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乙’ 소부장 키우겠다는 정부, 2019 ‘소부장 공급망 대란’ 부른 일본과 공급망 협력?

‘소부장 글로벌화 전략’ 발표, 국내 소부장 기업 ‘슈퍼 乙’로 키우겠다는 포부 예타조사, 수출 지원, 협력모델 신규 승인, 으뜸기업 지원 강화 등 다양한 지원책 담겨 일본과의 공급망 협력 계획, 중국과 외교 단절 고려해 소부장 기업 피해 없도록 유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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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위원회 회의/사진=기획재정부

정부가 소재·장비·부품(이하 소부장)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을 보유한 ‘슈퍼 을(乙)’ 글로벌 소부장 기업 육성을 위한 지원책을 내놨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7대 핵심 전략 기술에 우주, 방산, 수소 등 3개 분야를 추가하고, 미래 소재 등 초고난도 기술을 대상으로는 3,000억원 규모의 예비 타당성 조사 사업을 추진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1차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위원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소재·부품·장비 글로벌화 전략’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글로벌화 전략은 국내 소부장 사업이 일본의 수출 규제 대응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 및 역량을 고려,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의 ‘핵심 파트너’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우리의 소부장 산업이 2001년 부품소재특별법 제정, 2019년 일본 수출규제 대응의 두 번째 변곡점을 지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경제 안보 경쟁이라는 세 번째 변곡점을 맞는 시점”이라며 “글로벌 공급망 ‘새판짜기’를 우리 소부장 산업의 글로벌 진출 기회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슈퍼 乙’ 키우는 소부장 글로벌화 전략

정부는 우선 기존 주력산업 중심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7대 분야 150대 소부장 핵심 전략기술을 우주, 방산, 수소를 포함한 10대 분야 200대 기술로 확대한다. 차후 분야별 산업 생태계 특성을 공정형(수요-공급 기업 수평형 R&D), 모듈형(수요 기업 주도형 R&D), 벤더형(공급 기업 주도형 R&D) 등으로 유형화하고, 유형에 따른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미래 소재, 초임계 소재 등 초고난도 소부장 기술을 대상으로는 3,000억원 규모의 ‘소부장 알키미스트(Alchemist) 프로젝트(가칭)’ 예비 타당성 조사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모빌리티 경량복합수지, 고강도 생분해성 섬유 등 총 21종의 신소재 개발 기간 단축을 위해서는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방식(소재 DX)을 적극 활용한다.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지원책도 마련한다. 미국‧EU 시장 진출을 위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핵심원자재법(CRMA) 등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배터리 소재, 친환경 차 부품 등 첨단 소부장 수출을 확대할 예정이다. 중국 대체 시장으로 떠오르는 베트남 등 아시아 공략을 위해서는 국내와 현지 기업의 투자 계획에 발맞춰 자동차, 디스플레이, 전자 등 연관 소부장 수출을 지원할 방침이다.

사진=소부장넷

기술 확보 및 시장 성장을 위한 글로벌 협력도 추진한다. 이를 위해 독일, 덴마크 등 35개국이 참여하는 소부장 특화 글로벌 연구 플랫폼인 메라넷(M-era.net) 등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첨단 기술을 조기 확보할 예정이다. 일본과는 국내 소부장 생태계의 보완‧확장을 전제하면서 양국의 공동 이익과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 미래지향적 협력을 추진한다.

생산 혁신 차원에서는 국가전략 산업, 소부장 산업, 지역 특화 산업이 선순환하는 혁신주도형 국가산업지도를 형성하고, 첨단 소부장 산업의 글로벌 핵심 클러스터로 발전시켜 나갈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를 상반기 중 신규 선정하고, 소부장특화단지를 3분기 중 추가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소부장 기업이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슈퍼 을 글로벌 소부장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책을 마련하고, 소부장 기업 지원의 주기도 현실에 맞게 늘린다. 기술·시장 전문가와 함께 기업의 기술 성장 로드맵을 마련하고, 현재 평균 4.1년인 연구개발 지원을 기술 난도에 따라 7년 이상까지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최대 3년까지로 제한된 정부출연연구기관 인력의 기업 파견 역시 기술 로드맵 진행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경할 수 있게 된다.

협력모델 5건 신규 승인·으뜸기업 지원 강화

이번 경쟁력위원회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 및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발굴한 5건의 신규 수요-공급 기업 간 협력모델이 승인됐다. 협력모델은 수요-공급 기업 간 공동 기술 개발 등 긴밀한 협업 체계를 기반으로 소부장 핵심 전략기술의 자립화를 지원하는 제도다. 최근 3년간 59건의 협력모델이 승인되었으며, 연구개발(R&D) 5,600억원, 환경‧노동 규제 특례, 정책금융 등 다양한 지원이 이뤄졌다.

산업부 협력모델로는 △자율주행용 라이다 △초저온 mRNA 백신 콜드체인 관련 소재 부품 △초고정밀 직선이송부품이 승인됐다. 자율주행용 라이다 협력모델은 기존 시간차 측정방식(TOF) 대비 오인식 발생 확률이 낮은 주파수 변조 방식(FMCW) 라이다 기술 자립을 도모하고, 완전자율주행을 실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초고정밀 직선이송부품 협력모델은 국내 기술력 부족으로 저사양 공정에만 쓰이고 있는 직선이송부품을 웨이퍼 이송 등 첨단 장비 부품에 적용될 수 있도록 초고정밀화하고, 이를 국내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백신 콜드체인 협력모델은 바이오 분야에서 최초 선정된 협력모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강화된 백신 수송·관리 제도에 따라 단열재, 형상 가공 기술 등 소재·부품을 자립화하고, 초저온 mRNA 백신 보관 조건을 충족하는 콜드체인을 구축하는 데 주력한다. 최근 강화되는 백신 관리 제도에 대응해 안정적인 국내 백신 공급망 체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면 글로벌 백신 수송 시장 진출도 한층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중소벤처기업부

중기부 협력모델은 △전기자동차 전력 모듈용 고절연 리츠 와이어 △반도체 세라믹 기판 및 CU 고속 충진 기술 등 2건이 승인됐다. 정부는 이번에 선정된 협력모델 5건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향후 4~5년간 약 400억원의 공동 연구개발(R&D), 환경·노동 규제 특례, 금융·세제, 실증 평가 등을 종합 지원하고, 차후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핵심 품목과 바이오 등 미래 유망산업 분야에 대한 협력 수요를 적극 발굴해 나갈 계획이다.

소부장 으뜸기업을 위한 지원도 한층 확대된다. 소부장 으뜸기업은 소부장 핵심 전략기술을 보유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그간 66개 사가 선정됐다. 선정된 기업은 소부장 글로벌화의 선두 주자로써 육성되며, 기술 고도화부터 판로 개척 등 정부의 집중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소부장 핵심 주체인 으뜸기업을 현재 66개 사에서 2030년 200개 사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산업부는 올해 3월 22일 선정된 3기 소부장 으뜸기업 23개 사에 기업별 지원 수요를 기반으로 맞춤형 범부처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으며, 이번 위원회를 통해 본격 확정했다.

정부는 이들 기업이 보유한 소부장 핵심 전략기술 고도화를 위해 올해 하반기에 총 264억원, 향후 4년간 총 1,800억원 규모의 전용 연구개발(R&D) 과제를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향후 5년간 실증 평가 등 사업화, 해외 인증 획득 비용 지원 등 사업화 및 수출 단계별 지원책도 우대 지원하며, 포상형(고난도 R&D 성공 시 인센티브), 후불형(상용화 과제) 등 연구개발(R&D) 지원 방식도 다양화한다.

일본과의 공급망 협력, 중국과 ‘외교 단절’ 상황 주의해야

이번 위원회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공급망 분야 협력도 언급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쟁력강화위원에서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으로 형성된 양국 관계 회복의 계기를 소부장 경쟁력 강화의 또 다른 기회로 활용하겠다”며 한국과 일본 양국 공동의 이익이 되는 공급망 분야 협력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우리 경제는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로 촉발된 소부장 공급망 위기를 겪은 바 있다. 당시 우리나라는 반도체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제조에 핵심적으로 사용되는 △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품목의 일본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태였다. 일본은 그간 이 3가지 품목에 대해 일정 기간 한국에 계속 수출할 수 있도록 하는 ‘포괄수출허가’를 유지해 왔으나, 2019년 개별 품목에 대해 승인을 받아야 하는 ‘개별수출허가’로 변경했다. 이에 3가지 품목의 수급 위험이 커지면서 소부장 공급망의 대외 의존을 낮추고 자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담론이 형성됐다.

추 부총리는 이와 관련해 “핵심 품목의 대일 의존도를 완화하는 등 소부장 자립화 기반을 마련했다”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 경색에 따른 양국 간 협력 감소는 대외 불확실성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양국은 주요 글로벌 공급망 이슈에 대한 정보 공유 등을 통해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첨단·초임계 소재 등 신소재를 양국 산학연이 공동 개발하는 등 협력 분야를 발굴할 방침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우려가 뒤따른다. 정부는 충분히 소부장 자립화 기반을 마련했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아직 일부 소재에 대한 자체 생산 능력이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 수출 규제로 인해 문제가 되었던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등은 어느 정도 국산화가 이뤄진 상태다. 후성, 램테크놀러지 등 원래 불화수소를 생산하던 기업이 고농도의 불화수소를 만들기 위한 R&D를 진행하고 있으며, 불화폴리이미드 연구는 난도가 높지 않아 현재 대부분 국산화가 완료됐다.

다만 포토레지스트 등 일부 소재는 국산화에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쎄미켐, 금호석유화학이 10㎚급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하고 있지만 점유율이 낮고, 극자외선에 반응하는 포토레지스트 개발 능력은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소재의 완전한 국산화를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준비 수순을 밟아야 한다. 완전히 공급망 자립을 이루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눈앞에 닥친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 산업계가 중국과의 외교 단절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소재 개발을 하는 중소기업은 가뜩이나 소재 연구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늘 위태로운 상태다. 일본과의 협력으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이들 소부장 기업이 피해를 입고 휘청일 가능성이 큰 셈이다. 정부는 2021년 중국발 요소수 대란처럼 중국과 외교 단절로 인해 소부장 기업들이 겪을 수 있는 피해를 충분히 고려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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