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징조, OPEC+ 100만 배럴 깜짝 감산 발표
미국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사우디, 중국·러시아와 가까워지나 7월부터는 166만 배럴/일의 글로벌 공급 추가 감소 OPEC+ 기습 결정으로 국제유가는 80달러 수준으로 급등
지난 몇 달 동안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생산량을 줄이고 중국이 위안화로 석유를 결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놀라운 움직임을 보였다. 살만 국왕과 그의 영향력 있는 아들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통치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3일 석유 생산량을 줄이기로 합의했다고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이 결정은 오랫동안 미국의 패권을 뒷받침해 온 페트로 달러 시스템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번 감산 결정은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 은행이 무너지고 UBS가 크레디트스위스를 강제 인수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전염 우려와 원유 수요 급감으로 유가가 급락한 데 따른 것이다. 분석가들은 바이든 행정부 기간 동안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가운데, 미국과 독립적인 경제 전략을 수립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주요 산유국들의 이번 감산을 방어적인 조치만이 아닌 공격적인 움직임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글로벌 경제 환경이 계속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OPEC+ 회원국들의 깜짝 감산은 석유 산업 내 힘의 균형이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국가들이 보다 독립적인 경제 전략을 추구하고 중국 및 러시아와 같은 국가들과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역학 관계는 큰 변화를 맞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갑작스러운 OPEC+ 감산 결정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고 러시아와 남미 국가들이 참여한 OPEC은+는 지난 2월 2일 하루 10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감산한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 예상치 못한 조치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서방 동맹국과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을 포함한 산유국 그룹은 유가 상승을 지지하거나 심지어 유가 상승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우디가 주도한 이번 이니셔티브는 공식적인 OPEC+ 회의가 아닌 외부에서 발표된 것으로, 참여 회원국들 사이에 긴박감이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감산은 작년에 에너지 비용 급증으로 만연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더 많은 석유를 시추하도록 추진한 리야드와 미국 간의 분쟁을 재점화할 위험이 있다. 백악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본격적으로 침공하고 OPEC+가 마지막으로 하루 200만 배럴의 공식 감산을 발표했을 때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줄임으로써 에너지 위기를 조성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사실상 러시아 편에 섰다고 비난했다.
OPEC+의 이번 결정은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가를 억제하기 위해 2022년에 전략 석유 비축유를 부분적으로 고갈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최근 미국은 비축유를 다시 채우는 데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히면서 이번 감산이 글로벌 시장에 미칠 영향을 더욱 강조했다. 이번 감산으로 인한 주요 우려는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악화시켜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통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금리를 추가로 인상하거나 더 높은 금리를 장기간 유지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OPEC+의 감산 합의에 대해 빠르게 불만을 표명했다. 백악관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 성명을 통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현재로서는 감산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요 산유국,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러한 움직임을 미국에 정치적,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투자자들은 연준의 3월 금리 인상이 마지막 금리 인상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0.25%포인트 추가 인상에 대한 베팅은 증가했다. 또 유로존 금리 정점에 대한 전망도 소폭 상승했다. 다만 유가의 미래 궤적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번 인하가 유가를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리지 않고 가격을 지지한다면, 원유 가격이 2022년에 도달한 수준보다 여전히 낮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수 있다.
금 가는 사우디-미국 관계
최근 석유 감산으로 인해 바이든 행정부와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저유가는 네옴(NEOM)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수행 중인 러시아 등에 재정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유가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데 두 국가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이에 RBC 캐피털 마켓의 헬리마 크로프트는 “사우디가 ‘사우디 우선’ 정책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사우디는 미국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중국 및 러시아와 긴밀히 협력하여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에 반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우디는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 및 기타 주요 경제국이 포함된 정치, 경제, 안보 블록인 중국 주도의 상하이협력기구(SCO)에서 대화 파트너 지위를 획득하면서 정회원 후보에 올랐다. 이와 더불어 중국 룽셩석유화학의 지분 10%를 36억 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추진 중이며, 이 회사에 하루 48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한편 중국은 중동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획기적인 합의를 중개하며 전통적으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던 이 지역에서 중국의 정치 및 안보 영향력 강화에 나섰다. 이러한 발전은 지정학적 지형에 중대한 변화가 있음을 의미하며, 향후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과 글로벌 세력 균형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OPEC+의 감산 결정으로 드러나는 미국과 사우디의 긴장과 대립은 페트로 달러 시스템에 잠재적인 위협이 증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더욱 적극적으로 글로벌 파트너십을 다각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미국의 패권 기반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갈수록 양극화되는 세계에서 주요 산유국의 결정과 그 결정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국가들이 새로운 동맹을 구축하고 경제 전략을 바꾸면서 페트로 달러의 미래와 글로벌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사우디의 분석가이자 작가인 알리 시하비는 “미국과의 전통적인 일부일처제 관계는 이제 끝났다”며 “사우디와 미국과의 관계도 강하지만 중국, 인도, 영국, 프랑스 등과도 똑같이 강해지는 개방적인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