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부담·인력 유출로 휘청이는 국내 콘텐츠 업계, 정부 ‘5,000억원 지원책’ 발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내 미디어·콘텐츠 기업 대상 자금 지원책 마련 넷플릭스·디즈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 국내 기업들, IP 확보도 어려워 막대한 자본 보유한 해외 플랫폼으로 유출되는 제작 인력, 늦기 전에 지원해야
정부가 국내 디지털 미디어·콘텐츠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5,000억원 규모의 지원책을 내놨다. 글로벌 콘텐츠 경쟁 속 ‘생존’조차 버겁다는 국내 기업의 호소가 급증하는 가운데, 국내 콘텐츠 IP 및 인력은 자본이 풍부한 국외 OTT 시장으로 줄줄이 새어 나가고 있다. 정부는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자금’을 지원해 국내 미디어·콘텐츠 기업을 구제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15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1인 미디어 콤플렉스에서 김성태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장, 황현식 엘지유플러스(LGU+) 대표이사 겸 한국전파진흥협회장, 인터넷티브이(IPTV) 3사 임원 등과 만나 ‘디지털 미디어·콘텐츠 투자 활성화 및 금융지원 확대 방안’에 대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투자 확대·대출 지원 등 ‘자금 확보’에 집중
과기정통부는 우선 3대 디지털 미디어·콘텐츠(OTT, 메타버스, 크리에이터)에 집중 투자하는 펀드를 1,000억원(목표) 규모로 신규 조성, 투자 마중물 역할을 확대한다. 차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크리에이터 분야의 미디어·콘텐츠 프로젝트 및 지분에 투자하는 ‘글로벌 디지털 미디어 펀드’ △ 메타버스·확장현실(XR)·가상현실(VR) 등을 활용하는 미디어․콘텐츠 기업에 투자하는 ‘디지털 콘텐츠 펀드’ 등 콘텐츠 분야 전반에 걸친 펀드 조성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과기정통부는 IPTV 3사(KT, SKB, LGU+)가 글로벌 OTT 기업과의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계획 중인 콘텐츠 공동수급 브랜드 ‘아이픽’(iPICK)을 활용해 콘텐츠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3,000억원에 달하는 아이픽의 자금이 IPTV는 물론 OTT 플랫폼에서도 ‘인기를 끌 만한’ 콘텐츠에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미디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확대한다. 과기정통부는 기업은행과 협력해 우수한 미디어 스타트업에 3년간 100억원을 투자하는 ‘미디어 스타트업 투자 프로그램’을 기존 지원 사업들과 연계해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이어 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미디어·콘텐츠 기업에 올해에만 700억원 가량의 대출 및 보증을 제공한다. 과기정통부가 콘텐츠 제작 역량과 성장 가능성을 평가해 대상 기업들을 추천하면, 정책금융기관은 상환 가능성 등을 심사해 우대 조건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식이다. 기업은행은 대출한도 상향 및 최대 1.0%포인트 금리 차감 혜택을 제공하며, 신용보증기금은 보증 비율을 최대 100%로 늘리고 보증료율을 최대 0.4%포인트 차감하는 우대 조건을 내걸었다.
과기정통부는 이와 별도로 이동통신 3사가 올해 440억원가량을 출자하는 케이아이에프(KIF·Korea IT Fund)펀드의 주요 투자 분야에 디지털 미디어·콘텐츠를 포함시켜 투자 확대를 유도할 예정이다. 한·아랍에미리트(UAE) 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UAE 국부펀드에 국내 OTT 등 디지털 미디어 기업 투자를 제안하기도 했다. 현재 관련 협의는 추진 중에 있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날 “글로벌 미디어 기업과의 경쟁이 심화되고 콘텐츠 제작비가 급증하는 상황에 직면한 국내 미디어·콘텐츠 업계가 우수한 콘텐츠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우수한 지식재산(IP)를 확보해 국외 시장에 진출하려면 자금이 원활하게 공급돼야 한다는 인식 아래 정부와 금융·산업계가 협력해 돕기로 했다”고 지원 계기를 설명했다.
치열해지는 글로벌 콘텐츠 경쟁, 휘청이는 토종 기업들
실제 OTT 등 인터넷 기반 매체로 콘텐츠 시장의 중심축이 이동하는 가운데, 국내 콘텐츠 기업들은 넷플릭스 등 글로벌 ‘공룡 OTT’와의 경쟁을 위한 제작비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일례로 2016년 제작된 드라마 <도깨비>의 제작비가 9억원 수준이었던 반면 <미스터선샤인>(2018년·20억원)과 <스위트홈>(2021년·30억원)의 경우 제작비가 2배 이상 급증했다.
문제는 국내 콘텐츠 기업들이 제작비를 충당할 자체 자금과 외부 조달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OTT 시장 성장세가 정체된 가운데, 천정부지로 뛰는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해 적자의 늪에 빠진 기업도 다수다. 국내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콘텐츠 제작에 난항을 겪는 가운데, 투자 여력이 충분한 글로벌 OTT는 대형 콘텐츠를 제작하며 구독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시장 내 ‘콘텐츠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콘텐츠 제작사들이 자금 부족으로 글로벌 OTT와의 계약에서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작품이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을 때 흥행 수익 대부분은 IP를 가진 글로벌 OTT에 돌아간다. 제아무리 우수한 작품을 만들어도 국내 제작사에 돌아오는 것은 방영권 판매 수익이 전부인 셈이다. 낮은 투자 경쟁력이 국내 콘텐츠 시장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인력 유출로 위기감 고조, 꾸준한 자금 지원 필요해
코로나19 팬데믹 기점으로 불어든 ‘OTT 열풍’에 따라 콘텐츠 제작 인력들이 OTT로 이동하고 있다.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었던 대작들이 OTT에서 속속 공개되자 영화관을 찾는 발길은 자연히 줄었다. 이에 관객뿐만 아니라 유명 감독 등 관련 인력까지 활로를 찾아 자리를 옮기는 추세다.
문제는 국내의 콘텐츠 제작 인력이 넷플릭스, 디즈니+ 등 자본이 풍부한 글로벌 OTT 플랫폼으로 유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범죄도시1>을 통해 데뷔한 후 <범죄도시2>,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등을 선보인 강윤성 감독은 디즈니+에서 <카지노>를 통해 최초의 시리즈물을 선보였다. <청년경찰>로 흥행에 성공했던 김주환 감독 역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사냥개들>로 올해 첫 드라마 작품을 내놨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거대한 투자 자본을 업은 해외 OTT 플랫폼은 국내 제작 인력과 국내 흥행작 IP를 확보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업계에서 ‘열심히 만들어 남의 배 불려 준다’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시점 국내 콘텐츠 기업에 필요한 것은 도전적인 콘텐츠를 제작하고, 자체 IP를 확보하기 위한 ‘충분한 자본’이다. 시장의 쏠림 현상이 더 심화하기 전에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투자 및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