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째 5,000만원으로 묶여 있는 예금 보호 한도, SVB 사태 대응해 상향되나?

국내 예금 보호 한도 ‘5,000만원→1억원’으로 대폭 상향안 발의 한도 상향 시 보험료 인상과 은행 도덕적 해이에 고객 피해 늘 수도 디지털 금융 발전과 이틀 만에 벌어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대책 모색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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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현행 5,000만원 한도의 예금 보호액을 22년 만에 1억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예금자보호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현재 국회 의석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당론으로 이를 추진하는 데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보호 한도 상향에 공감하고 있어 법 개정 추진은 긍정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불거졌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로 인해 관련 논의가 재점화된 것으로 보이지만, 1억원은 너무 많으며 중도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간만에 여야 한 목소리 모았다, “예금자 보호 한도 1억 이상 올리자”

국내 예금자보호법은 2001년 2월부터 보험금 한도 5,000만원으로 동결돼 왔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잇따른 파산 위기로 국내에서 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위 ‘뱅크런’을 막기 위해 예금자 보호제도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지난 5월 20일 더불어민주당 경제위기대응센터는 예금 보호 한도를 1억원 이상의 범위로 재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중대한 금융 경제상의 위기 등 대통령령에 따른 예금자 등을 보호해야 할 긴박한 필요가 생길 경우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예금 전액을 보호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관련 법률안 발의를 맡은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기업의 경우 월급 등을 은행에 예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은행이 파산하고 현행처럼 5천만원만 보장하면, 기업뿐만 아니라 노동자들까지 모두 충격을 받는다”며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법적 근거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또 법률안에 제시한 대로 ‘중대한 금융 경제상의 위기’는 이번 미국 실리콘밸리뱅크 파산 사태나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상황을 의미한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11월부터 2000년도 말까지 한시적으로 예금 전액을 보호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진행한 바 있다. 민주당은 법률안을 통해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사태 이후 은행의 신용 위기가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예금 전액을 보호하겠다고 신속히 발표했다”며 “뱅크런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민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는 2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직접 개정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에서 당론 수준의 의지를 갖고 이번 예금자보호법을 추진하는 것이다. 국민의힘 상당수 의원 역시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에 동조하고 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2001년 기존 2,000만 원 한도에서 상향된 이후로 20년 넘게 그대로 뒀다는 것으로, 시대에 맞고 금융위기에 대비해 보호 한도 확대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작년 3월 보호 한도를 1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 역시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커졌고 외국 대비 보호 한도가 낮은 점을 고려해 오랜 기간 동결되었던 예금 보호 한도를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SVB 사태서 배워야, 커진 경제규모에 맞는 필요

예금자보호제도는 금융회사의 위기를 선제적으로 막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현행법 기준 5,000만원 이하의 예금을 예치한 고객은 금융회사가 흔들려도 전액 보호되기 때문에 돈을 급하게 출금하지 않아도 된다. 즉 예금 보호 한도를 높여 은행의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SVB의 경우 예금액의 약 86%가 예금 보호 한도를 초과한 탓에 불안함을 느낀 고객들이 급하게 예금을 인출해 파산에 이르는 속도를 앞겼다는 분석이 있다.

물론 금융위원회에서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금융회사에 부보예금(예금보험공사 보험을 적용을 받는 예금)이 있는 고객 가운데 5,000만원 이하를 넣은 예금자 수 비율이 98.1%라고 밝혔다. 하지만 고객 수가 아닌 예금 규모로만 분석한다면 예금자보호법으로 보호받는 돈의 비중은 51.9%로 절반을 겨우 넘는다. 즉 전체의 48.9%는 고객 수로 보았을 때 2%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예금이 워낙 거액이기 때문에 뱅크런이 일어날 경우 국내 금융회사가 휘청일 만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SVB 사태는 뱅크런을 예방하기 위해 예금보험제도의 정밀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며 “디지털화로 뱅크런 리스크에 갈수록 쉽게 노출될 수 있으므로 보호 한도를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예금자보호법 한도 사향에 대해 찬성하는 이들은 단순히 금융위기 여부를 떠나 전반적으로 2001년에 비해 경제 규모가 커진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2001년 1,493만원에서 2022년 4,267만원(추정치)으로 3배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비슷한 수치를 갖고 있는 해외의 사례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예금자보호한도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미국의 예금 보호 한도는 25만 달러(한화 약 3억2,000만원)이며, 일본 1,000만 엔(약 9,300만원), 유럽연합(EU)은 10만 유로(1억4,000만원) 등으로 집계된다. 1인당 GDP와 비교해도 한국은 1.3배인 반면 미국은 3.33배, 일본 2.27배, 독일 2.18배로 현저한 차이가 있다. 한국의 수치는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는 예금 보호 한도 기준(1인당 GDP의 1~2배)도 겨우 맞추는 수준이다.

올라간 한도에 상승한 보험료, 고객에 고스란히 전가될 수도 

물론 예금 보호 한도를 올리는 일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금융사의 보험료 부담이 커져 은행 보험 대상 예금액 0.08%, 저축은행 0.4%씩 내는 예금 보험료가 올라 금융소비자에게도 부담이 전가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은행 생명보험, 손해보험, 저축은행, 금융투자, 종합금융사가 공공기관인 예금보험공사에 낸 보험료는 총 2조2,089억원에 달했다. 이 중 은행의 보험료만 약 1조2,645억원인데, 전문가에 따르면 예금 보호 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할 경우 늘어나는 보험료는 수백억 원에 미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보험료는 예금자가 부담하게 돼 예금 보호 혜택이 고액 금융 자산가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예금 보호 한도가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한 곳에 5,000만원 이상 예금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1억원으로 올리면 서민들에게 어떤 실익이 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금융회사들이 늘어난 보험료를 대출금리 인상 등의 형태로 고객에게 전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예금 보호 한도를 높이면 자산운용 능력이 떨어지는 소규모 금융회사도 위험을 무릅쓰고 자산을 운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은행당 5,000만원에 맞춰 예치한 고객들이 고금리를 좇아 큰돈을 예치하면서 전체 예금액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금융권역별 자산 이동과 금융기관 간 쏠림 같은 현상도 고려해야 한다. 이미 고금리인 상황에서 예금 보호 한도가 올라갈 경우 주식·채권에 투자된 자금이 일반 저축예금이나 은행으로 급격하게 쏠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한 전문가는 금융업종별로 수신(예금 받기) 경쟁이 과열되면 그 여파로 예금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금리까지 함께 오르는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즉 가계대출이 사상 최대 수준인 상황에서 대출 이자 부담 증가는 불경기에 심각한 독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디지털 시대, ‘전염성 강한 빠른 예금인출’ 뱅크런 예방 강화 필요성↑

이번 예금자보호법 개정의 필요성은 미국 SVB 사태-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독일 도이체방크 사태 등 은행 위기가 퍼지면서 대두됐다. 그러나 당장 한도를 2배로 상향하기 위해 국가 예산을 사용하는 것은 자충수일 수 있다. 저축은행 같은 고위험 은행들에 보조금 형식으로 지급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핵심은 ‘디지털 뱅크런’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터넷·모바일뱅킹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실제 SVB 같은 은행 파산 사태가 발생한다면 뱅크런 속도가 미국보다 100배 더 빠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의 디지털화로 편의성과 효율성은 분명 높아졌다. 하지만 쉽고 빠른 자금의 이동으로 유동성 리스크는 이전보다 커진 상태다. 높은 수준의 디지털뱅킹 활성화가 오히려 블랙스완형(예측 불가능한 사건)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뱅크런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불안한 금융 심리에 대응해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1억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예금 보호 한도를 높여 예금 인출 유인을 줄이고, 가짜 뉴스와 루머 확산을 막기 위한 실시간 모니터링과 신속 대응 시스템도 구축도 필요하다. 아울러 한은 총재의 주문대로 징벌 수준을 현행 ‘5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 1,500만원’에서 대폭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사는 오는 8월까지 관련 개선안을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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