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개혁] 미국 대학의 수익성 모델상 학자금 대출은 필요악이다?
미국 대학, 장기 심사 거쳐야하는 라이선스 사업체 구조 등록금은 유일한 수입원, 수익 나오기 까지 10년 이상 투자해야 사업 구조적으로 저가 학자금 학교가 유지될 수 없는 구조
미 백악관이 지난해 9월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미국 대학들의 학자금 대출 잔액은 1조7,500억 달러에 달한다. 이 중 1조6천억 달러가 연방정부 대출 프로그램에서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가 보조금 지급 차원에서 학자금 대출을 탕감해 주겠다고 선언했던 배경이다.
결국 하원, 상원에 이어 미 대법원에서도 채권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폐기되기는 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시도는 미국 내 학자금 대출에 대해 또 한번 문제가 제기되는 계기가 됐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43세에 상원의원이 돼서야 학자금 대출을 모두 상환했던 사례와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자녀의 의대 학자금을 위해 40만 달러의 대출을 받았던 사례도 다시 언급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학 사정을 아는 관계자들은 현재 구조상 고액 학비는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다.
미국 대학은 엄청난 위험 부담 감수해야 하는 라이선스 사업체
교육부와 각종 논의 끝에 해외 대학을 설립하게 됐다는 이경환 스위스AI대학 교수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대학교를 설립할 수 있는 유럽 일부 국가와 달리 미국은 학교 설립에 대한 공식 인가를 받는 과정이 길게는 10년씩 걸릴 수도 있어 각종 부대 비용을 감안했을 때 상당한 위험 부담이 있는 사업이라고 설명한다.
우선 주 정부에서 교육기관으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미국의 행정처리 구조상 길게는 2년씩 걸리는 경우가 많고, 담당 공무원마다 보는 관점이 달라 주 정부에서 교육기관으로 무사히 승인 받기 위해서는 설비 투자 등을 상당량 진행돼 있어야만 한다.
주 정부의 승인이 끝나면 지역 학위 인가 기관(Regional accreditation)에서 인가 절차를 진행하게 되는데, 최소한 2회 졸업생이 있을 때까지는 인가 신청 자격이 없다. 2회 졸업생들의 구직 상황과 재무제표 등을 제출하고 다시 2년 이상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에 걸친 기간 동안 학생들은 학위가 대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학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대학교들은 학비를 안 받는다. 자칫 심사에서 탈락할 경우 법정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탈락한 대학은 재심사 요청을 위해 다시 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일부 대학들은 15년이 지나도록 지역 학위 인가 기관의 인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학비 더 비싼 전문대학원은 더 많은 노력 필요해
경영전문대학원의 경우 미국 내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국제경영대학발전협의회(AACSB)의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이미 운영 중인 대학이 경영학 과정으로 역시 2회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기록을 제출해야 한다.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한다고 해도 경영전문대학원이 AACSB 인가를 받은 상황이 되려면 최소한 6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행 대학 운영 구조다.
미국에서는 AACSB 인가를 받은 대학의 경영학 석사(MBA) 과정에만 은행들이 학자금 대출을 해 주기 때문에 미국 대학들은 AACSB 인가를 받기 위해 길게는 10년에 걸쳐 각종 투자를 집행한다. AACSB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 중 하나는 교수진들의 숫자와 교수진들의 연구 논문 기록이다. 우수 등재지에 많은 논문을 쓴 교수일수록 우대를 받는 구조다. 연구 경력이 화려한 교수들의 급여는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학교가 얻을 수 있는 수익원이 학생들의 등록금밖에 없는 만큼, 길게는 10년간 학비를 받지 않고 운영하던 대학이 지역 학위 인가 기관의 인가를 받고 나면 1인당 학비 4만 달러씩, 학생 수만 명을 받아야 재정이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경영전문대학원 학비가 10만 달러를 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다른 수익성 모델 없는 대학들에게 학자금 대출마저 없으면 학교 접는 경우 늘 것
미국 대학들의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 홍보대행 전문회사인 OPM의 전 CEO 존 카츠만(John Katzman)은 코로나19로 확산됐던 온라인 대학이 최근 들어 수익성이 악화된 학교부터 차례로 문을 닫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수진들에게 지급되는 급여 이외에 온라인 대학에 직접 소비되는 비용이 크지 않은 만큼, 카츠만 전 대표는 마케팅 비용이 주원인이라고 설명한다. 고액의 마케팅 비용을 회수할 수 없게 됨에 따라 더 이상 학교를 운영할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는 바이든 대통령의 학자금 탕감에 대한 반박에도 적용됐다. 학자금이 탕감될 경우 대출기관인 은행이 손해를 보게 되고, 이는 향후 학비 인하 압박으로 작동해 대학들의 수익성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십수 년에 걸친 투자로 대형 대학으로 성장한 만큼, 학비를 낮출 경우 투자금 회수 기간이 더 길어질 수밖에 없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학교들이 폐교를 선택하거나, 신규 대학 설립에 장애가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어 극단적으로 교육 기관의 경쟁력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국내 대학들 역시 반값 등록금과 정부 지원금에 의존적인 구조로 인해 미국에서 우려했던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학비를 낮춘 탓에 교수들 급여를 높게 줄 수 없고, 실력이 뛰어난 교수들을 해외로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대학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거쳐도 영미권 대학의 학부 2~3학년 수준의 문제도 못 풀고 F학점을 받는 사례도 50명 중 무려 70%에 달한다는 보고도 나왔다. 스위스AI대학 이경환 교수는 “국내 대학이 교육 내용으로 경쟁력을 잃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대학은 경쟁 없이 정부 지원금에만 의존하고, 정부는 고급 교육을 알아볼 수 있는 역량이 없으니 결국 교육 자체가 망가지는 상태에 빠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