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도전보다는 소확행 원하는 한국, 미래 발전 위해 이제 변화돼야 할 때
국회 미래연구원, 좋은 사회 대전환 위한 국가적 비전 제시 ‘도전분배 사회’ 좋은 사회란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과 충분한 기회, 그에 따른 행복 있어야 한국인의 ‘위험회피 성향’을 ‘도전성향’으로 어떻게 전환하나? 이것이 과제
국회 미래연구원은 22일 미래 이슈에 대한 브리프형 심층 보고서를 통해 한국인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하나의 성공 공식만 따라가는 위험회피적인 선택을 하는 특성 때문에 사회가 획일화된 탓에 진짜 ‘성공’을 하는 사람들이 적어 행복감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좋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조건으로 행복 증진이 필요하며, 행복 증진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현곤 국회 미래연구원장은 한국 사회를 좋은 사회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성공을 지지하는 사회’를 국가미래상의 하나로 확립한 싱가포르와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는다’는 교육철학을 정립한 핀란드를 벤치마킹 사례로 제시하기도 했다. 또 대한민국의 좋은 사회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으로서 ▲5천만 개의 꿈을 꾸는 개성사회로 대전환 비전 ▲개성사회 촉진을 위한 과감한 교육개혁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기회 제공 등의 세 가지 새로운 정책을 제안했다.
기회 부족한 한국 사회, ‘쏠림’으로 가득 찼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레인 켄워시(Lane Kenworthy) 교수는 2021년 ‘사회 민주적 자본주의(Social Democratic Capitalism)’에 대한 연구에서 북유럽에 비해 한국은 자유로운 선택이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좋은 사회에 대한 조건으로 ‘행복’과 ‘기회’를 강조했으며, 행복에 비해 기회가 의도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으므로 사회에 기회를 많이 만들고 사회 구성원들이 기회가 많다고 인식하도록 할 때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국회 미래연구원(이하 미래연구원)은 22일 ‘국가 미래 전략 Insight – 좋은 사회로의 대전환, 쏠림 사회에서 개성사회로(제69호)’ 보고서를 통해 한국 사회의 쏠림현상에 관해 기술하고 좋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개성이 살아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우리 사회의 쏠림현상에 대해 수도권 쏠림, 학교(전공) 선택의 쏠림, 직업 선택의 쏠림, 인프라 쏠림 등 다양한 사례로 기술했다. 대표적으로 국토 면적의 약 12%에 해당하는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50%가 넘는 2,600여만 명이 살고 있는 수도권 쏠림 현상은 올해 118곳의 지방 소도시가 지방소멸 위기에 처한 위기를 드러내고 있어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기도 했다.
미래연구원은 우리 사회가 너무 단일화되고 획일적인 성공기준만을 추구해 왔기 때문에 쏠림현상이 격화됐다고 분석했다. 학생이라면 본분을 지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인식과 비슷하다. 또 1970년대부터 아주 오랫동안 국가 경제성장과 외적 성장을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난 속에서 개인과 사회의 목표는 ‘경제적 여유’였기 때문이다. 끝으로 개인보다는 집단, 조직, 국가가 우선시 된 풍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회 운영이라는 거대한 목적 아래 정부와 소수 엘리트 집단은 개인 차이까지 고려할 수 없었다. 그 결과 개개인을 존중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율이 마음껏 발현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는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채 반세기 이상이 흐른 것이다.
패러다임 변화, MZ세대 등장은 ‘좋은 사회’ 위한 것?
2000년대 들어 저성장 경제가 지속됨에 따라 우리 사회에 새로운 기회는 많이 없어졌지만, 대다수 사회 구성원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등과 같은 제한된 수의 동일한 기회를 같이 원하고 있다. 김현곤 국회 미래연구원장은 “지금의 대한민국은 기회 축소사회이자 기회 쏠림 사회”라며 “특정 기회의 수가 제한된 상황인데 모두가 그런 기회를 얻기 원한다면 사회 자체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다양한 기회와 다원화된 가치를 추구할 수 있을 때 지속 가능한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의 패러다임은 쏠림 사회에서 개성사회로 변화돼 간다. 특히 최근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MZ세대의 등장이 이를 방증한다.
M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합쳐 부르는 말로, 1981년부터 2010년에 출생한 세대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MZ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즉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을 접해왔으며 가치소비 등을 중요시하고, 타인과의 공유에 자유롭지만, 개인의 개성을 추구한다. 이들의 등장처럼 사회는 복잡다양해졌고 단일화된 성공기준은 유효하지 않게 됐다. 기회의 확장을 위해 다원화된 성공기준이 필요하다. 또 경제성장을 넘어 사회의 질적 성장, 공동체 성장, 정신적 성장과 진정한 행복을 함께 추구할 때가 왔다. 그런 내적이고 질적인 성장이 다시 더 나은 지속 가능 경제성장을 가능하도록 하는 새로운 사회자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가, 조직, 집단을 우선시하던 시대를 넘어 각 개인을 존중하고 개인 각자의 꿈과 재능을 키워주는 시대로 발돋움해야 한다. 수도권 집중이 아닌 지역발전(중간점)지방자치 등으로, 집단주의적 문화에서 개인주의적 문화 확산으로, 성장사회에서 성숙사회로 발전이 필요하다.
다만 수십 년을 지배해 왔던 대한민국의 쏠림현상을 단번에 바꿀 수는 없다. 사회적 대충격이 주어지거나 사회적 공감대 형성으로 구성원 전체의 강한 의지와 노력이 지속적으로 있어야만 가능하다. 미래연구원은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분업과 전문화에 있다’는 말과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개성에 맞게 자기 삶을 설계하고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갈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말을 통해 한국 사회의 생존과 미래 사회의 발전을 위해 사회적 공감대가 다시 한번 모여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좋은 사회 위한 싱가포르와 핀란드, 그리고 대한민국
보고서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벤치마킹 대상 국가로 싱가포르와 핀란드의 사례를 제시했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처럼 톱다운 방식의 국가전략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온 대표적인 나라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다르게 2012년부터 ‘싱가포르 국민과의 미래 대화’를 통해 국가전략 접근법을 새로 짜고 있다. 이는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싱가포르 시민들이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묻는 시스템으로, 현재 지속적인 발전을 거쳐 SG Future(싱가포르 미래)라는 브랜드로 진화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시민들과 함께 싱가포르가 지향해야 할 12대 미래상을 정립했다. ▲다양한 형태의 성공을 지지하는 사회 ▲더 충실하고 만족스러운 삶이 있는 나라 ▲강하고 활력 있는 경제 ▲든든하고 건강한 가족 ▲적정한 주거환경 ▲누구나 품위 있게 나이들 수 있는 사회 ▲약자를 돌보는 사회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이 강한 사회 ▲싱가포르인을 위한 나라 ▲정부와 국민이 더 협력하는 사회 ▲가치 기반 사회 ▲역량 있고 믿을만한 정부를 가진 나라가 바로 이 미래상이다. 김 연구원장은 싱가포르처럼 우리나라 역시 국민들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국민이 선호하는 미래상을 선정하고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와 시민이 협력해 좋은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핀란드는 낙오자를 만들지 않는 교육시스템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핀란드의 교육철학은 소프트적 사회 인프라 역할을 성공적으로 감당하고 있다. 1968년 핀란드 의회는 모든 아동과 청소년이 주거지와 부모의 재산 정도에 상관없이 높은 수준의 기본교육이자 의무교육을 9년 동안 받을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해 9년제 종합학교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개인 한 명 한 명의 특성과 역량을 고려한 교육이 이뤄지며,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특정 과목에서 별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그 학생을 위한 특수교사가 할당돼 특별교육이 이뤄진다. 뒤처진 학생에 대해서는 더 많은 기회와 배려를 제공해 낙오자를 방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싱가포르 정부가 정립한 국가 미래상 중 하나인 ‘다양한 형태의 성공을 지지하는 사회’를 핀란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실현해 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두 나라들에 비해 아직 초창기에 머물러 있다. 2019년에 되어서야 미래에 대한 국민 선호 조사를 처음 실시한 것이다. 이 조사를 통해 전국 502명의 시민이 숙의 토론을 거친 결과 ‘도전 분배사회’가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미래 유형으로 선택됐다. 도전 분배사회는 도전과 변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분배와 협력을 중시하는 공동체 사회를 의미한다. 2021년에는 국회의장 직속 자문기구로 설치된 국가중장기아젠더위원회가 주도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국민의 요구를 분석하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향후 15년에 걸쳐 지속 추진해야 할 비전이며, 국가 주도에서 자율과 분권으로 발전하는 사회, 경제성장 중심에서 다원 가치 중심으로 변화되는 사회, 사회적 약자를 우선하는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는 사회를 그림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인 종특, 위험회피 성향과 대치되는 ‘도전 분배사회’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인들이 위험회피적인 성향이 너무 심해 개성사회, 교육개혁 등의 국가 비전이 있더라도 잘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위험회피는 경제학과 금융에서 쓰이는 용어로, 불확실성에 노출됐을 때 그 불확실성을 낮추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말한다. 사회적 용어로 위험회피는 미래 생존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공인되고 가장 확실한 방법만 추구하는 성향을 일컫는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쏠림 현상은 위험회피 성향으로 인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수도권으로 이주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질 수 있다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수도권에 내 집을 마련하고, 문과대에 진학하면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해도 대가를 챙길 수 없다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무조건 의대에 진학해 여유로운 경제활동을 누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에 국가 비전으로 제시되는 ‘도전 분배사회’를 진짜로 이룩하기 위해서는 현재 국민들이 위험회피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수단들을 차츰 제거해 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일례로 소위 ‘철밥통’으로 인식되는 공무원 시험이나 정부 주관 시험으로 이뤄지는 전문직 자격시험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 등이 있다. 다만 한 번에 이러한 수단들을 없애버릴 경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만큼 사회적 안전망 역시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