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단체 보조금 비리’에 칼춤 추는 정부, 尹 “철저히 환수·단죄해라”
정부 민간단체 일제감사 실시, 1조1,000억 원 규모 사업서 1,865건의 부정·비리 적발 보조금 ‘눈먼 돈’ 취급은 끝, 투명성 제고 위해 제도 개선·보조금 삭감 단행 혈세 낭비 막겠다는 취지, 일각서는 ‘좌파 단체’ 자금줄 끊기라는 의견도
정부가 보조금을 부정 사용한 민간단체를 향해 칼을 빼 들었다. 지난 4일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은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 브리핑을 통해 “일제감사 결과 총 1조1,000억 원 규모의 사업에서 1,865건의 부정·비리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우선 확인된 부정 사용 금액만 314억원에 달한다.
부정행위의 형태는 횡령, 리베이트 수수, 허위 수령, 사적 사용, 서류 조작, 내부 거래 등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5일 “보조금 비리에 대한 단죄와 환수 조치를 철저히 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함에 따라, 정부는 이들 사업에 대해 보조금 환수, 형사 고발, 수사 의뢰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보조금 정치적 활용·허위 수령 등 다수 적발
이번 일제 감사에서는 A통일운동단체가 “묻혀진 민족의 영웅을 발굴하겠다”며 6,260만원을 수령한 뒤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 등 정치적 메시지를 설파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B협회연맹 사무총장 C씨는 국내·외 단체 간 협력 강화 사업으로 보조금을 지급받은 뒤 사적 해외여행 2건, 아예 출장을 가지 않은 허위 출장 1건 등 총 3건의 출장비 1,344만원을 횡령했다.
D이산가족 관련 단체는 이산가족교류 촉진 사업 명목으로 보조금을 수령한 뒤 중국 소재 개인 사무실 임차비, 휴대전화 구입비, 통신비 등에 2,000여만원을 착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단체 E는 시설과 기자재를 허위 기재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일자리 사업 보조금 3,110만원을 부정 수령했다. F연합회 이사장 등 임직원은 통일 분야 가족단체 지원 사업을 추진하며 주류 구입, 유흥업소, 주말·심야 시간대 등에 업무추진비 1,800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는 보조금 신청 과정에서 허위 사실 등으로 부정하게 수령한 경우는 해당 단체에 지급된 보조금 전액을 환수하고, 선정 절차 등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집행·사용 과정에서 일부 부정·비리가 드러난 경우는 해당 금액을 환수할 예정이다. 보조금 유용·횡령, 리베이트, 허위 내용 기재 등 비위 수위가 심각한 86건은 사법기관에 형사 고발 조치하고, 목적 외 사용과 내부 거래 등 300여 건에 대해서는 감사원의 추가 감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제도개선 관리 강화·보조금 삭감 조치
민간단체 보조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오용돼 왔으며, 애초 사업 계획과 무관한 이념적 활동에 활용되는 일도 흔했다. 사실상 어려움 없이 수령하고,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눈먼 돈’으로 취급돼 온 셈이다.
이에 정부는 민간단체 보조금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제도 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다. 먼저 민간단체 보조금 사업자가 회계 서류, 정산 보고서 등 각종 증빙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관리·감독을 대폭 강화하고, 지자체 보조금 시스템도 새롭게 구축한다.
사업 결과에 대한 외부 검증도 대폭 강화한다. 국고보조금 정산보고서 외부 검증 대상은 현행 3억원 이상 사업에서 1억원 이상까지, 회계법인 감사 대상은 기존 10억원 이상 사업에서 3억원 이상 사업까지 확대한다. 이에 더해 지방보조금법 개정을 통해 명확하지 않았던 ‘보조금 부정 발생 시 사업 참여 배제기간’을 5년으로 정확하게 명시한다.
정부는 향후 윤석열 정부 4년간 민간단체 보조금 예산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기재부와 각 부처는 민간단체 보조금 예산을 처음부터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감사에서 부정이 적발된 사업, 최근 과도하게 증가한 사업, 관행적으로 편성된 사업, 선심성 사업 등에 대한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내년도 민간단체 보조금은 올해 대비 5,000억원 이상 감축한다.
올 초부터 이어져온 감사, ‘좌파 단체’ 견제?
한편 대통령실이 발표한 ‘비영리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 및 개선방안’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비영리민간단체 보조금 투명성 제고’의 일환이다. 민간단체를 향한 정부의 본격적인 ‘칼부림’은 올 초부터 시작됐다.
지난 1월 행정안전부는 17개 시도 기조실장회의를 개최하여 자치단체가 지원하는 비영리민간단체 지방보조금에 대한 관리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행안부는 지방자치단체별로 비영리민간단체 지방보조금에 대한 자체 조사 계획을 수립하여 올해 2월까지 자체 조사를 추진했다. 특히 보조금을 목적 외로 사용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지방보조금을 교부받는 등 회계처리의 위법성 등을 중점적으로 점검했다.
당시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은 “자치단체별 자체 조사 진행 시 지방보조금 관리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조사를 당부했으며, 지방보조금이 투명하고 책임성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지자체와 함께 제도 개선 등을 추진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정부의 이번 보조금 감사 결과 발표는 당시부터 꾸준히 추진돼 온 ‘민간단체 투명성 제고’ 정책의 결실인 셈이다.
한편 익명의 관계자는 “소위 ‘좌파 단체’들이 ‘민간단체’, ‘시민단체’라는 이름으로 눈먼 돈을 받고 있다는 게 우파의 불만이었던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놨다. 실제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좌파 시민단체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돕는 척하면서 판결금의 20%를 챙기려고 했다’며 “뒷구멍으로 구린 짓을 일삼는 이러한 좌파 시민단체는 해체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부의 이번 ‘칼춤’은 좌파 시민단체에 직접적인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익을 위한 정부 보조금 오용은 방관해서는 안 될 문제다. 정부의 저의가 어떻든, 민간단체의 ‘혈세 낭비’를 규제해야 한다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꾸준한 감사를 통해 혈세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고, 보조금이 오롯이 국민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