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반도체 초강대국’ 위한 정책금융 및 규제완화 예고
초격차 기술 확보 위한 ‘반도체 연구개발, 설비투자’ 등에 금융지원 ‘메모리 중심’의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시스템 반도체’로 확장 추진 미국 이어 EU도 ‘반도체 법’ 시행, 글로벌 경쟁 심화 예고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국가전략회의에서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이고 국가 총력전”이라며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주문했다. 이번 회의에선 특히 메모리반도체 초격차 유지 전략과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 방안, 소부장(소재·부품·장비)과 기술인력 확보 방안 등이 논의됐다. 다만 일각에선 유럽의 반도체법 시행 등 주요국이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글로벌 경쟁이 심화될 거란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 “반도체 시장 초격차 확보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강조”
산업통상자원부는 8일 윤 대통령 주재로 반도체 국가전략회의 겸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개최했다. 첨단산업에 대한 집중 지원책을 골자로 하는 국가전략회의는 정부는 물론 학계·기업 등 반도체 관련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국내 반도체 산업이 당면한 핵심 화두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민간의 혁신과 정부의 선도적 전략이 동시에 필요하다”며 “기업 투자, 유능한 인재들이 다 모이도록 정부가 제도 설계를 잘하고 인프라를 잘 만들어야 한다. (정부 부처는) 장애가 되는 모든 규제를 없애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이날 회의에선 반도체 산업 육성방향과 관련한 4가지 정책과제가 도출됐다. 먼저 정부는 반도체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해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유망기술 선점을 위한 연구개발을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지능형 반도체(PIM) 설계기술과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사업에 각각 4,000억원, 1조96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전력반도체, 차량용 반도체, 첨단 패키징 등 ‘파괴적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유망 반도체 기술도 선제 확보하기 위해 1조4,000억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를 추진한다.
또한 반도체 투자환경 조성을 위해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정책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투자 세액 공제율을 기존 8%에서 15%로 상향하고 인허가·타임아웃제 용적률 완화 특례 등을 도입한다. 특히 최근 고금리 상황에서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올해 5,000억원을 시작으로 2027년까지 총 2.8조원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
반도체 밸류체인 재편 위해 ‘3,000억원 규모’ 전용 펀드 등 정책지원
정부는 메모리 중심의 국내 반도체 밸류체인을 시스템 반도체로 확장하기 위한 정책도 제시했다. 먼저 국내 팹리스에 대한 시제품 제작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팹리스와 파운드리간 협력 생태계 구축을 위한 상생사업을 강화한다. 구체적으로는 국내 파운드리 기업들과 협의해 팹리스에 대한 시제품 제작 지원(MPW)을 늘리고 파운드리 생산 캐파를 늘릴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나아가 올 하반기에는 3,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전용 펀드(반도체 생태계 펀드)도 출범시켜 소부장 및 팹리스 투자 활성화에 나선다. 해당 펀드에는 유망 팹리스와 소부장 기업의 스케일업을 위한 지분 또는 M&A 투자 활성화를 목표로 운영될 예정이다.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과제도 도출됐다. 해당 방안 중 하나로 소부장 국산화를 위한 신기술 테스트베드이자 우수 인재 양성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할 ‘첨단반도체기술센터’(ASTC) 구축을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 민관 합동으로 추진한다. 아울러 기업과 정부가 공동으로 10년간 투자(2023~2032년, 총 2228억원 규모)하는 현장 수요 맞춤형 인력양성 사업을 올해부터 본격 추진 중이며, 반도체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해 반도체 특성화 대학(원)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공격적 투자 감행하는 주요국들
대통령까지 나서며 반도체 산업 육성을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흔히 이른바 ‘산업의 쌀’로 비유되는 반도체는 TV, 스마트폰, 자동차, 컴퓨터 등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전자기기 대부분의 주요 부품임은 물론 AI, 양자 컴퓨팅, 바이오 등 첨단기술 구현에도 쓰인다. 또 반도체 산업의 경우 국내 수출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또한 최근 관련 기업의 실적 부진이 도드라진 점도 한몫했다.
더 큰 이유는 전 세계가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도체 육성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올해 미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520만 달러 규모의 ‘반도체법(Chips Act)’을 시행했고, 중국 정부도 자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최근 총 430억 유로 규모의 보조금 및 투자를 통해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서는 반도체법 시행에 합의한 바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공급망 재편,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인해 새롭게 재편됨에 따라 글로벌 경쟁 구도가 심화될 거란 지적도 나온다. 국내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시스템이 뒤바뀌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EU의 반도체법은 기존에 보유한 반도체 관련 기술을 바탕으로 생산역량을 늘려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급변하는 반도체 산업·기술 정책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정책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이날 반도체 국가전략회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A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반도체 경기가 전반적으로 둔화되면서 실적 전망이 연달아 하향 조정되고 있다”며 “정부가 이를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정부가 제시한 투자확대와 규제 완화책 등이 차질 없이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