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양대노총의 줄다리기, 취업자 대다수 노조 회계 공시에 찬성 뜻 밝혀

고용부 설문조사, 취업자 1,000명 중 88% ‘노조 회계 공시 찬성’ 규탄 이어가는 한국노총·민주노총 vs 건강보험 재정운영위에서 배제한 정부 1980년대 군대식 문화와 이기주의 답습한 현 노조, 이제는 ‘새로고침’ 필요해

160X600_GIAI_AIDSNote

고용노동부에서 노조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대다수가 정부에서 노조에 요구한 회계 공시에 응해야 한다고 밝혀졌다. 이같은 상황에 양대 노총은 강력히 규탄하고 있으며, 정부 역시 보건복지부 재정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양대 노총을 배제하고, 비난하는 등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고용부, “노조에 부과한 회계 공시, 세액공제와 연계하면 응할 것” 의견 대다수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9~21일 코리아데이터네트워크에 의뢰해 취업자 1,000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웹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8.3%가 ‘노조도 세제 혜택을 받고 있으므로 다른 기부금 단체 수준으로 공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23일 밝혔다. 이어 고용부는 노조 조합원 186명을 대상으로 추가 의견수렴을 진행했으며, 그중 160명이 응했다. 이들 중 48.1%는 ‘노조에서 조합비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으며 46.3%는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 ‘노조가 회계를 공시해야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에는 전체의 89.4%가 찬성의 뜻을 전했으며, 전체의 70%가 정부에서 노조 회계 공시와 세액공제를 연계하면 노조가 회계를 공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3일 고용부는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노조가 사실상 국민들의 세금으로 활동을 지원받고 있다며 노조도 다른 기부금 단체처럼 공공성·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회계 공시와 세액공제를 연계하는 방안을 노동 개혁특위에서 발표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노조 회계 투명성은 조합원의 알권리와 신뢰를 토대로 한 자주성과 민주성을 위한 필수 전제로, 그렇지 않은 노조에 재정 등 국민 세금이 쓰이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설문 결과 등을 토대로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관련 법령을 조속히 개정해 노조 회계 투명성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고용부는 윤석열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노동 개혁’을 위해 근로 시간 제도·임금체계 개편과 함께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또 회계에 관한 서류 비치·보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현장 조사를 거부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37개 노조에 대해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따라 최고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오는 3분기에는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정부와 노조의 한판 승부, 양대 노총 복지부 재정운영위 첫 배제

한편 고용부는 조합원이 1,000명 이상인 노조를 대상으로 지난 2월 1일부터 노조법 제14조의 서류 비치·보존 의무 준수 여부를 자율점검하고 2월 15일까지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하지만 대다수 노조, 특히 민주노총의 서류 미제출률이 높아 고용부에서 14일의 시정 기간을 부여했음에도 여전히 조직적으로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일부 노조는 정부에 행정관청의 일률적인 보고 요구는 매우 위법하며, 회계자료는 제3자인 행정관청에 제공할 의무가 없음 등의 의견을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용부는 노조법 제27조에 따라 행정관청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보고를 요구할 수 있으며 헌법재판소도 정부의 보충적 감독권의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답변했다. 그런 만큼 미제출 노조에 대해서는 현장 행정조사를 실시하고, 회계 투명성을 위한 기본적인 책무조차 이행하지 않는 노조에 대해서는 위법 사항을 끝까지 확인하여 법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고용부의 과태료 부과 발표에 대해 “정부의 보고 요청 자체가 부당한 행정 개입이기 때문에 응하지 않을 것이며,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따라 이의 제기 절차를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정했다.

정부는 이러한 노조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회계 공시 이슈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5일 건강보험 재정운영위원회 위원 추천 대상에서 양대 노총을 배제한 채 재정운영위를 진행했다. 양대 노총은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를 대표해 지난 20년간 역대 정권과 관계 없이 재정운영위에 참여해 왔다. 이처럼 위원회를 구성할 때 양대 노총을 배제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함께 건강보험 재정운영위원회 1차 회의가 열린 서울 마포 서울가든호텔 회의장을 찾아가 운영위 졸속 강행을 규탄하고 항의했다. 건강보험 재정운영위원회는 병·의원 등 공급자 단체와의 요양 급여비용의 계약을 비롯해 건강보험 재정 전반을 심의·의결하는 위원회로 건강보험 가입자의 책임과 역할이 막중한 거버넌스다.

한성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양대 노총은 지난 20년간 어떤 보수정권에서도 배제되지 않고 직장가입자를 대표해 재정운영위 가입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그런 양대 노총을 운영위에서 배제하고 존재를 지우겠다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윤석열 정권의 코드와 맞추겠다는 의도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재정운영위 전체 회의를 즉각 중단하고 운영위원을 재위촉해서 정상적으로 회의를 운영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청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와 재정위원회 간사는 ‘회계 관련 의무 준수 여부’로 인해 배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대 노총이 회계 공시를 이행하지 않아 ‘노동조합법에 따른 법정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단체’로 규정해 법을 어겨 운영위 자격이 박탈됐다는 것이다.

이에 김흥수 공공운수노조 사회 공공성 위원장은 “정부는 헌법에 보장된 노조를 설립할 권리를 ‘감시’하기 위해 회계자료를 요청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재정운영위는 건강보험의 재정을 판단하고 확인하는 자리인데 법원에서 다투는 회계자료 제출 및 투명성과 같은 전혀 관계없는 일에 행정 차별을 가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변희영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도 “오늘 회의가 끝나기 전 운영위원 선정 절차를 정상화하기 위한 문제를 기타 안건에 넣어 논의해야 한다. 벌써 두 명의 위원이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자리를 떴다. 그것 자체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면서 “양대 노총이 직장가입자를 대표해 이 자리에 앉는 데는 이유가 있다. 300만 명의 직장가입자의 대표성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배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회계 공시 찬성하는 노조 등장, 시대 변화에 노조에서도 발맞춰야

회계 공시 이슈로 인해 정부와 노조가 대립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노조의 이기적인 행태를 두고 시대 변화에 맞춰 투명성과 공정성을 키워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사무연구직, 일명 화이트칼라 직종 노동자를 대상으로, 다소 젊은 나이로 구성된 새로운 노조 협의체가 출범하기도 했다. 지난 2월 21일 발대식을 갖고 정식 출범한 ‘새로고침’은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같은 총연합(상급)단체라기보다는 개별 노조끼리 의견을 교환하는 협의기구에 가깝다. 하지만 지난 4월 서울교통공사 영업본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근로자 대표로 양대 노총이 아닌 올바른노조(새로고침 휘하) 소속의 허재영 후보가 당선되며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일부 관계자들은 MZ세대, 20·30세대들이 직장 내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민주노총, 한국노총에 대한 반발심이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월 21일 서울 용산구 동자아트홀에서 발대신을 연 새로고침 협의회. 왼쪽부터 김우용 부산관광공사 열린노조 위원장, 김한엽 금호타이어 사무직노조 위원장, 박재민 코레일네트웍스 본사 일반직노조 위원장,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노동조합 위원장, 송시영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위원장, 전승원 LG에너지솔루션 연구기술사무직노조 위원장, 백재하 LS일렉트릭 사무노조 위원장, 이동훈 한국가스공사 더 코가스 노조 위원장/사진=새로고침 협의회

새로고침은 공식 출범 이전부터 ‘상식’이라는 메시지를 내세웠다. 그동안 양대 노총이 운영하는 노조가 상식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새로고침은 양대 내총을 의식한 듯 정부에서 요구한 회계 공시 여부에 찬성하며 모든 자료를 상세하게 공개하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들에 대해 양대 노총의 대안이라고 언급하며 MZ 노조라며 새로운 시대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고용노동부는 새로고침 협의회의 출범 이후 ‘노동단체 지원 사업’에서 사업 예산 44억원 중 절반(22억원)을 신규로 참여하는 단체에 지급하도록 개편하기도 했다. 아울러 지난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새로고침 관계자들과만 만남을 갖고 “정치적 이념 없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노동운동에 동의한다”며 “앞으로 노동운동이 근로자들의 권익향상을 위해서 올바르게 나아가도록 애써달라“는 응원의 말을 전했다.

이번 고용부에서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는 노조 입장에서도 다소 당혹스러운 결과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 ‘N86’이 주축으로 활동했던 노조들이 다소 이기적인 형태의 쟁의와 투쟁에만 몰두해 있었던 모습에 대한 시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무작정 금식하고 목소리를 내는 항의 방식이 아니라 정부와 소통하고 사측과 합리적인 결론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말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