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사회서비스 고도화’ 정책, 빈부격차 벌리는 ‘복지 민영화’?
흩어져 있는 사회보장제도 연계하는 ‘중앙부처 사회보장제도 통합관리 방안’ 발표 ‘사회서비스 고도화’ 추진, 서비스 이용 범위 중산층까지 확대·민간 사업자 참여 장려 일각에서는 ‘복지 민영화’ 수순이라는 지적도, 지원 절실한 취약계층 수요부터 살펴야
정부가 흩어져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합·관리하고, 사회보장 서비스 대상자를 중산층까지 확대해 국민 모두가 사회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사회보장 전략회의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중앙부처 사회보장제도 통합관리 방안’과 ‘사회서비스 고도화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정부의 ‘사회서비스 고도화’가 복지 서비스의 민영화 수순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사회서비스 고도화를 통해 민간 참여를 확대하고, 사회서비스 품질에 따라 가격을 차등화해 돌봄 서비스에 ‘시장 원리’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처럼 복지서비스의 품질을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화할 경우, 결국 빈부격차로 인한 차별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사회보장제도 연계·통합 통해 편의성 제고
이날 전략회의는 그간의 사회보장 정책 방향을 점검하고, 정부의 복지 철학과 기조를 사회보장 정책 전반에 확산하기 위해 마련됐다. 먼저 정부는 취약계층의 생계 지원을 위해 △사각지대에 대한 적극적 대응체계 마련 △사회보장제도 내실화를 통한 다양한 사회격차 완화 △삶의 질 유지를 위한 생활비 부담 완화 등의 과제를 추진할 예정이다. 아울러 건강보험·연금 개혁 등 복지 재정 혁신을 통해 국민의 복지 체감도 및 제도의 효율성을 제고한다.
이에 더해 정부는 여러 기관에 나뉘어 각기 운영되고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합해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국민 편의 관점에서 제도를 패키지화하고, 누락·부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초등돌봄 지원의 경우 늘봄학교 시범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지역 중심의 초등돌봄 관리체계(다 함께 돌봄, 지역아동센터, 청소년 방과 후 활동 지원 등) 간 연계 강화를 통해 관련 서비스를 패키지로 관리할 예정이다.
각종 전달 체계 및 상담·안내 체계 개선을 통해 국민의 제도 이용 편의성도 제고한다. 별도 프로세스로 운영되는 가정폭력 및 각종 학대(아동·노인·장애인 등) 대응 체계를 연계해 대상자 지원의 누락을 방지하고, 제도 상담·안내는 정부민원안내 콜센터(110), 지자체 상담전화(120) 및 대표 홈페이지(복지로)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도록 각 기관의 연계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사회서비스 이용 범위·민간 참여 확대
사회서비스 고도화는 국민 모두가 사회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서비스의 양과 질을 확충하는 것으로,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토해 온 핵심 복지 의제(agenda)다. 정부는 △사회서비스 대상자 확대 △고품질 서비스 실현 △양질의 공급자 육성 △기반 조성 등 4가지 고도화 추진 방향을 제시했다.
정부는 서비스 대상자 확대를 위해 사회서비스 이용 소득 제한을 해제한다. 이에 따라 중산층도 소득 수준에 따라 본인 부담금을 지불하고 사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양질의 민간 서비스 공급자를 육성을 위해 자금을 지원하고, 기반 조성을 위해 △경쟁 원리 도입 △디지털 기술 도입 △사회서비스 R&D △투자펀드 조성 등 산업 육성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돌봄이 필요한 국민 누구나 원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국민 중심 돌봄 체계’를 실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먼저 돌봄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가족돌봄청년과 돌봄 필요 중장년 대상 일상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갑작스러운 질병·부상이나 보호자 부재로 인해 긴급하게 돌봄이 필요한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 긴급돌봄 서비스’를 추진한다. 아울러 가정 양육 아동도 필요시 시간 단위로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제 보육 서비스’ 이용 대상을 확대하고, 긴급 시 일시적으로 24시간 돌봄을 지원하는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23년, 34개소)도 시행한다.
‘고도화’인가 ‘민영화’인가
복지부는 이미 올해 초 사회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서비스 이용 시 본인부담금을 차등화하고 가격 탄력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납부한 돈에 따라 서비스 품질이 달라지는 ‘차등화’ 개념이 사회서비스 분야에 도입되면 안 된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복지 서비스에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것은 사실상 ‘고도화’라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소득 수준에 따른 ‘차별’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복지부가 내놓은 ‘사회서비스 고도화’ 방안은 취약계층에 한정되어 있던 사회서비스 이용 범위를 중산층까지 넓히고, 수요에 걸맞은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제공되는 사회서비스 품질에 따라 가격을 탄력적으로 매기겠다는 의미로도 풀이할 수 있다. 더 많은 돈을 낸 사람이 더 좋은 사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사회서비스 고도화 방안이 민간 참여 확대와 서비스의 차등화를 통한 ‘돌봄 민영화’에 초점을 맞췄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 같은 해석에 따르면 보다 많은 본인부담금을 납부한 중산층은 취약계층 대비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중산층에 사회서비스를 개방한다고 해서 전체 돌봄의 질이 개선된다는 논리는 사실상 어불성설이다. 사회서비스 분야에 진출한 민간 기관이 고소득층 위주로 수요자를 ‘선별’할 경우 저소득 수요자의 서비스 질은 오히려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서비스 지원이 절실한 저소득층이 소외되는 역효과가 나게 되는 것이다.
사회서비스의 고도화는 소득 수준 차이에 따른 이원화를 방지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사회서비스 고도화 방안은 오히려 이 같은 본분을 역행하는 양상이다. 정부는 차후 정부 차원에서 짊어져야 할 공적 책임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재고해 정책 목표를 보다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