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패권 시대의 특허분쟁, 휘말릴 것인가 대응할 것인가 ①

혁신 제품 개발하고도 특허분쟁으로 이도 저도 못하다 파산하는 경우↑ 특허권자에게 경고장 날아오면, 특허 검토·소송의도 파악·대처 모색 등 대응 필요 대응 골든타임 놓쳐 특허에 대한 고의침해 의심·손해배상·형사소송 않도록 주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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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특허청과 한국지식재산보호원이 해외 진출 과정에서 수출기업이 반드시 알아야 할 특허침해 경고장·소송 초기 대응 및 사전 대비 방법 등을 담은 ‘수출기업을 위한 특허분쟁 대응 가이드’를 발간했다.

최근 무역분쟁을 넘어선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심화, 특허 수익화 전문기업(일명 ‘특허괴물’)의 공격 확대 등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특허분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여파는 국내 중소기업에도 미치고 있는데,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전문인력, 자금 등 특허분쟁 대응 역량이 부족해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뿐만 아니라 미숙한 초기 대처로 소송 기간 내내 상대방에게 이끌려 다니거나 납품 계약에서 독소조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뒤늦게 낭패를 보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 방안 마련이 요구됨에 따라, 특허청과 한국지식재산보호원은 먼저 이번 가이드를 통해 수출기업에 특허에 대한 소송장이 날아와 수출기업이 소송전에 실제로 임하게 될 때의 대처법, 타사에서 특허를 침해했을 때 대응법, 그리고 제품 개발 및 수출 시 특허분쟁 사전 대비법 등을 자세히 안내했다.

사람 부족·자금 부족으로 패배하는 중소기업의 특허분쟁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산업재산권 관련 소송 경험이 있는 기업 794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응답한 101곳 중 59.4%가 중소기업으로, 산업재산권 소송 경험 기업 중 중소기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침해당한 분야는 특허 분야(48.6%)가 제일 많았으며, 이후 상표권(27%), 디자인(19.6%), 실용신안(4.7%) 순이었다. 나날이 지식재산권 분쟁은 늘어나고 있지만 중소기업 특성상 자금과 대응할 인력이 부족한 탓에 이를 전담하는 부서를 갖추고 있는 기업은 28%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중소기업이 지재권 분쟁 사전 예방 활동이 없거나(31.7%) 예방 활동에 대해 알지 못하는(13.3%) 비율이 타 기업 유형보다 높게 나타났다.

자체 기술력을 지키지 못해 엄청난 수익을 놓친 대표적인 사례는 MP3 플레이어 원천 특허다. 1997년 국내 벤처기업인 ‘디지털캐스트’는 최초로 스마트폰과 같이 디지털 파일로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오디오 플레이어인 MP3 플레이어를 개발했다. 디지털캐스트는 연구개발과 사업화 비용이 부족한 상황에서 국내 한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인 ‘엠피맨’을 출시해 관심을 받았지만, 국내 기업 간 유사 제품 출시와 특허 무효 소송을 거치면서 국내 특허는 권리 범위가 축소된 후 결국 특허료 미납으로 소멸했다. 즉 우리 기업 간 분쟁으로 국내 특허는 소멸되고, 해외 특허는 미국 특허괴물에 인수돼 국내 기업들이 오히려 라이센스료를 지불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특허권자가 특허침해가 발생한 것을 확인한 경우, 특허소송을 제기하기 전 특허 침해자에게 서면으로 경고장을 발송해 자신의 특허가 침해당했음을 주장하면서 특허침해 행위의 금지 및 금전적 손해배상 등을 요구한다. 이들이 경고장을 먼저 발송하는 이유는 로열티 징수, 손해배상, 침해행위 중단 등에 대한 협상을 끌어내기 위한 목적이 크며 대부분은 소송 비용과 특허 무효 가능성 때문에 소송 전 협상을 통해 로열티 징수 등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특허분쟁 중 특허가 무효화되거나 흠집이 나는 경우를 사전 차단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경고장에 대한 강력한 초기 대응이 중요하며 특허권자에게 특허분쟁 리스크가 크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신속하고 유리하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

특허침해 경고장을 수령했을 때, 이성적 판단·빠른 초기 대응 필요

만일 특허권자로부터 경고장을 수령했을 경우 경고장을 신속하게 분석해 ▲특허의 권리 사항 확인 ▲특허권자의 요구사항(경고 의도) 검토 ▲자사 제품의 특허침해 여부 판단 ▲특허 무효가능성 검토 ▲회피 설계 검토 및 시도 ▲분쟁 대상 제품의 판매량(매출액) 등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회신을 준비해야 한다.

특허의 권리 사항을 확인할 때는 경고장 발송자가 특허권자 등 정당한 권리자인지 특허권의 양수 관계를 확인하고 특허권 유지료(연차료) 납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만일 발송자가 전용실시권이 아닌 통상실시권만 가졌을 경우에는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또 자사가 직접 계약 또는 납품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이미 경고장에 기재된 특허에 대한 실시권을 가졌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특허권자 요구사항 및 경고 의도를 검토할 때는 물론 특허권자의 성향도 파악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특허권자가 이미 다른 기업과도 소송을 진행 중인지 확인하고 그렇다면 그 의도가 무엇일지 짚어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이에 더해, 경고장에 기재된 내용 중 특허 번호, 침해 제품, 침해 사실의 주장 등이 불명확하다면 1차 회신 때 해당 부분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요구해야 한다.

특허침해 여부를 판단할 때는 특허법상 ‘구성요소완비의 원칙(AER: All Elements Rule)’에 따른 침해 및 출원 경과를 참작하여 균등 침해 여부도 검토해야만 하므로, 전문가와 함께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자사의 제품이나 기술, 방법 등이 경고장에 기재된 대로 실제로 특허를 침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선행기술 문헌 조사를 통해 상대방 특허의 무효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상대방 특허에 명백한 무효 사유가 존재하거나 특허가 무효화 되면 특허침해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행기술 문헌 조사는 특허검색서비스(WIPS, Keywert, KIPRIS 등)를 이용하거나 변리사 또는 전문기관(한국특허기술진흥원, WIPS 등)에 의뢰하면 된다. 특허 무효화 가능성이 아예 배제될 경우에는 자사 제품에서 더 이상 특허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회피 설계를 하여 제품을 개량할 수도 있다. 회피설 계란 제품을 이루는 구성요소의 일부를 다른 부품으로 대체하거나 또는 설계를 변경하여 특허침해가 성립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고장 수령 및 분석 단계부터 특허분쟁이 발생한 국가(지역)의 특허분쟁 대응에 경험 있는 유능한 대리인을 선임해야 한다는 사실이며, 대리인 검토 시 분쟁 대상 특허의 기술 분야까지 고려해야 한다. 또 대리인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기업 내에서도 특허분쟁(소송) 전담자를 지정하여 사건의 사실관계, 그간의 협상 과정 등 제반 사정에 대해 정확하게 전달하고 소송에 도움이 되는 추가적인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대리인을 선임할 때는 대리인의 전문 기술 분야, 대리인의 특허소송 경험, 대리인 비용, 상대방 대리인 특성(로펌 규모, 전문 기술 분야 등) 등을 고려해야 하며, 해외 특허분쟁 시 국내 대리인을 통한 현지 대리인 선임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경고장 회신 및 증거보존의 중요성

한편, 경고장을 받은 이후 첫 대응을 어떻게 할지에 관한 부분도 중요하다. 경고장을 수령했다는 사실 자체가 법률적으로 ‘회사가 특허침해 행위를 인지했다는 의미’로 인식될 수 있으며, 첫 대응이 분쟁에 대한 대응 의지를 보여주고, 불필요한 내용이 언급될 경우 리스크가 발생 또는 확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경고장 수령 이후에도 침해 행위를 계속하게 된다면 고의침해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어 손해배상액이 커지거나 한국의 경우 형사처벌까지도 부과될 수 있다.

물론 경고장 회신 이후 상대방으로부터 추가적인 대응이 없다면 대응을 이어가지 않아도 괜찮지만, 2차 경고장이 수신될 경우에는 더욱 철저하게 대응해야 한다. 사건을 빨리 해결하기 위해 라이센스 또는 특허 매입을 희망하는 경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경고장 회신 시 침해를 인정하거나 상대방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겠다는 취지의 답변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특별히 미국은 특허분쟁 중 ‘디스커버리(discovery)’라는 증거 제출 절차를 밟는다. 경고장 수신자가 증거보존 조치를 적절히 수행하지 않으면 증거 훼손으로 간주하여 징벌금을 부과받거나 불리한 추정이 내려질 수 있고, 원고의 청구를 그대로 인용하는 판결까지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미국 기업과의 분쟁이 일어났을 경우엔 증거보존 조치를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 더불어 경고장에서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특허와 관련된 제품의 개발자, 특허 담당자, 영업·마케팅 담당자 및 주요 임원 등을 대상으로 특허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을 고지하고, 발생할 특허소송과 관련된 자료의 수정, 훼손 또는 폐기를 금지한다는 보존의 의무를 통지해 구체적인 이행 방법 등을 알려 조치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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