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전 일시 정지’ 단속 들어갔지만, “안착 쉽지 않을 듯”
경찰청, 우회전 시 일시 정지 위반 본격 단속 나서 개정 이후 교통사고 건수 크게 달라진 바 없어, ‘악법’이라는 비판도 보행자 안전과 운전자 안전은 정비례 관계, 인식 개선 빨리 이뤄져야
지난 22일 경찰청이 우회전 일시 정지 위반 행위에 대한 본격 단속에 들어갔다. 지난 1월 22일 차량 적색신호 시 일시 정지를 의무화한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의 3개월간 계도 홍보 기간 종료에 따른 것이다.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 규칙은 △차량 적색 신호 시 보행자 유무와 관계없이 정지선이나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 정지한 이후 우회전할 것 △우회전 전용 신호등이 설치된 곳에서는 우회전 전용 신호에 따라 운행할 것 등을 지시하고 있다.
지난해 시행된 도로교통법 및 올해 시행된 도로교통법 시행 규칙을 종합하면, 우선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려는 운전자는 전방 차량 신호가 적색일 경우 무조건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 정지한 후 우회전해야 한다. 또 우회전 중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거나 건너려는 보행자가 있을 경우에도 무조건 일시 정지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승용차 기준 범칙금 6만원과 벌점 10점이 부과될 수 있다.
계도 기간 지났지만, 교통사고 건수에 큰 변화 없어
경찰청은 지난해부터 교차로 우회전 시 일시 정지 위반 차량 단속에 나섰던 바 있다. 인천경찰청에 따르면, 차량 신호 적색 시 우회전 일시 정지 의무 조치가 부여된 이후로 교통사고 건수는 대폭 감소했다. 계도기간 3개월 동안 우회전 보행자 교통사고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1건(18.4%) 감소했고, 이에 따른 사망자 수도 45%나 낮아진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여전히 교통사고 건수 자체의 변화는 18.4% 감소에 그친 만큼, 운전자의 보다 주의 깊은 운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이 밝힌 ‘도로교통법 개정 이후 우회전 교통사고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2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우회전 교통사고 건수는 총 8,684건이며 이 가운데 54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전년도 동기 대비 사고 건수와 사망자가 각각 8,601건, 69명이었음을 생각하면 분명 사고율이 감소한 건 사실이나,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경찰이 30분간 서울 광진구의 한 교차로를 지켜본 결과 ‘우회전 일시 정지’ 의무를 준수한 차량은 21대 중 단 5대뿐이었다. 해당 교차로는 지난 2월 횡단보도를 건너던 70대 여성이 우회전하던 25t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사고가 발생했던 곳이다. 그런 큰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운전자의 우회전 시 일시 정지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이다.
운전자들 “악법 중의 악법” 분통
이런 가운데 운전자들은 해당 법안을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부르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전방 신호가 적색일 때 멈추고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없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다른 쪽 교차로의 신호가 바뀌며 발이 묶이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혹자는 “처음엔 보행자 유무만 따져 우회전하라더니 이젠 전방 신호, 보행자의 보행 시나리오 등 도대체 몇 개를 숙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선 교차로에 ‘우회전 신호등’을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초록불 우회전, 빨간불 멈춤’ 같은 식으로 교통체계를 단순화하는 게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교통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단순히 ‘신호등’ 하나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조준한 삼성교통문화안전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신호등을 새로 만들면 우회전 기회가 현격히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일반 교차로에선 전방 신호가 적색이든 녹색이든 서행하면서 우회전 차량이 빠져나갈 수 있으나, 우회전 신호등이 도입될 경우 ‘녹색 화살표’ 신호가 켜졌을 때만 우회전할 수 있다. 오히려 교통체증이 증가할 수 있는 사안이다. 애초 우회전 구간이 4개씩 있는 교차로가 전국 2만여 곳에 달하는 만큼 8만 개에 육박하는 신호등을 모두 설치하는 건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형차량에 의한 사망자 많아, “사각지대 2배 넓다”
상대적으로 우회전 사망사고가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승합차·건설기계 운전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우회전 차량으로 인해 사망자 보행자는 총 212명이었으며, 이 중 59.4%인 126명이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대형차량에 의해 사망했다.
대형차량의 경우 차량 특성상 우회전 시 차량 우측 사각지대의 범위가 소형차량에 비해 더 넓을 수밖에 없다. 도로교통공단이 차량별로 전방 및 좌우측 사각지대 거리를 측정한 결과, 대형화물차의 우측 사각지대는 8.3m로 일반 승용차 4.2m 대비 2배, SUV 5m의 약 1.7배, 소형화물차 4m의 약 2.1배가 길다.
대형차량의 높은 운전석과 측면 창틀 높이가 이 같은 사각지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실제 대형 화물차의 운전자 눈높이는 약 2.5m가량에 달하며, 측면 창틀 밑부분 높이는 약 2m로 타 차종에 비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공단이 진행한 시뮬레이션에선 약 140cm 신장의 어린이가 대형 화물차 전방 약 1.6m 우측 전방 약 2.4m에 위치할 경우 운전자가 보행자를 전혀 인식하지 못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 같은 이유로 대형차량 운전자는 실외 거울 등을 이용해 주변을 충분히 확인한 후 서행하며 횡단보도를 지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운전자들의 ‘안일함’이 횡단보도 보행자들을 안전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이번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차량으로부터 보행자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정된 만큼, 장기간 계도와 함께 대형차량 등 운전자들의 인식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보행 중 사망자 수는 2.5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보다 2.3배 더 많다. 특히 우회전 교통사고는 운전자가 보행자 보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우회전 차량의 일시 정지와 보행자의 안전은 정비례 관계에 놓여 있는 셈이다. 보행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곧 운전자 자신을 보호하는 것과 다름없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운전자는 우회전이 허용된 신호일지라도 보행자를 발견하는 즉시 멈추는 습관을 길러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