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후 지하철 사고’ 위험성 알린 서울교통공사, 관련 법안 처리는 ‘지지부진’
지하철 내 주취자 수 증가, 코로나19 엔데믹 영향 감정노동 피해 사례도↑, 공사 “음주 범법 행위 엄단 내릴 것” 경각심 높이려면 하루빨리 관련 법안 처리돼야
25일 서울교통공사가 종로3가역에서 대한노인회·한국승강기안전공단과 합동으로 홍보 행사를 열고 음주 후 지하철 사고의 위험성을 알리며 직원 대상 폭력 방지를 호소했다. 이날 참여한 인원은 공사 직원 13명, 유관기관 13명(대한노인회 9명, 한국승강기안전공단 4명)으로 총 26명이었다. 이들은 인근 가게에서의 음주가 잦은 탑골공원 근처 1·5번 출구 및 역사 내 1·3호선 환승 통로에서 현수막과 안내 피켓 등을 활용해 음주 후 주의해야 할 점을 포함한 올바른 지하철 이용 예절을 알렸다.
지하철 주취자 수↑, 관련 사고도 끊이지 않아
최근 주취에 의한 사고는 코로나19 엔데믹에 따른 지하철 이용객 증가로 작년 동 기간 대비 눈에 띄게 증가했다. 특히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에서 주취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손잡이를 제대로 잡지 않고 이동하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져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에스컬레이터 및 계단에서의 전도 사고는 본인뿐 아니라 함께 이동 중이던 타인까지 말려들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기상천외한 이상행동을 보인 사례도 많았다. 역사 내 비치된 소화기를 갑자기 분사하며 난동을 부리는가 하면, 아무 이유 없이 고객안전실에 들어와 문 앞에 주저앉아 귀가를 거부하며 역 직원의 업무를 방해한 이도 있었다. 또 혹자는 대합실 바닥에 대변을 눈 채 그대로 쓰러지는 기행을 선보이기도 했다.
주취자에 의한 역 직원과 지하철 보안관들의 폭언·폭행 피해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2020년부터 2023년 4월까지 지하철 직원이 주취자로부터 폭언·폭행 피해를 입은 사례는 총 272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전체 폭언·폭행 중 주취자가 원인인 비율은 2023년 4월 기준 65.5%로 2020년 31.2%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한 예시로 지난 4월 8일 만취 상태로 2호선 신도림역 승강장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던 남성이 이를 제지하던 역 근무자들을 넘어뜨리고 목을 조르는 등 폭행을 가한 바 있다. 당시 남성은 욕설을 내뱉고 담배 연기를 근무자의 얼굴에 내뿜는 등 모멸감을 느낄 만한 행동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통받는 지하철 직원들, “밥조차 먹기 싫을 정도”
이처럼 주취자들의 ‘이상 행동’으로 고통받는 건 다름 아닌 지하철 직원들이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지하철 내 토사물 관련 민원은 총 1만3,928건 접수됐다. 하루 평균 약 13건에 달하는 정도다. 토사물은 악취와 미관 저해뿐 아니라 이용객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다. 승객이 토사물을 미처 보지 못하고 밟아 미끄러질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토사물을 닦아내야 할 직원들의 피로감도 만만치 않다. 이와 관련해 공사 내 한 직원은 “바쁜 역은 하루에만 20건 이상 토사물을 처리할 때도 있다”며 “토사물을 생각하면 밥조차 먹기 싫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서울교통공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역 직원이 당한 감정노동 피해 사례는 연간 176건, 월평균 14건에 달한다. 가장 많은 유형은 역시 취객들의 폭언·폭행이었다. 술에 취해 역사나 지하철 내부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기물을 파손하고 이를 제지하는 직원에게 모욕적 언행과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실례로 열차 운행 종료 후 한 취객이 ‘왜 벌써 지하철 운행이 끊겼느냐’며 직원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등 주취로 인한 사건이 쉬지 않고 발생한다.
이에 공사는 지난 2020년 2월 ‘감정노동보호전담 TF’를 신설, 총 38건의 사건을 지원했다. 공사는 감정노동 피해를 겪은 직원을 곧바로 업무에서 분리해 심신에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하고 병원 진단서 발급비·치료비 등 금전적 지원을 병행했다. 가해자 처벌을 위한 고소·고발도 지원했다. 공사는 앞으로도 음주 예절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감정노동 피해가 발생할 경우 주취자에 대한 엄단을 내릴 방침이다.
음주 시 가중 처벌 법안 제출됐지만
이와 관련한 법안도 제출됐다. 음주 상태 범죄의 경우 형법에서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다액에 2배까지 가중 처벌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현행 형법 제10조 제1항 및 제2항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인한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인 상태가 된 경우 그 행위를 처벌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하고 있다. 현재 법원은 해당 규정을 근거로 술에 취한 경우 사물 변별 또는 의사결정 능력이 아예 없거나 미약했음을 인정해 형을 감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발적 음주 행위는 ‘자의적’으로 심신장애를 유발하는 행위다. 술에 취했단 이유로 형을 감면하는 것은 법적 책임주의에 걸맞지 않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법이란 소리다. 이와 관련해 최준식 국민의힘 의원은 “자의적 음주 행위 시 형법상의 각 죄에 따른 형을 가중 처벌해야 한다”며 “자발적으로 자신을 책임능력이 없도록 만든 개인 당사자의 ‘사전적 고의 또는 과실’ 또한 형벌의 대상으로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하철은 모두가 이용하는 공공시설이다. 그런 만큼 만취 승객 한 명의 부주의로 인해 다수 이용객에게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지하철 직원과 승객의 참을성은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다. 주취자의 악질적 만행을 더 이상 좌시해선 안 된다. 현재 음주 시 가중 처벌 법안은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다. 법안 통과가 신속히 이뤄져 음주 시 범법행위에 대한 경각심이 한층 높아지기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