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보좌관 직급 임의 변경에 ‘절차 개선’ 요구한 인권위, “지나친 월권이다”
인권위, 국회의장에 보좌관 동의 없이 직급 하향은 인권침해 국회사무처, 이미 당사자 동의 하에 처리하고 있어 문제없다 이번 직급 하향은 의원실 인사권 행사 및 보좌관 개인 신변문제 등과 관련
지난 21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의원 보좌관의 직급을 임의로 조정하는 것은 인권 침해 가능성이 있으므로 관련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전달했다. 이에 국회사무처는 동일 의원실 내에서 직급변동이 있는 경우 보좌직원 본인의 사직원을 필수 서류로 제출하도록 이미 ‘국회별정직공무원인사규정’을 개정·시행 중이라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인권위가 국회의 인사권한 행사까지 참견하자 국회사무처에서 이례적으로 해명자료까지 낸 것 아니냐며 우려를 제기했다.
동의 없는 직급 하향 조정은 ‘직장 내 괴롭힘’? 국회사무처 즉각 반발
지난해 6월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의 4급 보좌관으로 재직 중이던 A씨는 자신의 동의 없이 5급 선임비서관으로 직급이 하향 조정된 데 이어 직권 면직까지 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인권위는 A씨의 진정 신청이 현재 수사 진행 중인 데다 행정심판법에 따른 권리구제도 종결됐다는 이유로 각하하면서도, 당사자 동의 없이 행해지는 직급 변경은 국회 별정직 공무원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국회의장에게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는 별정직공무원에게 ‘국가공무원법’상 신분보장 규정 일부가 적용되지 않는 만큼 임용권자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이 있지만, 임용권자가 아무런 근거나 기준도 없이 직급을 하향 조정하지는 못한다고 봤다. 또한 직급 하향 조정을 국가공무원법의 강임·강등 조치와 유사하다고 전제하며 강임은 직제나 정원의 변경 또는 예산 감소 등으로 해당 직위가 없어지는 경우, 하위 직위로 변경된 경우, 본인이 동의한 경우에나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특히 강등은 징계의 하나로 직급을 한 계급 내리는 것을 뜻하므로 보좌직원의 직급 하향 조정은 인사상 불이익한 처분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인사상 불이익은 권력 불균형에서 발생하는 직장 내 괴롭힘의 한 형태로 헌법 제10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으로부터 도출된 인격권 및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회사무처는 보좌관 본인의 사직원도 사무처에 제출해야 직급을 바꿀 수 있도록 이미 지난 4월 관련 인사 규정이 개정됐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국회사무처의 입장 표명은 지난 21일 인권위의 의견 전달 관련 사항을 보도한 언론 기사에 대한 것이지만, 사실상 인권위에 대한 반박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보좌관 본인의 직급 변경에 대한 동의를 전제로 직급 하향 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인권위가 지적한 것과 같은 인사상 불이익 처분, 직장 내 괴롭힘, 인격권 및 직업수행의 자유는 애초에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직급 하향 조정 이미 합의, 의원실 인력 정비 차원 조치
한편 김형동 의원실에서 진정인 A씨를 5급 선임비서관으로 하향 변경한 것은 A씨의 면직에 대비한 인력 재배치 과정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A씨의 면직 처분 결정 이후에 기존 5급 비서관을 4급으로 승급시키고 부족한 인력은 신규 임용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인권위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표현을 쓴 것과 달리 직급 변경에 대해 A씨의 동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실은 당초 A씨의 동의하에 직급 변경 절차를 진행하던 중 A씨가 갑자기 말을 바꾼 탓에 직권 면직 신청으로 변경했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A씨에 대한 직권면직 신청은 A씨의 행적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A씨의 직권면직 신청 사유는 두 차례의 무단이탈과 지역 선거 과정에서 접수된 민원들이다. 즉 A씨의 면직 처분은 A씨의 귀책으로 인한 것이며, 이미 김 의원과 A씨의 합의하에 합법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에 인권위의 월권이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실상 이번 김 의원실의 A씨에 대한 직급 하향 조정은 정상적인 인사권 행사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일반적인 형식상 별정직 4급과 5급 보좌진의 임명과 면직은 국회의장의 승인을 받아 이뤄지지만 일반적인 공무원 조직과 달리 의원실의 인사권한은 사실상 해당 의원에게 있다”고 밝혔다. 국회사무처도 별정직 공무원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여 임용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권위 계속되는 논란에 ‘시끌’
사실 인권위가 기관들의 고유 권한에 과도하게 개입해 논란을 일으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19년 인권위가 서울신학대학교(이하 서울신대)에 예배 규정을 개정하도록 권고해 기독교계와 충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서울신대 기숙사에 입실한 B씨는 학교 기숙사 측이 새벽 예배 참석을 강제하고 불참 시 퇴사 조치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에 한국교회언론회는 논평을 통해 “B씨는 분명히 그런 사실을 알고 기숙사에 입실했을 것이고 더군다나 그 학교는 신학대라는 특수한 기독교 정체성을 가진 곳으로 인지하고 갔을 것”이라며 “인권위가 이를 고치라는 것은 결국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기독교의 정체성을 흔드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진정 사건에 대한 처리 자체가 인권위 ‘멋대로’라는 비판도 있다. 지난 2019년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한 진정인 C씨는 인권위 게시판에 진정 사건 처리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C씨는 “진정서를 제출한 지 1년 8개월이나 지났지만 기약 없이 처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심지어 조사관도 여러 차례 변경돼 불편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 2021년에는 법원 등 사법기관에 의해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 지자체장의 행위를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발표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당시 지자체장 측은 “형사사법기관이 아닌 인권위가 불완전한 절차로 시장을 성범죄자라고 결정 내렸다”며 “이는 중대한 월권적 행위이자 권리침해 행위”라고 날을 세웠다.
이렇듯 지난 2001년 설립 이후 인권위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인권위의 법적 성격, 인권위 권고가 가지는 법적 효력 등 조직 자체에 대한 논란부터 시작해 편파적 인권 보호 논란, 인권위 권고의 인권 침해 등으로 이슈가 된 적도 많다. 심지어 인권위가 정부를 견제하는 것이 아닌, 정부가 원하는 인권만 보호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수차례 있었으며, 최근에는 인권위 상임위원의 성소수자 혐오 등 반인권적 발언이 논란을 빚는 등 인권위 내부에서도 혼란을 겪고 있다. 인권위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의거해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증진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을 위한 인권 전담 독립기관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