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노조] ② 우리는 ‘MZ노조’가 아닙니다. ‘화이트칼라 사무직 노조’입니다
MZ노조 아니라 ‘화이트칼라 사무직 노조’라는 대안 노조 합리성 따지는 MZ세대 기호에 맞는 활동으로 지지 이끌어 관계자, 향후 양강 구도가 삼분 구도로 바뀔 듯 서울·경기권에서는 새로고침이 주력 노조가 될 것이란 예측도
서울교통공사에서 부분별 근로자 대표 중 양대 노총 출신이 아닌 노조 대표가 당선되면서 속칭 ‘MZ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이하 새로고침)’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폭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언론은 이들을 ‘MZ노조’로 부르지만, 관계자들은 구성원 모두가 MZ인 것도 아니고, 스스로를 MZ노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새로고침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그간 양대 노총과 같은 방식으로 머리에 띠를 두르고 확성기로 강한 메세지를 내는 노동 활동 대신, 사측과 합리적인 토론을 이어갈 수 있는 지식인 집단, 혹은 ‘화이트칼라 사무직 노조’라는 관점으로 구성되었다는 철학 아래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Z노조? 화이트 칼라 사무직 노조?
기존 노동운동을 주도해 온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MZ세대들이 주도하는 새로고침에 탐탁치 않은 눈초리다. 인터뷰 중 만난 관계자들은 연대 가능성을 내비추면서도 정규직·공기업·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진 구성원을 지적하며 견제의 눈초리를 보냈다. 특히 새로고침에서 회계 관련 문제로 양대 노총을 비판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새로고침은 정부가 노조에 회계 장부 제출을 요구했던 것에 찬성하며 모든 자료를 상세하게 공개하겠다고 답변했다.
반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부정확한 서류를 제출하고 보완 요청에도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다 지난 10일 국토교통부에 시정 명령과 함께 44개 지역 단체가 벌금 고지서를 받기도 했다. 노동계에서는 현재의 관행을 깡그리 뒤집으려는 정부의 정책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현행 노조법과 시행령에서 제한하고 있지 않은 사항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반면 새로고침은 정부 기관의 지원금을 받아 운영되는 조직인 만큼 회계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투쟁 방식에서도 양측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그간 정치 투쟁이 노동 운동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주장해왔다. 고용 조건 문제는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문제, 나아가 정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새로고침은 정치 투쟁이 노동 운동과 엮이는 것 자체가 이미 구시대적 사고라고 반박한다. 이에 대해 양대 노총은 새로고침의 사고방식에서 이들이 사무직 고액 연봉자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는 반응이다.
대학에서 ‘비권’ 학생회, 직장에서는 ‘비권’ 노조
새로고침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MZ세대 노동자들 대부분이 대학에서 비운동권 학생회를 경험했거나, 운동권 학생회의 내실없는 목소리에 불만을 가졌던 세대들인 탓에 ‘비권 노조’가 설립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비권, 혹은 반운동권으로 이름지워졌던 당시 신생 학생회 세력은 재학 시절에도 학교와 직접적인 ‘투쟁’을 내세우기보다 서로 이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대안을 도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인 구호보다 학내 학생들의 복지에 관계된 내용을 학교와 조율하고, 나아가 장부 투명 공개 등이 주요 비권 학생회들의 구호였다는 설명도 나온다.
이번 회계 장부 분쟁도 비권 학생회와 사고를 같이 하는 직장의 ‘비권’ 노조가 정부의 요청대로 투명한 회계를 강조하는 것도 당연한 흐름이라는 것이다. MZ세대로 대변되는 지지층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임금 협상 투쟁이 아니라 사측과의 협상 내용 상세 공개, 회계 장부 공개 등으로 표현되는 투명성인데, 이 부분을 ‘비권 노조’인 새로고침이 잘 파고들었다는 설명이다.
대안 노조의 등장, 향후 노조 구도의 변화는?
노조 관계자들은 MZ세대 중 80년대 초반생들이 이미 40대 부장급 인력이 되어 있는 상황인 만큼, ‘화이트칼라 사무직 노조’ 집단은 양대 노총보다 새로고침 등의 대안 노조에 더 호감을 표현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막 탄생한 것처럼 보이는 넥타이 부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노조 집단이 앞으로 더 주력 집단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기존의 양강 구도에서 삼각 구도로 재편되면서 지방의 공장들에서 양대 노총이 주력으로 남을 뿐, 서울 및 경기권의 ‘넥타이 부대’가 일하는 직장에서는 새로고침 노조가 사측과 노조의 협상 방식을 바꾸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과거 대학가의 ‘비권’ 학생회가 당선되면서 대학 총장들도 학생들과의 협상이 한결 더 지적인 토론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 바 있다. 2004년 서울대 총장으로 임명된 정운찬 총장은 당시 ‘비권’으로 불린 학생회와의 협상을 통해 인문대 일대의 환경 미화 개선, 중앙도서관 설비 개선 등을 타결하면서 “학생들이 학교의 사정을 더 잘 알아서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됐다”는 후일담을 내놓기도 했다.
노조 관계자들은 서울, 경기 지역에 집중된 ‘넥타이 부대’ 기반 직장들이 새로고침 노조로 재편되면서 2000년대 초반 대학가에서 학교와 학생회의 협상 구도가 달라졌던 것처럼 사측과 노조 간의 협상도 과거보다 더 지적으로 훈련된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추기도 했다.
재직 중인 회사 내에 막 설립되고 있는 새로고침 노조 가입을 고민하고 있다는 서울 역삼역 일대의 한 직장인은 “노조의 이미지도 나쁘지 않고, 정말 사측과 협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