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閣下] 4/4 양곡법 거부권, 포퓰리즘과 삼권분립
양곡법 개정안에 거부권 행사한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예정 법안 줄줄이? 민주당, 불통 대통령 비난, 국민의힘 국가 안보를 위해서도 필요 주장 국민 여론 움직임에 따라 향후 법안 힘겨루기 이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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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4일 국무회의에서 취임 후 첫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 고유권한인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2016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이후로 약 7년 만에 처음이다.
양곡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의무 매입이 도입되면 쌀 공급 초과가 심화돼 2030년까지 연평균 1조원의 세금이 들어가고, 2030년에는 1조4,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쌀 공급 초과를 미연에 차단하겠다는 정부와 농민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무시한다는 더불어민주당의 논리가 정면에서 맞붙은 것이다.
재의결 사실상 물 건너가, 양곡법 개정안 대안은?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국회로 돌아간 개정안의 재의결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법안 재의결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요건으로 하는데, 국민의힘 의원이 115명으로 전체 재적의원 299명의 3분의 1을 넘기 때문이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어진 브리핑에서 “국가적 이익에 반하여 큰 피해가 예상되는 부당한 법률안에 대한 정부의 재의 요구는 헌법이 부여한 ‘삼권분립에 따른 행정부의 권한’”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그간 농업계, 언론, 전문가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 수렴과 당정 간의 협의 등을 종합해 판단한 결과, ‘남는 쌀 전량 강제 매수법’에 대해 재의 요구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남는 쌀은 현재도 헐값에 주정(酒精)이나 가축 사료용으로 처분되고 있다.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쌀 가격을 고가로 유지하도록 돕는다는 주장이 나오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일부 농민 단체도 1인당 쌀 소비량이 10년간 20% 감소한 상황에서 양곡법이 통과될 경우 농가들이 계속 쌀농사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고, 공급 과잉이 심화되면 쌀값이 떨어져 오히려 농민들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로 양곡법 개정에 반대해왔다.
대통령 지지율에 미치는 영향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대통령의 의회 견제가 ‘고집불통’ 이미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거부권이라는 게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권한이 아니다”라며 대통령의 이번 거부권 행사가 의회 의결을 무시하는 대통령의 독단적인 결정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민주당의 대응을 “실질적으로 대통령이 계속 거부권을 쓰면 방법이 없지만 일단 총선을 앞두고 핵심 지지층의 단합을 위해 쟁점법안을 중점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가에서는 이번 거부권 행사로 대통령의 지지율이 어떻게 변화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역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지지율이 되레 오른 전례도 많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2013년 1월 22일 ‘택시법(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 촉진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해당법은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지정해 유가 보조금 등을 지원하자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이었다. 이 대통령은 정권 인계 와중에 당선인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해마다 2조원에 가까운 혈세를 퍼부어야 하는 포퓰리즘 법안을 지지할 수 없다고 결단했다.
경남 사천과 가덕도를 놓고 남부권 신공항을 지어야 한다는 여론이 주도적이던 가운데, 4대강을 포함한 건설 경기 부양책으로 금융위기를 타파하려고 한다는 야당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으로 타협했던 정책 결정도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회복에 큰 도움을 줬다. 두 사건 모두 직군 종사자나 주변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손쉽게 끌어낼 수 있는 정책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재정을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성향을 보인다.
택시법 거부권 이후 바닥을 치고 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소폭 상승해 퇴임 전 28%를 기록하기도 했다.
삼권분립으로 막은 포퓰리즘
농림축산식품부 정황근 장관은 쌀을 정부가 무조건 수매해주겠다는 양곡법이 자칫 식량 안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충분한 양을 비축하고 있는 벼농사에 농업인들이 계속 자원을 쏟을 경우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밀, 콩 등의 주요 식량 작물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청년 정치인은 ‘포퓰리즘을 삼권분립으로 막은 것’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번 거부권 행사가 의회 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의 포퓰리즘 정책을 행정부의 권한으로 막은 것이라는 뜻이다.
인터넷 언론, SNS 등에서 수집한 빅데이터 기반 국민 여론은 국회에서의 법안 통과(붉은색 키워드), 대통령 실에서 거부권 행사(보라색 키워드), 양곡법 관련 기본 키워드(하늘색 키워드), 기타 대외 외교 문제(녹색 키워드)로 구분된다. 붉은색과 보라색 키워드는 각각 의회 권력의 결정과 행정부 권력의 결정, 민주당의 결정과 국민의힘의 결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재는 양쪽 논리 중 어느쪽으로 기울어진 모습 없이 양측이 팽팽하게 맞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간호법 제정안’, ‘방송법 개정안’, ‘노란봉투법’, ‘안전운임제’, ‘쌍특검’ 등을 본회의에 직회부 했거나 직회부를 계획하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모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법안들이라고 논평하면서, 이번 양곡법 거부권에 지지세가 어떻게 바뀌느냐가 향후 직회부되는 법들에 대해 거부권을 발동할지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연이은 거부권 행사가 박근혜 대통령 시절의 ‘불통’ 이미지를 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처리되지 않은 장관을 무려 서른 명도 넘게 장관 자리에 앉혔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