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의 ‘회계제도 보완방안’ 발표, 주기적 지정제 존치 등 경영계 불만은 여전
2017년 도입된 지정감사제,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 등 일부 개선 추진 감사비용 증가, 지정 감사의 권한남용 등 그동안 업계 불만 상당 주기적 지정 감사제 등 핵심 제도 개선 연기에 경영계선 작심 비판 쏟아져
12일 금융위원회가 ‘주요 회계제도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회계 개혁 평가·개선 추진단에서 논의된 내용 △회계학회 공청회에서 제기된 의견 △회계학회의 연구용역 결과 △금융 발전심의회 자본시장분과 회의에서 있었던 논의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마련됐다.
그간 2017년에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 지정 감사제 등이 도입된 이후 회계 투명성이 제고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편, 기업의 감사 부담이 과도하게 증가했다는 부정적 의견도 지속 제기돼 왔다. 특히 감사 비용 증가와 지정감사의 권한 남용 등으로 경영계의 불만이 상당했던 만큼 지난해부터 금융당국이 추진해 온 회계제도 개선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 전체 도입 유예, 직권지정 사유 일부 축소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 감사는 기업규모와 이해관계자 수를 고려해 도입 시기를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내부회계관리제도(이하 내부회계)란 회계처리를 사전에 규정된 절차와 방법에 따르게 하는 내부 통제시스템으로, 당해 기업의 재무제표를 관리하는 ‘별도 내부회계’와 지주사 및 종속회사를 연결·통합해 재무제표를 관리하는 ‘연결 내부회계’가 있다. 당초 금융위는 별도 내부회계의 경우 2022년까지, 연결 내부회계는 2025년까지 전체 상장사 도입을 완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내부회계의 구축과 운영에 드는 비용이 기존 감사보수의 약 90% 수준에 달해 그간 많은 기업이 급격한 회계 비용 증가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이에 금융위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해선 연결 내부회계를 기존 계획대로 시행하되 2조원 미만인 상장사에 대해선 5년간 유예 기간(2030년 전체 도입)을 주기로 했다. 단,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가 개별적으로 연결 내부회계 도입 유예를 요청할 경우엔 최대 2년간 도입을 미룬다. 또한 연결 내부회계 감사 의견 공시기업에 대해서는 별도 내부회계 감사 의견 공시의무를 면제해 중복 보고에 따른 비효율 우려를 해소하고, 중소 비상장 회사(자산 1천억~5천억원)의 신규 상장 시에는 내부회계 외부감사를 3년간 유예해 비용 부담에 따른 상장 유인 제약을 완화할 방침이다.
감사인 지정 비율이 적정 수준이 되도록 직권지정 사유도 일부 축소한다. 감사인 지정제는 회계 부정 위험 등 지정사유(27개) 발생 시 투자자 보호를 위해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직권지정’과 회계 부정 위험과 관계없이 상장사와 소유·경영 미분리 대형 비상장회사가 6년간 감사인을 자유 선임하면 그 후 3년간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주기적 지정’으로 구분된다. 현재 상장회사 중 지정감사를 수감하는 기업의 비율은 50%에 이르는데, 지나치게 높은 지정 비율로 감사인 간 품질경쟁이 저해되는 데다 지정감사인의 과도한 감사보수 요구 등 권한 남용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위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현행 27개인 감사인 직권지정 사유 중 2개를 폐지하고 14개는 완화할 방침이다. 특히 그간 직권지정 건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재무 기준 미달 사유와 투자주의환기종목 지정 사유를 없애기로 했다. 다만 업계 관심사항이던 주기적 지정제는 시행 후 3년밖에 지나지 않은 데다 아직 정책효과를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당분간 현행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표준감사시간 적용 유연화, 지정감사제 보완
아울러 표준감사시간의 가이드라인으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함으로써 유연한 적용이 가능케 할 예정이다. 표준감사시간은 감사인이 감사투입 시간을 결정하는 지표로, 3년에 한 번씩 표준감사시간 심의위원회를 통해 재조정한다. 그러나 표준감사시간이 법정 최소 감사 시간이 아님에도 일부 지정 감사인들이 표준감사시간을 이유로 과도한 감사보수를 요구함에 따라 기업과 감사인 간 분쟁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이에 금융위는 공인회계사회 회칙 및 행동강령 등 관련 규정에서 표준감사시간이 강행규범으로 오인될 수 있는 관련 조항을 폐지할 예정이다. 또한 표준감사시간 심의위원회(15명)의 중립성 제고를 위해 그동안 공인회계사회장이 추천한 ‘회계 정보이용자’ 위원 규모를 4명에서 2명으로 축소하고 추천기관도 공인회계사회장에서 금감원으로 변경한다. 이와 더불어 감사인이 과도한 감사 예정 시간을 책정한 뒤 높은 감사보수를 요구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감사인이 기업과 합의한 감사시간 산출명세 등 세부 사항을 금감원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한다.
지정감사제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지정감사제와 관련해 그동안 지정감사 권한 남용 행위, 기업의 감사보수 증가 부담 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금융위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거래소 내 중소기업회계 지원센터에 감사인과 기업 간 분쟁 조정기구를 신설하고, 재무기준 직권지정 판단기준을 연결 재무제표에서 별도 재무제표로 변경한다. 또한 동일 사유로 지정감사가 계속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1년~3년의 최소 자유 선임 기간을 보장하고, 지정감사인의 산업 전문성과 감사품질 제고를 위해 적격성이 떨어지는 감사팀을 구성한 회계법인에는 다음 연도 지정감사 지정 시 페널티를 부과할 계획이다.
경영계, ‘핵심’ 빠진 제도 보완에 불만
다만 경영계에서는 금융위의 이번 회계제도 보완방안 발표를 두고 ‘반쪽짜리’라는 불만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주기적 지정감사제를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핵심이 빠져 매우 실망”이라며 작심 비판하기도 했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 부회장도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와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없애달라는 게 경영계 요구 사항이었는데 이 두 제도는 건드리지 않고 다른 것들만 개선안으로 나왔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 역시 “그동안 수많은 논의를 했는데 어떻게 이런 결론이 나왔는지 허탈하다”고 악평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경영계는 지정 감사제 도입 이후 회계 투명성 개선을 체감할 수 없는 데다 감사 비용만 급증해 시장 왜곡이 큰 만큼 아예 폐지하거나 자율선임 기간을 9년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지속 요구해 왔다. 금융위에 따르면 작년 상장회사 한 곳의 평균 감사보수는 약 2억7,500만원으로, 제도 도입 전인 2018년(약 1억3,800만원) 대비 두 배로 뛰었다. 반면 IMD 회계 투명성 평가 순위는 2019년 61위에서 지정감사제 시행 직후인 2020년 46위, 2021년 37위로 2년간 올랐다가 지난해 53위로 무려 16계단이나 내려앉았다. 경영계가 지정감사제 무용론을 제기하는 배경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는 회계학회 연구용역의 실증분석 결과를 토대로 주기적 지정제 이후 감사보수 상승과 감사품질 제고가 동시에 나타났다는 입장이다. 기업의 감사 비용 부담이 있다는 것에는 공감하면서도, 회계 투명성 개선 효과가 없다는 경영계의 주장에는 선을 그은 것이다. 특히 금융위가 금번 계획대로 지정감사제(6년+3년)를 시행한 후 대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한 만큼, 경영계의 불만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