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국] 미-중 냉전 심화에 탈중국 분위기 확산 중?
글로벌 기업들, 탈중국 바람 거세, 미-중 갈등 여파 중국 시장 투자 역성장, ex-China 펀드 수요에 한국, 대만 반사 이익 구형 전력반도체로 돌아선 중국, 글로벌 상품 경쟁력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미국 투자자들의 탈중국 바람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8일 글로벌 최대 VC 투자 업체 중 하나인 세쿼이아 펀드가 중국 투자와 관련된 국제정치적 위험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법인을 3개로 분리했다. 세쿼이아 펀드는 경영 효율화를 내세우지만 관계자들은 미-중 갈등에 따른 미국 정부의 압박 탓으로 해석한다. 미국 시장의 주요 중국 채권 펀드는 올해 들어 4월까지 310억 달러 규모의 중국 국채를 매각했다. 미국 투자자들 중심으로 탈중국 현상이 가시화되는 중인 것이다.
미-중 갈등에 글로벌 시장에 ‘ex-China’ 현상 확산
영국 금융 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유럽 투자자들이 아시아 투자 시점에 탈중국(ex-China) 상품에 투자해 달라는 요청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에 대한 투자를 이어 나가는 동시에 베이징과 관련된 지정학적 위험이 전혀 없는 금융 상품에 투자하고 싶다는 것이 런던 금융가의 아시아 투자 전략이라는 것이다.
BNP파리바의 자산운용사에서 투자 전문역을 맡고 있는 민웨 리우(Minyue Liu)는 “투자자들이 지정학적 이슈에 대해 우려를 내놓고 있다”며 “RFP(Request for proposal, 금융자문 요청서)를 보내는 고객들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투자에 있어 과거에는 일본만 제외한 투자를 진행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중국도 분리해 달라는 요청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IB 업계 관계자들은 일본을 제외(ex-Japan)하는 것은 글로벌 금융회사들 사이에선 30년이 넘은 오랜 관례인 데다, 독특한 특성의 일본 시장이 독립적 투자를 해 온 만큼 그리 놀랄 일은 아니나, 중국을 제외하는 현상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한다.
호주-뉴질랜드 은행(ANZ)에 따르면 4월까지 탈중국 상품에 대한 주식 및 채권 수요는 각각 100억 달러, 50억 달러 내외였으나 5월 들어서는 각각 200억 달러, 150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아시아 지역의 개도국에 대한 투자 지수 중 하나인 MSCI 이머징 마켓 아시아 인덱스는 올해 들어 1.3%의 성장률을 나타냈으나, 중국을 제외하자 무려 8.6%의 성장률을 보였다. 올해 한국, 대만에 대한 비중을 20~30%씩 끌어올려 아시아 시장에 투자한 경우 8.6%의 수익률을 낸 반면, 중국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 수익을 얻고 있었다는 것이다.
금융기관 자금은 이탈, 기업들은 중국 사업 분리
금융투자 기관들만 탈중국에 뛰어드는 것은 아니다. 영국 제약 업체 아스트라제네카도 이번 주 들어 중국 사업 분리를 결정했다. 역시 경영 효율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자칫 지정학적 위험이 자사 사업에 악영향을 미칠 것에 대한 우려 탓이라는 것이 BBC를 비롯한 외신들의 해석이다. 실제로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기구 중 하나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재직 중이던 캐나다계 이사는 “AIIB가 공산당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가 현재는 신변 안전을 우려해 도쿄로 피신한 상태로 알려졌다.
캐나다 연기금도 탈중국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캐나다 3대 연금 중 하나인 온타리오교사연금플랜은 알리바바, 텐센트에 투자했던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워런 버핏도 지난해 중국 전기차 기업인 BYD 지분을 대부분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러시아가 미국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덕분에 석유 매출액이 2019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에 대해 미국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이 달러 결제 시스템에 남아있기 때문에 오히려 중국의 대(對)러시아 협상력을 강화시켜주고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인도 등의 국가들과 무역에서 위안화를 결제 화폐로 쓰겠다는 고집을 피울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국이 달러 결제 시스템에서 퇴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중국의 국제 화폐 시장 점유율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자체 생산에 나선 중국
지난해부터 미국의 강력한 규제로 중국 반도체 사업이 와해되자, 최근 들어 중국 업체들은 첨단 반도체를 포기하고 구형칩인 전력반도체 생산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파이낸셜 타임즈 등의 외신에 따르면 중국 1위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SMIC가 최근 투자자를 대상으로 연 기업설명회(IR)에서 “하이엔드 전력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밝혔다. SMIC는 지난해 말 톈진에 매달 12인치 웨이퍼를 10만 개 생산할 공장을 짓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전력반도체에 집중하는 모습은 다른 중국 기업에서도 관찰된다. 스마트폰 전문 업체인 화웨이는 “실리콘카바이드(SiC)와 질화갈륨(GaN) 등 차세대 전력반도체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고, 중국의 전력반도체 업체 중 하나인 실란은 지난해부터 SiC 전력반도체 생산라인을 완공했다. 현재 6인치 웨이퍼 2,000장 수준인 월 생산량을 연말께 6,000장으로 확대하는 게 목표다.
전기차 기업인 BYD는 전기차에 필요한 전력반도체 생산 시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그간 미국, 한국 등으로부터 수입하던 첨단 반도체들에 대한 접근이 사실상 차단되면서 자체 생산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장비 부족으로 초미세공정이 불가능한 만큼, 대안으로 전력반도체 시장에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미-중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중국 제품의 글로벌 시장 경쟁력은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