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학생 두 번 울리는 가해학생 ‘행정소송’, 법률적 제도 개선 나서야

학폭 조치에 불복한 가해자들 소송하는 동안 PTSD, 공황장애 시달리는 피해자들 가해자 행정심판 인용률 높은 이유, 가해학생 학습권 보장을 더 중시한 결과 가해자 대입 반영 제도 개선하고, 불복 쟁송 기간 단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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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에 대한 조치에 불복해 행정 소송 등을 진행하며 ‘시간끌기 작전’을 시도하는 가해학생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10일 국회입법조사처(이하 입법처)는 ‘학교폭력 가해학생 분리조치 집행 지연의 쟁점과 과제’라는 현안분석 보고서를 발간하고, 가해학생에 대해서는 대입 결과를 재산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입 불이익 최소화 위해 ‘소송’으로 시간끄는 가해자들

학교폭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다.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치명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우울, 불안, 원망과 같은 감정을 가지며 정서적으로 고통 받고 있다. 특히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고, 가해학생이 진정으로 뉘우치지 않는 탓에 피해학생의 회복과 안정이 적시에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순신 아들 사건’도 이와 같은 사례다.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정씨는 동급생을 상대로 학폭을 가해 2018년 3월 ‘강제전학’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정 변호사와 정씨가 강제전학 처분에 대해 재심 청구, 행정심판 본안 및 집행정지, 행정소송 본안 및 집행정지 등을 연이어 신청했고, 이 과정에서 전학을 거부하며 시간끌기를 한 것으로 알려져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이 때문에 대법원판결이 나올 때까지 징계가 미뤄졌고, 약 1년 뒤인 2019년 2월에야 전학 조처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대법원판결 직전에야 타 시·도로 전학을 했으며, 학교폭력에 따른 강제전학이 아닌 일반전학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가중시켰다.

그 사이 피해학생은 대법원판결이 나올 때까지 학교에 가지 못하거나, 등교했더라고 보건실이나 기숙사로 피해 자체적으로 가해자와 분리됐어야 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피해학생은 우울증, PTSD, 공황장애에 시달렸지만, 가해자인 정씨는 정상적으로 학교 수업을 받았고, 정시를 통해 대학에 입학하는 등 피해학생과는 대조적인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공분을 샀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는 「학교폭력예방법」의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중 ‘피해학생 및 신고·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조항이 제대로 이행되기는 어렵다. 특히 학폭위 처분 중 엄벌에 해당하는 8호 강제전학 조치에도 가해학생을 제대로 분리시키지 못하는 현실에서 피해학생의 보호 및 회복은 거의 불가능하다.

학교폭력 및 법적 쟁송 현황

초·중·고교 합계 학교폭력 심의 건수는 2018년 32,632건, 2019년 31,130건이며, 코로나19 발생 및 교육지원청으로의 심의위원회 이관이 이뤄진 2020년엔 6,842건으로 크게 감소했다가 2021년 11,815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2022학년도 1학기 역시 9,796건으로 전년도 1학기에 비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학교폭력 피해학생 수는 2018년 39,478명, 2019년 40,411명으로 조사됐다. 심의 건수와 마찬가지로 2020년에는 13,425명으로 크게 감소했으나, 2021년 20,682명으로 다시 증가했고, 2022학년도 1학기도 14,037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증가 추세다.

가해학생이 선도·교육조치에 대해 불복해 법적 쟁송으로 가는 경우는 행정심판, 행정소송, 집행정지 등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학폭 가해학생 행정심판 청구 건수는 2020년 480건에서 2022년 889건으로 증가했으며, 행정심판 집행정지 신청 건수도 같은 기간 273건에서 504건으로 1.8배를 상회했다. 행정소송 청구 건수의 경우 2020년 111건에서 2022년 265건으로, 행정소송 집행정지 건수는 73건에서 145건으로 증가했다. 각각 2.4배, 2.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불복 조치 건수는 매년 늘어나는 반면, 가해학생의 행정심판·소송 인용률은 오히려 낮아졌다. 가해학생 행정심판 인용률은 2020년 17.7%에서 2022년 11.7%로 줄었으며, 행정소송 인용률도 11.7%에서 4.9%로 감소했다.

법적 쟁송 남발과 장기화로 피해학생 보호 미흡 및 가해학생 분리 집행 지연

일각에서는 가해학생에 법적 대응에 대해 보장된 법적 권리를 행사한 것뿐이며,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가 법원에서 확정되기 전까지는 교육적 측면에서 학습권 보장을 위한 최선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해학생의 법적 쟁송 권리와 학습권을 보장하는 사이 피해학생은 학업은 물론, 인생 전반에 걸쳐 심각한 피해를 받고 있으며, 평생 안고 가야 할 충격과 피해가 가늠조차 안 되는 상황이라는 점을 비춰볼 때 대처가 미흡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순신 아들 사건을 학교폭력 현장의 특별한 사례로 보기는 어렵다. 가해학생이 선도·교육조치에 대해 불복해 행정심판을 청구한 건수는 2022년에만 889건이며, 집행정지 신청 건수도 504건에 달한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행정심판 본안 및 집행정지, 행정소송 본안 및 집행정지 건수 모두 증가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해학생 행정심판 집행정지 인용률은 2020~2022년에 49.9%~59.3%로 조사됐으며, 가해학생 행정소송 집행정지 인용률은 2020~2022년 기준 60.0%~67.1%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학생의 행정심판 집행정지 인용률이 높은 이유는 가해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로 인해 피해학생으로부터 가해학생 분리가 적시에 이뤄지지 못한 탓에 되레 피해학생의 삶과 학습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보다 적극적인 점검과 개선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특별시교육청 관내 학교의 2021년 행정소송 건에 대한 조치이행 완료 기간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불복절차로 인해 최대 23개월이 소요된 건이 1건이며, 12~16개월이 소요된 사례도 7건으로 집계되는 등 장기간 불복절차가 진행되는 사례가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학생이 오랜 기간 폭력에 시달리다 뒤늦게 신고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점을 고려했을 때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폭력을 당하다가 2학년에 신고하면 고3 대학입시가 끝나고 나서야 소송이 끝난다는 의미다.

문제는 또 있다. 가해학생측이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 등을 제기한 경우 해당 교육지원청과 학교, 법원 등이 피해학생 및 보호자에게 가해학생측의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 등을 제기한 사실을 알리도록 하는 법적 근거도 미흡하다. 이로 인해 피해학생측은 가해학생측의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 등의 진행 과정을 알 수 없음은 물론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 집행정지 등의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진술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된다.

가해학생 불복 쟁송 기간 줄이고, 소송 사실 피해학생에게 알려야

입법처는 가해학생 분리조치 및 이행 지연의 문제를 개선하고 피해학생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입법적·정책적 개선과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먼저 행정심판·행정소송 운영 개선 등 가해학생 불복 쟁송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 이에 교육부장관과 시·도교육감은 정책을 마련하고, 필요한 조직과 인력, 예산을 확충하도록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의2에 항을 신설하는 법률 개정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가해학생측의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 집행정지 등의 과정에서 피해학생측의 의견을 적극 청취해 참고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대입 반영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대입·고입 전형 과정에서 학교폭력 관련 법정 쟁송 중인 지원자는 사전에 대학·고교에 서약서를 제출하고, 쟁송 진행 사항을 스스로 기재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입학 이후라도 미 기재 등 허위 사실이 드러나거나 소송 종결 결과가 나올 경우 이를 반영해 입시 결과를 엄격하게 재산정할 필요가 있다. 이로써 동일하거나 유사한 학교폭력 조치를 받은 가해학생들 간에 법적 쟁송 제기 여부와 쟁송 기간, 대학·고교 입시 시점 등에 따라 불이익 여부가 달라지는 형평성 문제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 분리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학교장의 긴급조치 기간을 연장하고,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4항을 개정해 학급교체를 긴급조치에 포함시키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동법 제17조를 개정해 피해학생의 요청 시 학교장이 일정기간 내 출석정지를 추가할 수 있는 입법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입법처는 시·도교육청과 협력해 교내봉사와 사회봉사가 학교폭력 가해학생 선도·교육 조치라는 점을 용어에 반영함으로써 스스로 성찰하고, 피해학생의 피해회복을 위해 협조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폭력 근절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가해·피해학생의 분리 조치를 강화하고 대입 반영 제도 개선 방안을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한편으로는 억울한 사례를 낳는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특히 즉시 분리 조치를 당한 가해자가 되레 보복 신고를 하는 등 역기능도 배제할 수 없으며, 피해자가 오히려 격리 대상으로 분류돼 가해자로 몰리는 상황도 간과할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학폭 신고 초기부터 즉시 분리가 이뤄질 경우 사실이 명확히 밝혀지기도 전에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이 폭력행사자로 낙인찍힐 위험도 있다. 섣부른 판단은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하는 만큼, 적용 예외 조항을 추가하는 등 법률적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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