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글로벌 ‘탄소 중립’ 압박, 국내 수출 기업 대응책은 ‘막막’
오는 10월부터 EU CBAM 전환기간 시작, 미국서는 CCA 도입 ‘박차’ ‘수출 경제’ 국내 기업, 글로벌 탄소 배출 규제 대응책 턱없이 부족해 글로벌 시장 ‘배제’ 막으려면 정부의 적극적인 인프라 지원 필요
탄소국경조정 매커니즘(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이 유럽연합(EU)을 통과한 가운데, 우리나라도 탄소 배출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국회미래연구원은 19일 「Futures Brief」 제23-08호(표제: 탄소국경조정 메커니즘 도입 확정, 기후통상 시대의 대응 전략)를 발간, 이같이 밝혔다.
EU의 CBAM, 미국의 청정경쟁법(Clean Competition Act, CCA) 등 탄소 배출 규제는 어느덧 글로벌 시장의 새로운 ‘질서’로 부상했다. 하지만 국내 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글로벌 규제 대응 수준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ESG 경영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지금, 업계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의 탄소중립 기반 구축을 위한 지원을 실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의 ‘탄소 중립’ 움직임
CBAM은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수입되는 제품에 대해 탄소 비용을 부과해 탄소 누출을 방지하고, 국가 간 탄소 감축 노력 차이를 보정하기 위한 무역 조치다. 일방적인 관세 부과가 아닌 수출국 내의 규제 비용을 고려한 조정으로, 세금(관세, 탄소세) 부과·면제, 탄소 배출권 매입·제출 등 다양한 방식이 활용된다.
지난 5월 EU가 CBAM 입법안을 최종 승인하고 공식 발효함에 따라 오는 10월부터 본격적인 전환기간이 시작된다. 해당 기간 동안 기업은 실제 비용 부담 없이 수입품의 탄소 배출량 정보를 보고하게 된다. 전환기간 종료 후 CBAM이 본격 시행될 경우 EU에서 승인받은 수입업자는 CBAM 적용 품목 수입 시 상품 유형별 수입 총량과 수입 상품에 내재된 탄소 배출량만큼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CBAM 적용 품목에는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수소 등 6대 품목과 나사, 볼트 및 철/강철 제품 등 일부 다운스트림 제품이 포함됐다. 내재 배출량 산정 시에는 생산 공정 과정에서 소비한 전기의 배출량인 ‘간접배출량’이 포함되며, 이는 업스트림 제품의 원자재에도 해당한다. 특정 상품의 생산을 위해 특정 원자재가 사용되었을 경우 원자재의 채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까지도 내재 배출량에 반영된다는 의미다.
EU뿐만 아니라 미국도 탄소 중립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6월 상원의원이 탄소국경조정 도입을 위한 CCA를 발의했으며, 최근 두 번째 읽기가 완료된 상태다. 그러나 CCA는 EU의 CBAM보다 빠른 2024년부터 시행되는 데다, 도입 초기부터 CBAM보다 적용 대상 품목 및 배출량 산정 범위가 넓어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안건이다.
ESG 대응책 없는 수출 경제, CBAM ‘치명타’
주요국들은 미래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탄소중립과 산업을 연계해 ‘무역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실제 탄소가격제도가 없는 미국은 자국 내 해당 산업 평균보다 배출량이 높은 수입품 및 자국 제품에 탄소비용을 부과, 배출집약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미국 기업에 경쟁 우위를 제공할 수 있는 형태로 CCA를 설계했다.
이에 수출 위주 경제인 우리나라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유럽 CBAM, 미국 CCA 외에도 전 세계의 ‘ESG 압박’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수출국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을 저감하고, ESG 경영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탄소중립 대응 수준은 아직 현저히 부족한 것으로 확인됐다.
‘ESG 공시’에 대한 우리나라 기업의 대응을 보면 문제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ESG 공시는 중소기업, 특히 대기업 협력업체인 비상장 중소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국내 중소기업은 별다른 대응책 없이 그저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시작되는 공시 의무화에 별다른 대응 계획이 없다고 답한 기업은 자그마치 36.7%에 달했다.
중소기업이 탄소 중립을 비롯한 ESG 경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결국 ‘돈’이다. 특히 최근처럼 경기 침체로 인해 생존부터 위태로운 상황에 ‘ESG 경영’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ESG 경영은 이미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으로 부상했다. ESG 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배제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적극적인 정부 지원 ‘절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탄소 배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공급망 전반에서의 배출량 측정 및 정보 관리 인프라가 최우선으로 마련돼야 한다. ESG 공시 의무화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탄소 배출량을 정확히 파악해 차후 전략을 수립하기 위함이다.
탄소 배출이 경제적 비용 부담으로 직결되는 시대가 도래한 만큼, 직접적인 탄소 배출 저감뿐 아니라 간접배출 저감을 위한 에너지 전환 정책도 강화해야 한다. 재생 에너지 사용을 독려하는 ‘RE100(재생 에너지(Renewable Energy) 100%)’ 활성화 등을 통해 산업 부문의 탄소중립 전환을 독려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CBAM으로 인한 추가 비용 부담이 관련 산업으로 확산할 수 있는 만큼, 간접 수출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탄소 배출량 저감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자금 부족으로 탄소 배출 저감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적극 지원함과 더불어 불필요한 규제로 충격을 입은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 특히 업종별 특성을 고려한 지원 정책을 통해 산업계 전반이 탄소중립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 추진 중인 정부 지원 사업은 기업의 ESG 경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진단하고, 차후 전략과 방향을 제시해 주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자금 부족으로 관련 인프라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대다수 기업에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지원인 셈이다. 차후 실효성 있는 지원책으로 기업이 탄소 중립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산업계 현실을 지속적으로 청취하며 함께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