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성폭력 피해자 보호하는 美 ‘임대차 계약 분리·중도해지’, 우리나라에 도입된다면?

美, 임대차 계약 중도해지권·임대차 계약 분리 등 범죄 피해 임차인 보호 적극 지원 가정폭력·성폭력·스토킹 피해자부터 주에 따라 노인·장애인·군인까지 주거권 보장 韓-美 주거 형태 차이로 그대로 도입되긴 어려워, 적절한 보완책으로 보호 울타리 보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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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1인 가구의 증가로 월세 형태의 주택임대차 계약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1인 임대차 가구 대상 범죄도 함께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범죄 예방 및 대처에 취약한 1인 가구 여성 대상 범죄도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여성 1인 가구의 안전 현황과 정책 대응 방향(Ⅰ): 범죄와 주거위험을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여성 1인 가구 밀집 지역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데이트 폭력, 성폭행, 스토킹, 주거 침입 등 모든 여성 폭력 범죄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 여성 1인 가구 중 44.6%는 일상생활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으며, 가장 큰 위협을 느끼는 범죄 유형으로는 성희롱·성폭행(45.9%), 주거 침입 후 절도(24.7%) 등이 꼽혔다.

미국 연방법은 가정폭력 및 스토킹 등 범죄 피해 임차인의 긴급이주를 허용하고 있고, 각 주(州)의 법률은 범죄 피해 임차인이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고 신속하게 이주할 수 있도록 임대차 계약 중도해지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제도적 한계로 범죄 피해 임차인이 가해자와 온전히 분리되지 못하거나, 거주지를 옮기지 못하는 사태가 종종 발생한다. 피해자의 안전한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인 셈이다. 그렇다면, 보편적 주거 형태에 차이가 있는 미국의 선례가 과연 우리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여성폭력방지법에 따른 ‘임대차 계약 분리’

미국 연방 여성폭력방지법(VAWA2)은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성폭력 및 스토킹 범죄 피해를 입은 임차인의 주거권 보호를 명시하고 있다. 범죄 피해 임차인의 구체적인 주거권 보호는 주거지원 프로그램인 ‘주택바우처 프로그램(Housing Choice Voucher program)’을 통해 이뤄진다. 주택바우처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는 임차인이 범죄 피해를 입으면 임대차 계약 분리, 긴급이주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는 식이다.

임대차 계약 분리(Lease bifurcation)란 주택 제공자가 가해 임차인과 피해 임차인의 거주지 분리를 위해 법률상 임대차 계약을 분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VAWA2에 따르면, 주거 지원 프로그램의 주택 제공자(공공주택청, 지원 프로그램의 주택 소유자 등)는 가정폭력 및 스토킹 등 형사상 범죄행위에 직접 연루된 임차인 거주자를 퇴거시키거나 주거 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 이에 더해 해당 범죄 행위의 피해 임차인이나 적법한 거주자가 퇴거, 지원 중단 등 불리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임대차 계약을 분리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주택제공자는 연방 주택도시개발부(HUD)의 ‘표준 긴급이주계획’을 기반으로 ‘긴급이주계획(emergency transfer plan)’을 채택하게 된다. 주거지원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는 범죄 피해 임차인은 ‘긴급이주계획’에 따라 특정 상황에 다른 거주지로 긴급이주할 수 있다. 긴급이주가 허용되는 대표적인 상황으로는 피해자의 명시적 긴급이주 요청, 추가 폭력 피해에 대한 공포감, 주거지에서 발생한 성폭력 등이 있다.

사진=pexels

주별로 ‘임대차 계약 중도해지권’ 보장

미국 각 주(州)에서도 범죄 피해 임차인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뉴욕주, 텍사스주를 포함한 상당수 주에서는 가정폭력 및 스토킹 등 범죄 피해 임차인이 임대차 계약을 조기 종료하고 거주지를 옮길 수 있는 임대차 계약 중도해지권을 ‘법정 권한(statutory rights)’으로 인정한다. 범죄 피해를 입었을 경우 임대차 계약을 중도에 파기하더라도 위약금 부담 없이 거주지 이동이 가능한 것이다.

일례로 테네시주는 2021년 7월 1일 이후 체결하거나 갱신하는 주택 임대차 계약부터 임차인이나 가구 구성원이 가정폭력, 성폭력, 스토킹 범죄의 피해를 입은 경우 임대차 계약 중도해지권을 인정한다. 캘리포니아주는 가정폭력·성폭력·스토킹뿐만 아니라 인신매매, 노인 학대, 신체 상해 또는 사망을 초래하는 범죄, 피해자에 대한 무기 또는 무력 사용 범죄 등을 임대차 계약 해지 사유에 해당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뉴욕주는 범죄 피해자뿐만 아니라 고령의 임차인, 장애를 가진 임차인에 대해서도 임대차 계약 중도해지권을 인정하고 있다. 해당 권리는 임차인이 62세 이상이거나 임대차 기간 중 62세가 되는 경우 또는 일정한 장애를 가진 경우에 인정된다. 임차인은 △의학적 이유로 독립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의사가 인증하고, 가족 구성원의 주거지로 이사할 예정인 경우 △성인 돌봄 시설, 주거형 의료 돌봄 시설, 연방·주(州)의 지원주택, 노인주택 등에 거주가 가능함을 통보받은 경우에 한해 임대차 계약을 중도해지할 수 있다.

텍사스주는 임차인이 군인이거나 군인의 가족인 경우에도 중도해지권을 인정한다. 이들은 임대차 계약 기간 중 입대하거나 근무지 영구 변경 등의 명령을 받을 경우 계약 해지에 관한 서면고지와 관련 정부 문서의 사본을 임대인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아직 미흡한 국내 보호 제도, 美 선례 적용 가능할까?

최근 국내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는 범죄 위협에 취약한 1인 가구 및 고령 임차인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임차인의 주거권을 촘촘하게 보호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범죄 피해 임차인 보호 제도에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한다. 바로 ‘신속하고 단기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공공주택 특별법 등을 근거로 피해자가 보호 시설에 6개월 이상 입소한 경우 공공 임대주택의 우선 입주권을 부여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범죄 피해 임차인 주거권 보호 규정을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해당 제도는 임차인이 보호시설을 장기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경우나, 단기간 내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경우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반면 임차인이 이주 정보 노출 없이 신속하게 이주할 수 있도록 돕는 ‘임대차 계약 중도해지권’은 신속하게 임차인을 보호할 방안 중 하나다. 현행 우리나라 보호 제도의 빈틈을 메꿀 만한 방책인 셈이다. 제도적 기반만 마련되면 국내에서 큰 무리 없이 실현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범죄 피해 임차인이 임대차 계약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주할 수 있게 된다면, 피해자 보호 제도의 질 자체가 크게 향상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임대차 계약 분리의 경우 미국과 우리나라 임대차 시장의 형태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만약 2인이 공동으로 계약하는 월세 임대차의 경우 가해 임차인을 퇴거시키고 다른 1명이 나머지 계약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계약서에 명시하는 방식으로 국내 도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세 계약에서는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예컨대, 전세 자금 마련을 위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전세자금 대출을 공동 신용으로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가해 임차인 퇴거 이후 피해 임차인이 남은 대출을 떠안아야 한다. 공동 신용으로 대출을 내준 은행 입장에서는 자산 건전성 악화 부담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국내 임대차 시장의 대다수를 전세 계약이 차지하고 있는 만큼, 해당 제도가 국내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피해 임차인에 대한 이자 지원 등 정부 차원에서의 보완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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