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도감청 의혹, 미국의 ‘통치행위’인가? 한국의 ‘부실보안’인가?
미국 NSA의 한국 대통령실 도감청 확인 문건 유출 대통령실, 사실관계 확인 전까지 답변할 수 없다는 입장 한두 번이 아닌 만큼 사실 일 것이라는 분석 러시아 등 주요 세력이 전쟁 구도를 바꾸려 유출했다는 의혹도
지난 9일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정부를 도감청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대통령실도 사실관계 파악에 나서는 모습이다.
10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양국 상황 파악이 끝나면 미국 측에 합동한 조치를 요구할 계획”이라며 “한미 동맹 간에 형성된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에서는 “용산 대통령실 이전으로 대통령실이 도감청에 무방비 상태가 됐다”며 비난의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도감청에 노출된 대통령실, 다른 정부 기관은?
한 여당 관계자는 “대통령실이 도감청에 노출되어서 문제라면 지난 정부까지 이 건물이 국방부 건물이었으니 국방부가 도감청되었던 것”이라며 “국방부 도감청은 괜찮고 대통령실 도감청은 안 된다는 논리는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어 야당 관계자는 “청와대 건물을 비롯한 모든 정부 관청을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과거 국방부 건물이었던 현 대통령실에 도감청이 가능하다면 다른 건물도 손쉽게 도감청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통령실에서는 “국방부, 합참 건물에 대한 도감청 방지 조치는 충분히 이뤄져 있다”며 “미국 정부가 실제로 도감청을 했는지 여부를 먼저 확인하고 난 다음에 답변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한발 물러섰다.
미국 내에서는 도감청 이슈가 오랫동안 정치권의 주요 관심사였다. 미 정치 전문지인 스미소니언 매거진에 따르면 미국의 도감청 역사는 150년에 이르며 매년 주요 선거,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도감청이 항상 도마에 올랐다고 밝혔다. 지난 2022년 초에는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상·하원 의원들을 도감청하고 있다는 주장이 미 의회에서 논의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문건에만 한정?
9일 CNN 등의 주요 외신이 한국, 영국, 이스라엘 등 주요 동맹국들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문건을 미 정부가 도감청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가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문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미 CIA가 동맹국들뿐만 아니라 자국의 국가안보실(NSA)도 불법으로 감청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는 만큼, 평소 한국의 주요 외교적 이슈들도 일괄 감시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이번에 우연히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문건만 공개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5년 NSA의 주요 감청 자료를 내부 고발한 에드워드 스노든에 따르면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무차별적인 전화 도청, 이메일 해킹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단순히 미국 국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주요 우방국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한국은 미국 측에 도청 여부에 대한 확인 요청을 보냈고, 미국은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대답할 수 없음)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외교가 관계자는 이를 두고 실제로 한국 정부를 감청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수 없는 상황에 내놓은 답변이라고 해석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이 다가오자 힐러리 전 국무장관은 “다들 미국 정보에 의지해놓고 이제 와서 이러냐?”는 인터뷰로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호하기도 했다.
2023년 펜타곤 기밀 유출이 낳을 파장
유출된 문서에는 지난 3월 1일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미국의 포탄 공급 요청에 대해 우려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금까지와 달리 우크라이나 지원을 공식 천명하자는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의 주장에 대해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이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어 회담과 무기 지원을 거래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우려하는 내용이다. 결정적으로 정보의 출처가 신호정보 보고(SI-G), 즉 감청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라는 표식이 붙어있어 큰 문제가 됐다.
믹 멀로이 전 미국 국방부 차관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중대한 보안 사고”라며 “누군가 우크라이나, 미국, 나토의 노력을 망치려고 고의적으로 유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내용이 공개되자 과거와 같이 우크라이나 지원은 인도적인 수준에서 그칠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여의도 관계자들 중 일부는 믹 멀로이 전 미국 국방부 차관보의 주장과 같이 러시아를 비롯한 주요 세력이 고의적으로 해당 정보를 흘려 미국의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에 탄약 공급을 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언론, SNS, 커뮤니티 등으로 살펴본 빅데이터 여론도 감청 의혹에 크게 동요된 모습이다. ‘감청’ 관련 키워드로 ‘대통령실’, ‘무기’ 등이 잇따라 등장하고 이어 ‘우크라이나’, ‘윤석열’, ‘정보기관’, ‘항의’, ‘문건’, ‘대응’ 등의 불만 사항이 담긴 키워드(이상 붉은색 키워드)와 ‘외교’, ‘동맹’, ‘바이든’, ‘일본’ 등 한국이 특별히 더 도감청에 취약한 상태에서 미국에 내주기 외교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난(이상 녹색 키워드), 이어 ‘용산’, ‘미국’, ‘안보’ 등 가까이 있는 용산미국기지가 도감청의 중간 거점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상 보라색 키워드)이 함께 언급됐다.
대통령실은 사실관계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더 이상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