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증빙 해외송금 한도 상향 발표에 ‘반쪽짜리’ 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

기획재정부, 증빙없이 해외송금 가능액 높여 국민 불편 해소 추진 거래외국환은행 지정 등 외환거래 사전신고 원칙으로 불편은 여전 외국환거래법 개정 통해 ‘무신고’ 원칙으로 가야

160X600_GIAI_AIDSNote
사진=게티이미지뱅크

8일 기획재정부가 별도 증빙 없이 해외송금·수금할 수 있는 외환 한도를 연간 5만 달러(약 6,700만원)에서 10만 달러(약 1억3,400만원)로 확대하는 내용의 ‘외국환거래 규정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이번 개정은 지난 2월 10일 발표한 외환 제도 개편 방향의 주요 과제들을 구체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부는 1999년 외국환거래법 제정 당시 만들어진 현재의 한도를 경제 규모에 걸맞게 늘려 외환거래 편의를 제고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5만 달러 이상 해외송금 하려면 은행 찾아가 증빙해야

현행법상 국내에서 해외로 5만 달러 이상을 송금하는 일이 간단치만은 않다. 해외 기업에 취업한 A씨는 회사 인근에 새로 구한 임대주택의 보증금 지급을 위해 주거래 은행에 7만 달러(약 9,300만원) 송금을 요청했으나, 은행은 연 5만 달러 이상을 송금하기 위한 ‘증빙’이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결국 A씨는 국내에 체류하는 동안 해당 해외 거주지의 보증금을 지불하지 못하고 출국 2개월 뒤 A씨 어머니를 통해 7만 달러를 송금받아 새로운 주택을 구해야만 했다. A씨 어머니도 A씨를 대신해 7만 달러를 송금하면서 은행이 요구한 복잡한 서류를 제출하는 등 힘든 과정을 겪어야 했다.

이처럼 낮은 무증빙 해외송금 한도와 복잡한 절차는 유학생, 해외 취업 청년, 해외에 투자하는 기업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은행 외환그룹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외환업무 관련 고객 문의 총 8만 건 중 외환 규정에 대한 문의만 5만여 건으로 66%에 달했다. 이주비나 재외동포 재산 반출, 유학생 송금 등에 관한 개인의 거래 상담이 25%, 해외직접투자 등 자본거래 상담이 38%의 비중을 차지했으며 간단한 송금 관련 문의도 상당했다. 해외 거주에 있어 당장 필요한 생활비, 학비, 거주비 수령조차 은행 상담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은 현행 외국환거래법의 ‘외화 유출 억제 철학’에 기인한다. 전문가들은 경제 규모가 커지고 국민들의 외환거래 수요가 지속해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현행 제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기재부가 이번 송금 한도 확대를 발표하면서 “1960년대 외자 유출을 억제 및 통제하기 위한 과도한 외환 규제가 국민·기업·금융기관의 외환거래 불편을 키우는 등 경제 전반의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도 상향에도 불편 여전, 사전신고제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기재부의 외화제도 개선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사실상 진정한 의미의 무증빙 거래, 즉 아무런 자료 제출이나 은행 방문 없이 해외에 송금할 수 있는 한도는 건당 5천 달러(약 67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거래외국환은행을 지정하고 거래 내용을 은행에 설명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연간 해외송금 한도를 5만 달러까지 확대해 주고 있다. 결국 기재부가 해외송금 한도를 상향했음에도 거래외국환은행을 지정하거나 은행에 송금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불편함은 전혀 해소되지 않은 셈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국환거래법의 ‘자본거래 사전신고 원칙’을 개선해야 한다. 현재는 모든 자본거래 및 외환 지급·수령 단계에서 거래의 규모·상대방·국경 간 자금 이동 등의 차이에 따라 신고 여부, 신고 주체와 접수 기관을 모두 다르게 규정하고 있다. 해외 거주나 투자를 위한 간단한 송금에도 이런 절차가 그대로 적용된다. 이렇다 보니 외국환거래법을 미신고 원칙으로 개선하지 않는 이상 복잡한 절차와 규제가 획기적으로 줄어들기는 어렵다. 이에 전문가들은 미신고를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에만 신고하도록 하거나 사후 신고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은행권, 비대면 해외송금 한도도 상향할 지 관심

한편 이번 무증빙 해외송금 한도 상향에 따라 ‘비대면 해외송금’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비대면 서비스는 은행에 직접 방문해 설명해야 하는 부담이 없고 서류 제출이 필요하면 이메일 등을 활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모 인터넷뱅킹 업체의 경우 비대면 해외송금 서비스 도입 5년 만인 지난 2022년 기준 누적 이용 250만 건을 돌파하는 등 시장에서 높은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비대면 해외송금은 자금 세탁, 편법·위법 송금에 대한 우려가 크다. 실제 시중은행들은 비대면 해외송금 서비스의 한도를 은행 창구를 방문하는 경우보다 낮춰 운영하고 있다. 이는 송금 사유 및 목적을 명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비대면 채널의 특성을 감안한 조치다. 국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도 2021년부터 비대면 해외송금에 ‘월간 누적 1만 달러 제한’을 신설한 바 있다. 당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가격이 해외보다 비싼 ‘김치 프리미엄’을 악용해 자금세탁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감지되면서다.

이런 가운데 해외송금 한도 상향이 비대면 서비스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금융 당국이 외환거래규정상 해외송금 한도를 상향한 이상 은행의 비대면 해외송금 한도 상향도 불가피해 보인다. 만약 기존과 같이 은행 창구 방문에 비해 낮은 송금 한도를 유지한다면 사실상 정부의 제도 개선에 실효성이 없다는 항의에 직면할 우려가 크다. 그런 만큼 정부는 단순히 송금 한도 상향에 머물 것이 아니라 비대면 서비스의 실효성 있고 안전한 운영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해야 한다. 특히 자금 세탁, 편법·위법 송금 등 비대면 해외 송금 서비스를 악용하려는 시도에 대한 보완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