→동작’ 구간은 오전 7~8시 혼잡도 185%를 기록했고, 4호선 ‘한성대입구→혜화’ 구간은 150.8%의 혼잡도를 보였다. 이외 ▲2호선 ‘방배→서초’ 구간 149.4% ▲ 3호선 ‘무악재→독립문’ 구간 140.6% ▲8호선 ‘강동구청→몽촌토성’ 구간 134.1% 등의 혼잡도를 기록했다.
특히 심각한 건 위 통계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시기의 것이란 점이다. 이제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위축되며 대중교통 내 마스크 착용 의무도 권고 수준으로 바뀌었다. 대중교통 탑승객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란 예측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대책과 매뉴얼 없이 승객을 받기만 한다면 또 다른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매뉴얼 없는 지하철, 불안은 시민들의 몫
현재 국토교통부와 서울교통공사가 매뉴얼로 규정하고 있는 도시철도 위기 유형은 ▲열차 충돌 ▲열차 탈선 ▲열차 및 여사 화재 ▲열차 폭발 ▲열차 침수 ▲터널, 선로, 역 구내 탈선·화재·충돌 등 총 6가지다. 승객이 한꺼번에 몰려 발생할 수 있는 압사에 대한 매뉴얼은 역시나 전무하다. 이와 관련해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압사는 기존의 매뉴얼로 대체 가능하다고 판단해 따로 포함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무계획에 따른 불안감은 온전히 시민들의 몫이다.
매일 아침 9호선을 타고 출근한다는 A씨는 “이태원 참사 당시 좁은 길목에 사람들이 빽빽이 서 있던 모습이 출근길 지하철과 비슷해 두려움을 느낀다”며 “아침의 9호선은 전쟁터나 다름없어 언제든 사고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고, 나 또한 매번 넘어지지는 않을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매일 2호선을 이용해 출근한다는 B씨는 “매번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압사하거나 계단에서 넘어져 다칠까 걱정된다”며 “사람이 많아서 내릴 역을 놓칠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지하철 대응 매뉴얼에 다중밀집 사고와 관련한 내용이 꼭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지난 2016년 서울시 정책 싱크탱크인 서울연구원은 ‘신종 대형 도시재난 전망과 정책 방향’ 보고서에서 서울시가 새로 관심을 둬야 할 도시재난으로 압사 사고를 꼽았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와 서울교통공사는 지난해 8월 행동 매뉴얼을 개정하면서도 6년 전 서울연구원의 제언을 일절 반영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의 상흔은 크다.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음에도 한순간에 시민의 목숨을 앗아가는 압사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다름 아닌 지하철 정원 수 제한이다. 혼잡도우미는 당장 조그만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결국 나중에는 지하철에 억지로 몸을 밀어 넣는 승객들이 지하철에서 밀려 나오지 않도록 넣어주는 ‘푸셔’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보다 실질적인 문제가 뭔지, 보다 확실하고 정확한 대처 방안이 뭔지 제대로 고민해야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