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英 에너지 안보 공동선언문 발표, ESG로 막힌 수출 구멍 뚫리나

韓·英, 에너지 분야 교류·협력 강화 선언 유럽 넘어 아프리카까지 교류점 잇는다 英 탄소중립 이렇게 빠른데, “우리는 뭐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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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트 샵스 영국 에너지안보탄소중립부 장관/사진=주한영국대사관

한국과 영국이 에너지 분야 교류·협력 강화를 선언했다. 원전 종주국으로 꼽히는 영국에서의 원전 수주 기대감이 커지는 대목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3월 영국과 ‘제5차 한영 원전산업 대화체’를 개최해 3년 만에 원전협력을 논의한 바 있다. 이번 교류 강화 선언으로 우리나라가 그간 영국과 쌓아 올린 협력 체계의 교두보를 완성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0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그랜트 샵스 영국 에너지안보탄소중립부(에너지부) 장관과 만남을 갖고 관련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번 공동선언문은 △화석연료에서 저탄소 전원으로의 에너지 전환 필요성 공감 △영국 신규 원전 건설 참여 가능성 모색 등 원전 협력 강화 △양국 간 해상풍력, 수소 등 청정에너지 분야 교류 및 협력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했다.

한·영 양국은 공동선언문과 함께 한국의 경쟁력 있는 원전 설계·건설, 기자재 제작, 소형 모듈 원전, 영국에 강점이 있는 원전 해체와 핵연료 분야의 협력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안정성 확보를 전제로 무탄소전원인 원전을 적극 활용하며 실현 가능한 적정 수준으로까지 신재생 에너지를 확대해 나가겠단 우리나라의 계획에 영국의 상호보완적 조력이 더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수소 협력도 유기적으로 이뤄 나가기로 합의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 수준의 수소차 보급이 이뤄지는 등 수소 활용 분야에 보급 경험과 기술력이 있고, 영국은 수전해 등 수소 생산 분야에서 선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만큼 양국의 협력이 이어질 경우 확연한 기술 혁신이 이뤄질 것으로 양 장관은 기대했다.

수출 구멍 막힌 韓, 공동선언문으로 막힌 구멍 뚫는다

이번 에너지 안보 공동선언문은 공동선언문의 형태를 띄고 있긴 하나 우리나라로서는 하나의 ‘수출 전략’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나라 제품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건에 미치지 못하면서 유럽 수출이 어려워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전략적 자세를 취했단 분석이다.

물론 유럽의 에너지 안보 행보를 기반으로 유럽 등 타국과 협력하겠단 외교적 함의도 담겨 있다. 이와 비슷한 작업은 이전부터도 있었다. 앞서 지난 2022년 8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유럽의 에너지 안보 강화에 따른 대아프리카 협력 확대 가능성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유럽의 에너지 안보 강화 움직임을 탐색하고 아프리카 등 국가와 협력하기 위한 토대 마련 방안을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주요국들은 아프리카 원유 및 천연가스 분야에서 원유시추와 탐사, 수송, 가스 기화 및 액화 부문에서 투자를 주도했다. 특히 가스 탐사 및 생산이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모잠비크, 탄자니아, 남아공 등 동남부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가 증가세를 이뤘다. 이 같은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도 유럽과의 기술 보완을 통해 대아프리카 협력까지 끌어내자는 게 정부의 외교적 구상이다.

다만 아프리카는 현재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의 영향력을 크게 받는 국가인 데다, 아프리카 자원 보유국 대부분 인프라가 열악하다. 더군다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도 셀 수 없이 많다. 결국 아프리카로부터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유럽 및 아프리카와 협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93.5%에 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에너지 수입국’이다. 그만큼 에너지 시장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에너지 시장 불안으로 인한 자원 수급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럽 및 아프리카와의 에너지 안보 협력은 상당히 중요하다 할 수 있다.

급진적 탄소중립 이루는 英, 우리도 따라가야

한편 이번에 에너지 안보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영국은 그 어떤 다른 주요국보다 급진적인 탄소중립 정책을 펴는 국가 중 하나다. 영국은 지난 2019년 6월 ‘기후변화법(ClimateChangeActof 2008)’을 기존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였던 2050년 80% 감축에서 순배출 제로(Zero) 달성으로 수정했다. 이어 2020년 12월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기존 53% 감축에서 최소 68% 감축으로 상향 조정했다. 영국이 이 같은 적극적인 정책을 내놓을 수 있었던 건 청정에너지 및 탄소중립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의 통계에 따르면, 태양광·풍력·수력·바이오 등 영국 내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총 38.8%에 달한다. 특히 태양광과 풍력, 지열 등은 1990년 대비 연평균 증가율이 36% 이상으로 집계됐다. 유럽대륙과 분리되어 있는 등 제한적인 상황의 영국이 이 같은 청정에너지 중심의 탄소중립 성과를 내놓은 것은 우리나라에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길을 걸어갈 수 있으리란 ‘레드 카펫’을 영국이 사전에 깔아준 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현재 영국은 탄소중립과 관련한 장기전략을 수립 중에 있다. 영국은 지난 2020년 11월 ‘녹색산업혁명(Green Industrial Revolution)’ 추진을 위한 2030년까지의 10대 중점계획(The Ten Point Plan for a Green Industrial Revolution)을 발표, 녹색기술 및 녹색금융 분야에서 선두로 올라서겠단 포부를 밝혔다. 영국은 이를 통해 2030년까지 민간 부문까지 총 120억 파운드의 투자와 25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현재 10GW 수준인 해상풍력 설비를 2030년까지 40GW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아울러 2030년까지 저탄소수소 생산 능력을 5GW까지 확대하기 위한 연구개발에도 나선다. 이에 영국은 가정용 난방에도 수소 및 수소 혼합물을 사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원자력 연구개발 △수송 탈탄소화 △대중교통 탈탄소화 △항공 및 선박 저탄소화 등 다양한 녹색 정책을 추진 중에 있다.

영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영국에서 석탄으로 생산되는 전기는 2012년 40%에서 지난해 1.5%로 약 38%나 급감했다. 이에 영국은 ‘앞으로 석탄과 가스 발전을 고수하는 건 더 이상 경제적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즉 환경적 의미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경제적 이익도 취하지 못하게 될 ‘녹색의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란 의미다. 탄소중립, 녹색성장은 이미 글로벌 과제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탄소중립을 이뤄나가는 국가들 사이 홀로 석탄·석유를 고집한다면 ‘레드존(Red Zone)’으로 낙인찍히리란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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