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찬반 팽팽한 재정 준칙, 흑자 재정전환의 ‘만능열쇠’는 아니지만 시도는 해봐야

치솟는 국가채무에 부족한 세수까지, 몸살 중인 우리나라 국고 상태 재정건전성 위해 재정 준칙안 제기됐으나 번번이 무산돼 입법처, 재정 준칙 도입에 긍정적 “해외처럼 지속적인 정교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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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국회입법조사처(입법처)는 현재 재정 준칙(Fiscal Rules) 도입 논의 동향 및 쟁점을 담은 ‘이슈와 논점(제2108호)’를 발간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재정 준칙 도입에 대해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 관리가 가능하다는 의견과 경직된 재정 운용으로 경제 안정화 기능 약화될 것이라는 의견으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에 입법처는 세계 주요국에서는 재정 준칙을 도입한 이후에도 준칙을 지속적으로 정교화하고, 예외 조항 및 후속 관리 방안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재정 준칙 도입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재정 운용 기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최악의 국가 재정 상태에도 재정 준칙 도입 시도 번번이 낙마

현행 국가재정법은 정부가 건전재정을 유지하고 국가채무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노력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또 재정 운용의 효율화와 건전화를 위해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며,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여러 의무와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국가채무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변화로 세수가 약화됨에 따라 향후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미 지난해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돌파했으며, 올해 국가채무는 1,135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치를 내놨다. 1분기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연간 예상치의 90%를 넘어섰고, 심지어 올해 2월까지 국세 수입은 1년 전보다 15조7,000억가량 줄어 4년 만에 세수 결손 우려마저 제기됐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재정 준칙을 도입하지 않으면 2040년 생산가능 인구 1인당 국가채무가 1억원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재정 준칙은 재정건전성 관리 방안 중 하나로, 총량적인 재정지표에 대한 수치화한 목표를 설정하고 정부의 재량적 재정정책에 제약을 가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재정 운용체계다. 기재부는 지난해 9월 재정 준칙안을 발의했으며, 제21대 국회에서도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 및 ‘재정 건전화 법안’ 등 재정 준칙 도입 등의 내용을 담은 관련 법률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지난 3월 열린 재정 준칙 도입에 관한 공청회 및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해 계류 상태에 있다. 동 법안은 지난 5월에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 안건으로 다뤄졌으나 사회경제기본법에 후순위로 밀려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지난해 9월에도 발의된 재정 준칙, 역할과 기준점 설정에 찬반 갈려

지난해 9월 기재부가 발의한 재정 준칙안은 2020년 10월에 발표된 한국형 재정 준칙 도입방안에서 기준 단순화, 법률로의 규정, 즉시 시행 등의 내용을 대폭 수정한 방안이다. 준칙안의 골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3% 내로 유지하고, 국가채무 비율이 GDP의 60%를 초과하면 적자 폭을 2% 내로 유지하며, 재정수지 기준을 통합재정수지보다 엄격한 관리재정수지로 준용한다는 것이다.

보완장치로는 전쟁·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등 예외 상황 때는 준칙을 면제하고, 예외 사유가 소멸하면 다음에 편성하는 본예산부터 재정 준칙을 즉시 재적용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또 이를 담보하기 위한 재정 건전화 대책 수립도 의무화하고, 세입이 예산을 초과하거나 지출이 당초 세출예산에 미달할 때 발생하는 세계잉여금은 부채를 상환하는 데 활용하며, 세계잉여금 중 국가채무상환에 쓰는 비율도 현행 30%에서 50%로 높이도록 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재정 준칙 도입에 있어 재정적자에 준칙이 미치는 영향은 항상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재정 준칙 도입이 탄력적 재정 운영을 어렵게 해 경제 안정화 기능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재정 준칙을 도입하더라도 ‘어떤 유형’의 준칙을 ‘어느 수준’으로 도입할 것인지도 쟁점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재정 준칙은 적용 기준에 따라 재정수지 준칙, 채무준칙, 지출준칙, 세입준칙 등으로 분류되며, 각 유형에 따른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재정수지의 기준값으로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 보장성 기금 수지를 차감한 관리재정수지를 설정한 점에 대해 국제적 기준이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인구구조의 변화가 급속화함에 따라 사회 보장성 기금 소진이 빨라지고 있는 만큼 최소 2040년 이후부터는 관리재정수지가 통합재정수지보다 국가재정 상황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한편 정부 준칙안의 맹점 중 ‘재정적자 상한 3%, 국가채무 비율 상한 60%’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해당 수치는 유럽연합(EU)에서 1990년대 당시 재정 상황에 맞춰 도입한 수치”라며 “우리나라 준칙안에 왜 이 수치를 그대로 베꼈는지 모르겠으나, 어떠한 이론적 근거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재정준칙을 세워야 한다면 원점에서 우리나라의 경제적 실질을 반영한 뒤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각국, 코로나19 이후 다시 준칙안 적용 중 “우리나라도 선택해 볼 만해”

유럽이 1990년대에 초국가적 재정 준칙을 수립한 이후 세계 각국에서도 재정 준칙을 도입해 재정건전성 확보에 힘쓰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2년 기준 OECD 38개국 중 35개국이, 전 세계를 통틀어 105개국이 최소 하나 이상의 재정 준칙을 시행하고 있다. 입법처는 특별히 주목해야 할 부분으로 세계 각국이 재정 준칙을 도입한 이후 계속해서 준칙을 보완 및 수정해 왔다는 점을 꼽았다. 또 국가별 평균 준칙 수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해 1990년대 평균 2개 수준에 머물렀지만, 2020년에는 평균 3개까지 기록됐다고 전했다.

한편 코로나19 엔데믹에 접어든 지금, 재정 준칙은 다시 변화를 꾀하고 있다. 2020년~2021년 재정 준칙을 운용한 국가 중 80%는 경기부양과 재정 지원을 목적으로 재정 준칙 적용을 일시 유예하거나 예외 조항을 발동했다. 이에 따라 해당 기간 재정 준칙을 둔 선진국은 기존에 설정한 재정수지 준칙을 초과한 정도가 GDP의 3%를 상회하고, 채무준칙을 초과한 정도는 GDP의 50% 수준에 이르렀다.

입법처는 이러한 공격적인 재정 운용 이후 다시 정상경로로 회귀하는 데 재정 준칙이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는 꾸준히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당수 국가에서 팬데믹 당시 경로 이탈의 폭이 워낙 컸던 데다, 빠른 흑자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조속한 복귀가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법처는 또 일찍이 재정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재정 준칙을 도입한 각국의 사례를 비춰볼 때 재정 상황 및 정치·사회적 요구에 따라 재정 준칙이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우리나라에 재정 준칙이 도입된다 해도 경제 구조 변화에 따른 한도식의 수정 및 경제 위기 등에 대한 예외조항 발동 여부 등 준칙의 정교화를 위한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한 만큼, 재정 준칙이 모든 어려움을 일소에 해소하는 만능열쇠는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입법처는 재정 준칙 도입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합리적인 운용방안을 고민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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